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힘있는 자들의 폭력
등록 : 2014-12-24 15:37 수정 : 2014-12-26 13:50
2014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20주년을 맞는 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마련된 법이지만 피해자를 충분히 법이 지켜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골프장 경기보조원 강제추행, 강석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를 비롯한 대학가의 교수 성폭력까지, 올 한 해 한국 사회는 그 어느 해보다 힘있는 이들이 저지른 성폭력으로 시끄러웠다.
2013년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강간·강제추행 발생 건수는 2만2310건으로 2009년 이후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증가하는 성범죄에도 수사기관에서 피해자가 입는 2차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전문가들은 통상적인 성범죄의 구성 요건에서 벗어난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조금만 어긋나면 진실성을 의심받아 한순간에 피해자가 ‘무고죄 피의자’가 된다고 지적한다.
<한겨레21>은 제1034호 표지이야기 ‘그리고 나는 꽃뱀이 되었다’에서 지인으로부터 강제추행 피해를 당한 뒤 오히려 무고 혐의로 기소돼 지난 1년 동안 검찰 수사로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한지선(가명)씨 사건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씨의 1심 재판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는 취재 내내 검찰로부터 또 다른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마음 졸였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도리어 무고 피의자가 된 이는 한씨만이 아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골프장 임원인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지난 11월 자신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골프장 전 여직원과 그의 아버지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해당 직원은 경찰에 신씨를 고소하면서 “2013년 6월22일 밤중에 기숙사 방을 찾아온 신씨가 껴안고 강제로 입맞춤했다”고 주장하는 등 정황을 자세히 진술했지만 고소 시한이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힘 가진 자들의 폭력부터 일벌백계하지 않는 한 법은 피해자들의 진정한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