마돈나와 황수정
등록 : 2001-11-27 00:00 수정 :
미국 팝의 슈퍼스타인 마돈나는 데뷔 이후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변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천박하고 어리광떠는 남자들의 노리개’로부터, 글래머의 여왕으로, 이혼 이후 레즈비언적인 성애로, 그리고 위엄과 애절함을 갖춘 성녀의 모습 등으로 다양한 이미지들을 구현해냈다. 마돈나가 성적 욕망과 물질성을 가장 극대화한 형태로 재현해내면서 이른바 ‘미국식’ 대중문화를 전세계적으로 유포시킨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돈나는 대중의 허황된 욕망과 타협하지만 동시에 ‘허를 찌르는’ 이미지들을 생산해내면서, 대중들을 제압하는 능력을 발휘해왔다. 마돈나가 오랜 세월 동안 스타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통제권을 획득해가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는 점과 사회가 마돈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공인으로서 대우해준 점 때문일 것이다. 마돈나는 스타의 자리를 통해 얻게 된 부와 권력을 후배 여성가수를 키우는 일에 사용함으로써, 모범적인 여성스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역죄 저지른 여성연예인?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연예인의 ‘수난시대’인 듯하다. 여성연예인들은 섹시한 이미지를 생산하도록 요구받지만 막상 실제적 삶에서 성적으로 적극적인 것이 밝혀지면 TV를 떠나야 한다. 성적으로 적극적이며 저돌적이고, 심지어 저항적인 것처럼 보였던 가수 백지영씨는 섹스비디오 사건 앞에서 모든 에너지를 상실하고 TV에서 사라져갔다. 다양한 연기경력에서 오는 세련됨과 다부진 말솜씨로 탤런트와 MC로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던 오현경씨는 애인과 장난으로 찍었던 섹스비디오 때문에 몇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그들은 자기 방어 한번 제대로 못했다. 그저 눈물로 후회를 하고, 언론이 휘두르는 수준 이하의 말장난들을 ‘업보’인 양 받아들였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마치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것처럼 눈물과 회한, 수치심으로 몸을 떠는 여성연예인들을 봐왔고, 이제 황수정이라는 또 한명의 여성연예인이 여론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반역자’로 낙인찍힐 상황에 놓여 있다. 필로폰 복용 혐의로 구속된 탤런트 황수정씨에 대한 언론의 폭력은 ‘바닥을 치는 경쟁’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적’인 또는 수정같이 정결한 여성 이미지의 황수정씨가 “최음제”와 “문란한 섹스”로 상징되는 “색녀”임이 밝혀지면서 대중적 기대를 철저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대중을 “배신”했단다. 언론은 대중들이 배신감에 떨고 있다고 난리들이다. 아무리 스타가 대중의 물신주의적 ‘자기이상’(ego-ideal)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감정적 격분은 분명 뭔가 ‘한국적’이다. 황수정씨를 ‘한국적’ 또는 ‘동양적’ 여성이란 말로 규정하면서 대중은 어떤 욕망을 투사해왔을까? 황수정씨는 순수하고, 순종적이며, 순결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대가로 ‘성장을 멈춘, 역사성이 배제된 소녀’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만 할까? 언론은 황수정씨의 필로폰 복용 혐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기사들의 대부분은 훔쳐보기의 천박한 욕망과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를 무더기로 실어나르고 있다. 여성연예인들의 스캔들이 항상 이렇게 특정한 방식으로 보도되고, 귀결되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연예인을, 또한 여성을 ‘공인’으로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여성연예인을 단지 남성 중심적 욕망의 집단적 소유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언제라도 폐기 처분이 가능한 존재로 취급되어진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스타’가 나올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성’이라는 기호에 부착된 과도한 도덕적 요구와 여성의 능력과 재능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여성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이다. 여성연예인들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습득해야 할 ‘의사결정권’을 획득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존재로 남게 된다.
황색언론과 정면대결하라
나는 어설픈 섹스어필과 시대적 감각을 상실한 한국적 여인상을 구현해내는 여성연예인보다 자신이 하는 일과 재현하는 이미지들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 여성연예인을 만나고 싶다. 이러한 기대 때문에 나는 황수정씨가 이번 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즉 공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동시에 연예인의 ‘인격권’과 ‘노동권’을 제멋대로 박탈하는 황색 언론들과 법정 소송을 통해 정면으로 대결하기를 바란다. 황수정씨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로써 끝까지 순진함을 가장하거나 죽을죄를 진 은둔자의 모습으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식의 해결방법은 지난 수년간 연예인이라는 직업인으로서 수행해왔던 자신의 노동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며,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여성비하’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여성연예인도 ‘공인’답게 대우받아야만 한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여성연예인 수난시대의 막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