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갱 입구에서 고독한 말년을 보내는 옛 광부들, 그들의 폐에 구멍이 두배로 뚫리는 이유
“양말을 신거나 벗는 것도 숨이 차서 힘들어. 저 침대에서 7명이 죽어나가는 것을 봤는데, 나는….” 지난 11월14일 강원도 태백시의 태백중앙병원 진폐병동에서 만난 변상식(76)씨는 말끝을 채 잇지 못했다. 말을 매듭짓지 못한 건 뭔가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서가 아니다.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겨우 대답한 그는 4년째 진폐에 시달리고 있는 옛 탄광노동자다. 코밑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숨이 턱에 붙은 듯 연신 힘겨워하는 그의 늙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재해자 6만여명인데 요양환자 2825명뿐
“탄광에서 일하던 때는 감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죽을 날만 남았지.” 진폐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뜬 옆 침대 동료들을 수없이 겪어온 터여서일까. 26년간 탄광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진폐가 ‘불치병’이란 사실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야위다 못해 나무토막처럼 가느다란 그의 두 다리가 투병으로 얼룩진 노년을 아프게 말해주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다보니 잠을 잘 수도 없을뿐더러 음식도 넘기지 못한 탓에 하루가 다르게 말라붙고 있는 것이다. “우리 큰아들? 해먹을 것도 없고 그래서 나처럼 지금 탄광에서 일하고 있지.”
옆 병실의 같은 진폐환자 오규용(72)씨. 이곳 저곳 병원을 전전하며 22년째 누워 있는 오씨는 숨이 막힌 탓에 이미 말을 잊은 지 오래고 호흡기와 영양제 주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독한 약으로 버티다보니 눈도 흐릿해지고 귀까지 멀고 있는 것이다. 오씨의 가족은 진폐로 얼룩진 가족사 그 자체다. 오씨의 큰아들도 광산노동자로 일하다 진폐의증 진단을 받은데다 진폐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뻔히 보면서도 오씨의 둘째아들 또한 태백에서 탄광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런 사무치는 사연들은 오씨네말고도 숱하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 정훈용(70) 회장은 “돈도 배운 것도 없어 탄광노동자로 살다보니 아들도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간다”며 “할아버지가 진폐로 숨지고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탄광 진폐로 시달리는 집안도 있다”고 한숨지었다. 태백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진폐를 유전병처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때 태백의 희망과 풍요를 상징하던 탄광은 그렇게 늙은 탄광노동자들에게 천형처럼 들러붙은 채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탄광부 진폐증은 탄광노동자가 들이마신 탄가루와 돌가루 먼지가 폐 속에 겹겹이 쌓이고 굳어지면서 폐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호흡이 곤란해지고 합병증까지 겹쳐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진폐병동에서 만난 변씨나 오씨 모두 숨이 끊길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늘그막 삶을 병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절망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진폐는 진행속도가 5∼20년 정도로 아주 느리기 때문에 늙은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탄광촌을 떠나 다른 일을 하며 살다가 문득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서야 뒤늦게 진폐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89년 석탄산업합리화조처로 거의 모든 탄광이 사라지고 지금은 11군데만 남았지만 진폐재해자는 계속 늘어 6만여명에 이른다. 그나마 한달에 350여명꼴로 병마와의 기나긴 싸움에 지쳐 끝내 세상을 뜨고 있다. 오랜 탄광노동으로 몸이 쇠약해진데다 진폐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추위와 독감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병실에서 눈을 감고 마는 것이다. 차가운 단칸방의 절망적인 기침과 한숨
그러나 진폐재해자 6만여명중 실제로 병원에서 요양받고 있는 환자는 2825명에 불과하다. 진폐법이 진폐증 자체만으로는 요양대상에서 제외하고, 활동성 폐결핵, 흉막염, 기관지염, 폐기종 등 8가지 합병증이 나타나야만 진폐전문병원 요양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증이 뒤따르지 않은 단순 진폐환자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제대로 병원치료 한번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진폐증상이 더디게 나타나고 합병증이 번지는 것도 제각각이다보니 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 재가(在家) 진폐재해자들이 대다수다.
태백지역 재가 진폐재해자는 4148명. 수십년의 탄광노동으로 진폐에 걸렸지만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비좁고 차가운 단칸방에서 기침과 한숨으로 지새고 있다. 이날 태백시 외곽 동점마을의 허름한 단층집에 누워 있던 진폐재해자 최병연(71)씨는 연신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집 바깥에 나가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금세 물러앉고 마는 그였다. “발파작업이 끝나고 구멍이 뚫리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먼지와 연기가 뿌옇지. 그러면 1t이라도 더 탄을 꺼내려고 연기가 빠지기도 전에 더듬더듬거리며 갱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때는 진폐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 탄이 튈 정도로 뜨거운 갱도 안에서 방진마스크도 벗어던져야 했던 당시를 돌이키며 최씨가 방 한쪽에 놓인 약병을 가리켰다. 피가 섞인 가래가 끓고 각혈을 하기 일쑤인 그의 유일한 약이었다. “겨울이면 저 사람이 윗방에서 내는 기침소리가 밤새도록 아랫방까지 들려요. 고통이 덜하게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켜주면 좋을 텐데. 무슨 법이 그런지….” 곁에 있던 최씨의 아내가 금방이라도 울먹일 듯했다.
이 마을에는 몇집 건너마다 최씨처럼, 더 갈 데 없는 막장인생을 살다 탄광촌의 그늘인 진폐로 신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늙은 탄광노동자들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모두들 진폐병동에 들어가 요양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입원환자에게는 휴업급여가 나오고 병원요양중에 숨지면 유족급여 혜택도 받을 수 있지만 재가 진폐환자에게는 보호시설은커녕 치료비나 생계지원도 없다. 그나마 있던 진폐기금도 잇단 폐광으로 사업주가 내는 분담금이 줄면서 지난 99년 폐지되고 말았다.
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38년간 탄광일을 했던 이춘식(68)씨는 숨이 차서 세수를 하기도 힘든 처지였다. 이웃에 볼일이 있거나 병원에 가기 위해 바깥에 나갈 때면 몇 발짝 못 가 숨이 턱 막히고 만다. 그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탄을 캤건만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요양을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누우면 가슴 통증이 심해지는 탓에 늘 모로 누워 칼잠을 자거나 가슴에 베개를 안고 우두커니 앉아 뜬눈으로 뒤척이다보면 어느새 새벽이다. “내 돈으로 약을 타다 먹고 있는데, 보건소 약은 듣지 않아. 독한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거든.” 얼마 전에는 부인마저 당뇨수술 끝에 눈을 실명하는 바람에 노부부가 모두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지내고 있다. 여지껏 병원요양을 기다려왔지만 아내를 돌보려면 이제 병원에 들어갈 처지도 못 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죽은 뒤에 돈을 주면 뭐해? 약 타먹는 돈이라도 미리 주면 좋을 텐데….” 힘없이 탄식하는 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흐느낄 듯했다. 몸서리를 치지만, 진폐로 고독한 말년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그 역시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선 카지노 수익금을 진폐기금으로
한국노총 김순희 산재보상국장은 “다른 산재노동자는 치료가 끝나면 일터로 돌아가거나 갈 곳이 있지만 탄광 진폐노동자는 치료가 안 돼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며 “당국이 8가지 합병증만 인정하지만 진폐가 계속 진행되는 증상인 만큼 폭넓게 요양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아플 때 진찰받고 약을 투여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한림대의료원 주영수 교수(산업의학)도 “진폐재해자의 유일한 소망은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는 것”이라며 “호흡곤란이 날로 심해져도 별 이상이 없다고 판정나는 현실에서 재가 진폐환자들에게 진폐법은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라고 탄식했다. 그는 또 결핵이나 기관지염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심장질환 등 심혈관계 질환으로 진폐요양기준을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다 못한 진폐재해자협회는 태백의 재가 진폐환자들에게 한달에 40만원씩 생계비를 대주기 위해 입원요양중인 진폐환자들이 서로 고통을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입원환자 중 일부가 통원치료로 바꾸면 병원비가 절감되고, 이 돈으로 재가 환자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막장인생 끝에 질병으로 인한 고통만 고스란히 남은 재가 진폐재해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건 겉은 멀쩡해뵈는데 속으로만 가슴에 구멍이 뚫린 원망스런 몸뚱이다. 수십년 막장생활로 탄가루가 가슴에 뒤범벅돼 있지만, 별다른 합병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탓에 병원요양 혜택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한탄스러운 것이다. 가슴에 뚫린 구멍을 안은 채 진폐환자들은 그렇게 스스로 ‘마음의 감옥’을 만들며 늘그막을 보내고 있었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는 “쓰러져가는 집에서 홀로 진폐와 싸우고 있는 재가 진폐재해자들을 위해 폐광지역개발법에 따라 운영중인 정선 카지노의 수익금 중 일부를 진폐기금으로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백= 글·사진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태백중앙병원 진폐병동에 누워 있는 변상식(왼쪽)씨. 요양혜택을 못 받아 집에서 투병중인 진폐재해자 최병연(오른쪽 위)씨와 이춘식(오른쪽 아래)씨.
옆 병실의 같은 진폐환자 오규용(72)씨. 이곳 저곳 병원을 전전하며 22년째 누워 있는 오씨는 숨이 막힌 탓에 이미 말을 잊은 지 오래고 호흡기와 영양제 주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독한 약으로 버티다보니 눈도 흐릿해지고 귀까지 멀고 있는 것이다. 오씨의 가족은 진폐로 얼룩진 가족사 그 자체다. 오씨의 큰아들도 광산노동자로 일하다 진폐의증 진단을 받은데다 진폐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뻔히 보면서도 오씨의 둘째아들 또한 태백에서 탄광노동자로 살고 있다. 이런 사무치는 사연들은 오씨네말고도 숱하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 정훈용(70) 회장은 “돈도 배운 것도 없어 탄광노동자로 살다보니 아들도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간다”며 “할아버지가 진폐로 숨지고 아들과 손자까지 3대에 걸쳐 탄광 진폐로 시달리는 집안도 있다”고 한숨지었다. 태백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진폐를 유전병처럼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때 태백의 희망과 풍요를 상징하던 탄광은 그렇게 늙은 탄광노동자들에게 천형처럼 들러붙은 채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탄광부 진폐증은 탄광노동자가 들이마신 탄가루와 돌가루 먼지가 폐 속에 겹겹이 쌓이고 굳어지면서 폐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호흡이 곤란해지고 합병증까지 겹쳐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진폐병동에서 만난 변씨나 오씨 모두 숨이 끊길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늘그막 삶을 병실에서 보내야 한다는 절망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진폐는 진행속도가 5∼20년 정도로 아주 느리기 때문에 늙은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탄광촌을 떠나 다른 일을 하며 살다가 문득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서야 뒤늦게 진폐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89년 석탄산업합리화조처로 거의 모든 탄광이 사라지고 지금은 11군데만 남았지만 진폐재해자는 계속 늘어 6만여명에 이른다. 그나마 한달에 350여명꼴로 병마와의 기나긴 싸움에 지쳐 끝내 세상을 뜨고 있다. 오랜 탄광노동으로 몸이 쇠약해진데다 진폐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추위와 독감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병실에서 눈을 감고 마는 것이다. 차가운 단칸방의 절망적인 기침과 한숨

사진/ 진폐재해자의 소망은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는 것이다. 태백에 있는 진폐재해자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