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북한과 조건없이 대화하겠으나…”

385
등록 : 2001-11-2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재래식 무기 감축'은 여전히 핵심의제…한국군 아프간 파병은 다각도 논의중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토머스 허바드(58) 주한미국대사는 “북한과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신뢰구축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고, 이는 남북대화든 북-미대화든, 어떤 형태의 대화에서든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긴장완화와 재래식 무기의 위협감축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미국과 한국 모두의 이해관계와 연관된다”고 밝혀, 북-미대화가 시작되면 여전히 재래식 무기 감축이 핵심의제가 될 것임을 내비쳤다.

허바드 대사는 36년간 국무부에서만 일해온 정통 직업외교관이자 한반도문제 전문가이다. 지난 93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로 임명된 이후 96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 협상대표, 북-미 고위급회담 뉴욕실무접촉 대표, 미군 헬기 북한 불시착 억류 미군 귀환협상대표를 지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평양방문 선발대 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테러가 난 9월11일 서울에 부임했다. 15일 오후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대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느냐.

=남북 장관급회담이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해 실망했다. 미국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과의 대화를 지지하며 이른 시일 안에 남북대화가 재개되길 바란다.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데.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추구한다는 대북정책을 채택했다. 북한과 대화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왔다. 솔직히 북한이 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은 개방된 대북정책을 갖고 있다. 북한이 왜 이 점을 인식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이라는 질문엔 답변 않겠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이 이뤄지고 클린턴 대통령 자신도 북한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도 태도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가.

=부시 행정부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는 개방된 정책이자 개방된 접근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뉴욕에서 북한과 논의를 지속했고 이제 모든 것은 북한에 달려 있다. 북쪽이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갖자는 미국쪽 의사를 인식하고 대화 제의를 수락하기 바란다.

미국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했지만, 북쪽에 무력 감축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전제조건 아닌가.

=미국은 북한과 한자리에 앉아 어떤 전제조건이나 정해진 의제없이, 양쪽 모두 관심사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사를 북쪽에 알렸고 북한 또한 관심사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모두를 우리는 논의할 용의가 있다. 단 한번의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을 조건으로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실제로 병력을 후방 배치하고 재래식 무기를 감축할 경우 미국은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설적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지 않겠다. 우리는 먼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1992년 기본합의서에 구현된 신뢰구축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남북간 철도 연결과 금강산 육로 개방 등의 신뢰구축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긴장완화와 재래식 무기의 위협 감축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미국과 한국 모두의 이해관계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신뢰구축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고 이는 남북대화든 북-미대화든, 어떤 형태의 대화에서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대사는 얼마 전 북한이 반테러전쟁에 동참하고 빈 라덴을 비롯한 테러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 북-미관계 진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북한이 실제로 그런 정보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또 미국은 경로를 통해 그와 같은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할 의사는 없는가?

=미국은 테러에 대항하는 노력에 북한이 동참하는 것을 환영한다. 북한의 협력은 여러 형태를 띨 수 있다. 북한은 테러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위로의 말을 전했으며 유엔의 두개의 테러방지 관련 협약에 서명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우리는 어떤 형태가 됐든 북한의 협력을 환영한다.

미국 책임론은 윤리가치의 왜곡

한국 내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한나라당 등의 반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 내 정치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 다만 미국은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한국의 정책을 지지하며 이러한 한국의 노력이 성공하길 바란다.

미국은 우방국가에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이 9·11 동시다발테러의 배후자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번 테러를 자행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공개할 수 있는가.

=이번 테러공격을 목격하고 방송을 통해 빈 라덴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들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빈 라덴이 테러공격을 지지하며 알 카에다가 테러공격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이기 때문에 얘기할 수 없지만 우리는 충분한 근거가 있고 이 정보를 우리 동맹국과 여러 자리를 통해 공유한 바 있다.

상당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의 배경에는 그동안 미국의 일관된 친이스라엘 정책과 이슬람권의 영향력 확보를 위한 친미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미국이 중앙아시아의 석유가스 같은 자원을 장악하고 지역문제에 개입해왔다는 배경과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미국은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지지한다. 또 석유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과 전세계 국가들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역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 몇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반러시아 투쟁에도 미국이 관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뉴욕과 워싱턴에서 6천명의 희생자를 낳은 극악무도한 테러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6천명에 이르는 미국인과 외국인을 뉴욕에서 희생시킨 테러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엄청난 현실 왜곡이자 윤리가치의 왜곡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독립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아프간전쟁 수행을 위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스라엘 강경 우파들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것인지, 대중동정책의 실질적인 변화조짐인지 얘기해달라.

=미국은 유대인의 고향인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존재할 권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우려 사항과 권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미국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나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도록 했다. 우리는 중동지역 평화를 원하며 폭력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파시툰의 의견, 중앙정부에 반영돼야

미국의 아프간 공격 이후 세계 각지에서 반미, 반전시위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1세기 인류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는 무차별적인 테러공격을 막고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 이외에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먼저 이번 테러공격을 감행한 테러집단은 뉴욕과 워싱턴에서 80개 나라의 6천여명 시민을 희생시켰고 이들은 아프리카에서의 테러와 미 해군함정 공격도 자행한 바 있다. 따라서 이들은 아주 무자비한 그룹이다. 그 누구도 전쟁과 폭력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위험한 단체와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하고 있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군사작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물론 군사적 노력은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일부일 뿐이며 미국과 동맹국들은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동시에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줄을 끊고, 정보 공유에 협력하고 테러범 체포 등 법 집행과 관련해 협조를 하는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도 테러리즘이 자기 나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부동맹이 카불로 진입해 아프간전쟁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탈레반 축출 이후 아프간 집권세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미국의 구상은 무엇인가? 또 수백만명에 이르는 아프간 난민에 대한 대책과 경제재건 대책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탈레반을 완패시킨 뒤 특정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대한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부동맹뿐만 아니라 40%에 달하는 파시툰(Pashtun) 민족 등으로 구성된 일반 국민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광범위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모든 파시툰인들이 탈레반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북부동맹의 일방적인 카불 점령과 자체적인 아프가니스탄 통치를 원치 않고 있다는 점이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금 카불에서 나타나는 징후를 기뻐해야 한다. 여성이 개방된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남성이 수염을 마음대로 자르고,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돼야 한다. 사실 탈레반은 이런 부분까지 통제하는 매우 억압적인 정권이다. 따라서 카불 국민들이 이 억압적인 통치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파시툰의 의견이 중앙정부에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파키스탄, 러시아, 중국, 이란 등 주변국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수립되길 원한다. 우리는 동맹국과 협력하고 유엔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내 모든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안정적인 정부가 세워지도록 할 것이다. 난민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계속 협력해 나가고 이미 많은 지원을 제공한 한국 등 다른 국가들과도 협력하여 아프가니스탄 경제회복과 국민들을 도울 생각이다.

비자발급 불만은 과거 메아리

사진/ 정영무(오른쪽) 편집장의 질문에 응답하는 허바드 대사.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한겨레 장철규 기자)
미국은 아프간에 다국적군 주둔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대해 전투병 파견을 공식·비공식적으로 요구했거나 협의하고 있나.

=한국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현재 논의가 진행중이다. 한국 정부는 연락사무관 파견, 이동병원(MASH), C-130, 군수 등의 지원을 제안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는 미국이 특정지원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담당할 몫이 있을 것이며, 군관계자 사이의 협의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 태평양사령부 및 인도양·서남아시아(중부) 사령부에서 이런 논의가 이미 진행중이다. 적절한 지원방안을 결정한 뒤 구체적 요청을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파병 논의는 언제쯤 끝날 것으로 생각하는가.

=구체적인 답은 줄 수 없다. 현재 군사관계자 사이에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만 분명히 밝힐 수 있으며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보여준 지지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한-미간 여러 현안이 있을 것이다. 재임기간중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 대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미국과 해당 국가간의 경제관계를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의 교역량은 상당하다. 지난해 양국간 무역규모는 680억달러였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한국에 판매하고 투자하기 원하며 이를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두 국가간의 자유로운, 개방된 교역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며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 밖에 주한미군과 협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미군이 전쟁억지세력으로 한국에 계속 주둔하는 동시에 한국 국민에게 끼치는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조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양국간 엄청난 인적·문화적 교류가 있다. 미국 내에는 200만명 정도의 한국민과 교포들이 살고 있으며 미국 대학이나 중·고등학교로 유학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인적 교류를 유지하는 것이 재임중에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이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비자 발급과 관련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관은 전세계 미국대사관 중에서 가장 많은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신청자 가운데 95%에게 비자를 발급하며 이는 많은 수치다. 또 비자 발급과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대사관 앞에서 한국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찾기 힘들 것이다. 신청자들을 위한 대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이제는 이들이 대사관에 직접 올 필요없이 우편이나 신청함, 관광회사 대리인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돼 있다. 비자 발급과 관련된 불만의 소리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특정후보 지지하지 않겠다

양국간의 인적·물적 교류 진전에도 불구하고 특히 도심 주한미군 기지가 반미감정을 낳고 있다. 도심에 있는 기지는 정리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주한미군 기지를 통합하고 경제활동과 시민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계획에 기지 폐쇄, 통합, 이전, 축소, 확장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논의를 지속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주둔하여 전쟁억지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양국 정부가 인식하는 것이다. 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일부 기지를 줄이거나 이전하면 다른 곳에서 이들 기지를 보충해야 할 것이고 이 점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이해하며 한국민의 삶에 끼치는 방해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것이다.

내년 한국 대선이 있는데, 특정후보에 대한 비토 등 미국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에 관한 관측들이 있는데.

=미국은 한국의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통령은 한국 국민만이 선택할 수 있다.

인터뷰= 정영무 편집장 young@hani.co.kr
정리=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