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평택공장을 찾은 날, 70m 굴뚝 위에는 ‘Let’s talk’라는 글자가 내걸렸다. 한 달 넘게 농성 중인 굴뚝인 김정욱과 이창근은 힌두어와 영어로 마힌드라 회장의 트위터에 계속 멘션을 날렸다.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1월14일 마힌드라 회장은 해고자들을 공장 안에서 만났다. 그건 어떤 신호일까? ‘햇살 같은 희망’의 시간이 곧 다가오길 기다리는 굴뚝인 이창근의 마음을 싣는다. _편집자
바람이 분다. 분다는 말은 굴뚝 아래 말이고 굴뚝 위 말은 불다가 맞는 것 같다. 바람은 굴뚝처럼 퉁퉁 불어 머리통을 사정없이 탕탕 때린다. 굴뚝이 휘청이고 작은 1인용 텐트는 들썩인다. 하루에도 몇 번 밧줄을 고쳐매고 비닐을 여민다. 굴뚝에 오른 지 서른번째 날 마힌드라그룹 마힌드라 회장이 입국했다. 입국 전부터 기대가 컸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을 봐버렸다. 수많은 착한 사람들은 입국 전부터 굴뚝데이를 만들었고 역 앞에서 용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쌍용차 정리해고 7년의 시간 동안 가장 즐겁고 뜨겁게 상황을 즈려밟아오고 있었다. 마힌드라 회장과 만나기 위해 쌍용차지부 또한 분주히 움직였다. 싸늘하게 식어간 동료들을 생각하며 스물여섯 켤레의 신발을 준비했고 마힌드라 회장에게 그 신발을 볼 것을 주문했다. 인도 속담에 나오듯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선 결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힌드라 회장은 그 신발을 봤을까.
26명의 차가운 신발을 그가 보았길
마힌드라 회장이 인도발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 시간 굴뚝에선 힌디어를 쓰고 있었다. 영어 또한 작문하고 있었고 한글과 맞춰보고 다듬어갔다. 마힌드라 회장은 세계적인 경제인 가운데 트위터 활용에서 5위로 손꼽힐 만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잘 활용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대화 채널이 완전히 막혔던 지난 7년의 시간이었다. 어떤 루트도 없었던 지난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말은 공장 담을 넘지 못했고 구호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우리들의 말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봤다면 그리고 알고 있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요청했고 힌디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마음을 전달했다. 그러나 수백 번의 트위트와 멘션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켜보던 트위터리안들이 흥분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결국 신차 발표회가 있는 1월13일까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마힌드라 회장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는 1월14일 쌍용차 평택공장에도 아침이 밝았다. 오전 9시에 평택공장 방문 일정이 있었다. 트위터로 다시 아침부터 ‘대화하자’(Let’s talk)를 외쳤다. 아이 사진을 첨부해 대화를 요청했다. 그 시간 우린 밥줄을 굴뚝 허리에 매달았다. 아침밥은 물론 굴뚝을 오르내렸던 어떤 물품도 더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깔고 자던 은박지를 빼내 청테이프를 붙여 글자를 써 내걸었다. 대주주 마힌드라그룹의 회장이 꼭 봐달다는 의미였다. 마힌드라 회장은 신차 발표회를 하는 어제(1월13일) 희생자에 대해 언급했고 굴뚝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행이라기엔 아쉬움이 컸지만 처음으로 희생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는 건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쌍용차 경영진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결국 1월14일 오전 9시에 트위터로 말을 걸어왔다. ‘공장 안에 있다. 기꺼이 만나겠다’는 말이었다. 공장 아래에선 쌍용차지부 지부장과 수석부지부장이 본관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전격적이었다. 경영진도 공장 안 노조도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해고자의 손을 잡고 우리의 실체를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이고 앞으로 일의 전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신호였다.
그래요,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대화는 엉킨 실타래를 모두 풀지 못했다. 그러나 마힌드라 회장은 명함을 주며 연락처와 전자우편 주소를 건넸다. 언제든 연락하라는 의미였다. 희생자를 처음 언급하며 인간의 슬픔에 공감했고 우는 아이 사진을 보며 만나겠다 했다. 그리고 연락을 하자고 한 것이다. 이 일련의 흐름과 맥은 분명한 하나의 메시지며 신호다. 그동안 회사의 일방적 보고만을 듣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였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겠다는 분명한 제스처인 것이다.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 경영진이 말하는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구분을 헷갈려 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그동안 이런 상태로 만들었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가 풀리지 않은 이유가 분명해졌다. 교섭의 물꼬는 텄으나 물 들어가는 논에 난 구멍이 걱정인 이유다. 아직은 어떤 속단도 어떤 결론도 의미 없는 시간 위에 앉아 있다. 쌍용차 신차 티볼리가 출시됐다. 하루 계약대수가 나오고 주문이 밀렸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어쩌면 신차는 쌍용차 부활의 확실한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티볼리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언급이 나오고 수천 가지 버전의 사진이 등장한다. 아이와 어른 모습은 물론 외국인들도 티볼리를 말하고 있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언제 이런 글로벌 마케팅이 존재했었나 싶다. 모두 해고노동자 문제와 관련 있는 내용이다. 굴뚝에 올라 향후 교섭을 말하는 건 구두 신고 발등 긁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교섭은 열릴 것이다. 굴뚝에 오른 우리는 비상식량으로 버티며 이곳을 낯선 공간으로 삼아 빠른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고 무서울 때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가고 싶고 안방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고 난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갈 수 없는 현실적 처지에 놓여 있다. 굴뚝 중간 허리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는 밥보따리가 우리들의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힌드라 회장의 방한으로 교섭의 장은 열렸지만 교섭의 주체는 7년간 싸웠던 경영진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입니까? 그러나 희망은 절망을 비워낸 공간만큼 찾아드는 햇살 같은 거라서 기대를 품고 하루를 충실히 산다. 내일 열 문이 있지만 오늘 열 수는 없다. 쌍용차 아픔의 시간에 중지를 선언할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다. 아침마다 바뀌는 공장 풍경처럼 아직은 안정적 상황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어느 지점에 정박 중이다. 누차 말했듯이 해고자 복직과 희생자에 대한 처우 문제는 작은 문제며 더는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쌍용차가 어떤 가치를 보여주느냐만 남아 있다. 고단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시했던 지난 7년의 전시관을 폐쇄할 때가 되지 않았나. 번지르르한 신차를 전시하는 매장 앞에 고사리손으로 써내려갔을 아이가 든 작은 손 피켓을 봤다면 말이다. 쌍용차는 해고자 문제를 넘어,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넘어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우려와 기대에 응답할 말을 찾아야 한다. 전 국민적으로 7년의 시간을 가지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황금 기회를 주고 있다는 인식을 한다면 말이다. 굴뚝은 쌍용차가 찾고 있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그 말을 오늘도 생각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nomadchang
14일 오전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굴뚝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이날 공장을 방문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평택/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래요,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대화는 엉킨 실타래를 모두 풀지 못했다. 그러나 마힌드라 회장은 명함을 주며 연락처와 전자우편 주소를 건넸다. 언제든 연락하라는 의미였다. 희생자를 처음 언급하며 인간의 슬픔에 공감했고 우는 아이 사진을 보며 만나겠다 했다. 그리고 연락을 하자고 한 것이다. 이 일련의 흐름과 맥은 분명한 하나의 메시지며 신호다. 그동안 회사의 일방적 보고만을 듣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였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겠다는 분명한 제스처인 것이다.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 경영진이 말하는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구분을 헷갈려 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그동안 이런 상태로 만들었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가 풀리지 않은 이유가 분명해졌다. 교섭의 물꼬는 텄으나 물 들어가는 논에 난 구멍이 걱정인 이유다. 아직은 어떤 속단도 어떤 결론도 의미 없는 시간 위에 앉아 있다. 쌍용차 신차 티볼리가 출시됐다. 하루 계약대수가 나오고 주문이 밀렸다는 보도가 뒤따른다. 어쩌면 신차는 쌍용차 부활의 확실한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티볼리를 검색하면 수만 건의 언급이 나오고 수천 가지 버전의 사진이 등장한다. 아이와 어른 모습은 물론 외국인들도 티볼리를 말하고 있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언제 이런 글로벌 마케팅이 존재했었나 싶다. 모두 해고노동자 문제와 관련 있는 내용이다. 굴뚝에 올라 향후 교섭을 말하는 건 구두 신고 발등 긁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교섭은 열릴 것이다. 굴뚝에 오른 우리는 비상식량으로 버티며 이곳을 낯선 공간으로 삼아 빠른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고 무서울 때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가고 싶고 안방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고 난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갈 수 없는 현실적 처지에 놓여 있다. 굴뚝 중간 허리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는 밥보따리가 우리들의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힌드라 회장의 방한으로 교섭의 장은 열렸지만 교섭의 주체는 7년간 싸웠던 경영진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입니까? 그러나 희망은 절망을 비워낸 공간만큼 찾아드는 햇살 같은 거라서 기대를 품고 하루를 충실히 산다. 내일 열 문이 있지만 오늘 열 수는 없다. 쌍용차 아픔의 시간에 중지를 선언할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다. 아침마다 바뀌는 공장 풍경처럼 아직은 안정적 상황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어느 지점에 정박 중이다. 누차 말했듯이 해고자 복직과 희생자에 대한 처우 문제는 작은 문제며 더는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쌍용차가 어떤 가치를 보여주느냐만 남아 있다. 고단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시했던 지난 7년의 전시관을 폐쇄할 때가 되지 않았나. 번지르르한 신차를 전시하는 매장 앞에 고사리손으로 써내려갔을 아이가 든 작은 손 피켓을 봤다면 말이다. 쌍용차는 해고자 문제를 넘어,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넘어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우려와 기대에 응답할 말을 찾아야 한다. 전 국민적으로 7년의 시간을 가지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황금 기회를 주고 있다는 인식을 한다면 말이다. 굴뚝은 쌍용차가 찾고 있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그 말을 오늘도 생각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nomadc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