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나키스트 붕어의 ‘무일푼 시위’

385
등록 : 2001-11-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밥? 얻어먹는다. 잠자리? 가리지 않는다. 시위방법? 엽기발랄하게 튄다. 태백에서 제주까지, 아나키스트 붕어는 ‘전쟁반대, 테러반대 1인 시위’를 다녀왔다. 무전여행이었다. 강원도 언니들과 전쟁반대 고스톱도 치고, 충청도 오빠들한테 밥도 얻어먹고, 전라도 스님들하고 징병제 토론도 했다. 10월10일부터 놀며 데모하며 다니다보니 꼬박 한달이 흘렀다. 참, 나이트클럽 포스터 뒷면을 ‘재활용’해 만든 피켓은 꼭 챙기고 다녔다. 유인물제작도 활자를 오리고 그림을 붙여 만드는 수공업적 방식을 고수했다.

“뭐 그리 심각한 대의 같은 건 없어요. 군대가 싫고, 전쟁이 끔찍하기 때문이죠. 침묵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인간입니다.”

전국을 돌며 군대를 둘러싼 우리 시대 숱한 군상을 만났다. 어떤 시인은 “내 이상을 대신해줘 고맙다”며 잠자리를 내주기도 했고, 어떤 스님은 “살생은 나쁘지만 징병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현실론을 폈다. 물론 “뭐 하는 짓이냐”며 때릴 듯이 덤벼드는 아저씨도 있었다. 시위를 하며 여럿을 만난 덕에 운동권 ‘분류법’도 익혔다.

“딱 세 종류죠.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징병제는 인정한다는 부류. 반전으로 시작해서 반미로 끝나는 부류. ‘잘 몰랐다’며 놀라는 부류. 그들조차 군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른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10월 중순부터는 각 지역의 아나키스트 친구들을 협박해 밥을 뺏고, 잠자리를 해결했다. 한국 아나키스트 네트워크(www.anarclan.net)에 꿀벌통신 게시판을 만들어 하루하루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전국 투어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부산영화제 광장에서 벌인 ‘분필시위’. 분필을 나눠주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위였다. 순식간에 100여명이 시위에 동참했고 광장 바닥은 그림으로 꽉 찼다. 한 초등학생은 꼬깃꼬깃한 2천원을 건넸고, 중학생 20여명은 시위를 끝까지 지켜봤다.

11월9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노동자대회로 곧장 직행했다. 15일에는 ‘검열반대 공동행동’의 릴레이 1인 시위 주자로 나서 명동성당에서 밤을 지새웠다. 붕어씨는 “시위를 할수록 점점 진지해진다”며 “나는 길바닥에서 컸다”고 돌이킨다. 지난해부터 군대반대 사이트(www.non-serviarm.org)를 운영해오면서도 느끼지 못한 ‘절실함’이다. 19일 다시 경주로 떠난 붕어씨. 비자본주의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그의 무일푼 시위는 오늘도 계속된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꿀벌통신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윤동욱 syuk@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