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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위손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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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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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노동자들의 너무나 서글픈 노동… 가위에 베이고 염색약에 중독된 그들의 반란

사진/ 미용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외치고 있다. 보조이용사들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오랫동안 미용사로 불렸다. 최근에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얻었다. 미용실 아니, 헤어숍에서 아름다움을 가꾸던 ‘가위손’들이 근로기준법을 들고 나섰다. ‘미용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최저생계비는 보장해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복사한 근로기준법을 가방에서 꺼내며 서울경인지역평등노동조합(평등노조) 미용서비스지부 김민호(가명) 조직부장은 목청을 높였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미용사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노동은 아름답지 못한 탓이다.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30만∼40만원의 초임, 게다가 유해물질에 노출된 작업환경까지. 미용노동자들의 현실은 근로기준법을 들이대고 따져야 할 만큼 ‘전근대’적이다.

전근대적 근로조건이 꿈을 짓밟는다


전근대적 노사관계에 묶여 있던 미용사들은 지난 6월 노조를 설립했다. 노조일을 하다 ‘찍히면’ 다시 미용일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조직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불만이 팽배해 있는 탓이다. 미용서비스지부는 근로조건 개선의 일환으로 지난 11월1일 “근로기준법은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보험법 등 제반 노동관계 법규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며 서울 성북구의 ‘ㅍ’ 미용실 대표 강아무개씨를 서울북부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했다. 지난달 19일 첫 교섭을 가진 뒤 강씨가 교섭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 위반, 노동시간 위반, 생리휴가·연월차 휴가제도 위반, 4대보험 미시행. 고발장에 적힌 항목 하나하나는 미용노동자들의 현실을 방증한다. 사회적 안전망 밖에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은 비단 ‘펌앤컷’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용실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노동조건이다. 미용서비스지부는 이미 지난 6월 ‘ㅇ’ 미용실 등 4개 대형미용실 체인의 본점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한 바 있다. 4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조사를 진행중인 상태다.

“다들 부푼 꿈을 안고 미용학원을 나서죠. 하지만 미용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환상은 철저히 깨집니다.”

30만원. 경력 2년차 스탭(보조 미용사)인 김정수(24·가명) 조직부장의 첫 월급이었다. 99년 초 미용사 자격증을 딴 뒤, 재료상의 소개로 수원의 한 미용실에 일자리를 얻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청소와 샴푸질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였다. 밥먹을 짬도 내기 어려웠다. 오후 늦게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면 “어디 바쁜데 밥을 먹느냐? 넌 미용 배울 자격도 없다”며 인격적 모욕까지 당하기 일쑤였다.

매장 정리까지 끝내고 나면 어느새 시계바늘은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처럼 미용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은 일반화된 관행이다. 평등노조가 7월19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지역 미용사 113명을 대상으로 벌인 ‘미용서비스 노동자 실태조사’(실태조사)에 따르면, 89.5%가 하루에 11시간 이상 일한다고 대답했다. 12시간이 넘는 경우도 14.2%를 차지했다. 하지만 초과근로 수당을 지급받는 경우는 11.5%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김씨를 묶어둔 것은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월급날이 되자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쥐꼬리만한 30만원의 월급마저 다 받지 못한 것이다. 원장은 “매달 5만원을 보관해 뒀다가 1년이 넘으면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했다. 그를 잡아두기 위한 편법이었다. 김씨는 “인력난이 심한 미용업계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전한다. 결국 한달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미용실을 뛰쳐나왔다. 보름치 월급은 받지도 못한 채였다. 두 번째 미용실에서는 석달을 버텼다. 두 미용실 모두 처음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나올 때까지 가위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에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월급 70만원을 주겠다는 미용실이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월급날에는 5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항의를 하니 그나마 방세 명목으로 5만원을 더 얹어줬다. 방세 15만원에 교통비, 한달에 두세 차례씩 받는 미용 세미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생활비로도 빠듯한 수준이다. 김씨는 “그래도 배우겠다는 욕심에 오늘도 30만원이 넘는 가위를 샀다”며 “미용사 생활 2년 만에 남은 것은 가위 4개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스탭 90%가 최저임금 미만 받아

사진/ 미용실들은 '관행'을 내세워 저임금을 주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대형미용실 본점들의 수두룩하다.(박승화 기자)
미용실의 저임금은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4년차 이하의 스탭 중 14.3%가 최저임금(42만1490원)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1년차 스탭만 놓고 보면, 33.3%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저임금∼50만원이 26.5%, 50만∼60만원이 34.7%를 차지했다. 평등노조는 “대부분의 미용노동자들이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스탭의 90% 이상이 최저임금 미만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대형미용실이라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용실 체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스탭에서 디자이너로 올라가려면 보통 5년 정도가 걸린다. 청소 등 잡일을 하는 스탭을 2년 정도 하고 나면 남자 손님의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중상’이 된다. 중상 1년을 거치면 여자머리 컷을 하는 ‘시아기’(마무리)로 올라간다. 다시 시아기 생활을 1년 넘게 거치면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디자이너로 인정받는다. 물론 일이 끝난 뒤에도 미용실에 남아서 따로 미용 기술을 익히는 끈기와 열성이 뒤따라야 가능한 일이다.

한 단계씩 올라가는 동안 몸을 돌볼 겨를도 없다. 5년차 디자이너 김희정(25)씨는 요즘 맘껏 웃지를 못한다. 목이 아파서다. 지난해 겨울 손님 머리를 자르던 중 갑자기 목이 아프고 숨이 막혀와 미용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뒤 3일 동안 말 한 마디 못한 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1년이 다 돼 가는 요즘도 목의 부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평등노조에 따르면 미용실의 공기에는 파마약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헤어스프레이에 포함된 플라스틱 가루, 짧은 머리카락 등이 섞여 있다. 목뿐 아니라 김씨의 온몸은 종합병동이라 부를 만하다. 항상 급하게 끼니를 해결하다보니 소화제는 달고 산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까 몸이 붓고 허리가 아픈 것은 기본이다. 겨울이면 염색약, 중화제의 독성으로 손이 갈라진다.

허리가 아플 때마다 김씨는 통증보다 더한 불안감을 느낀다. 최근 미용일을 하는 김씨의 친구가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받은 일이 떠올라서다. 하루 종일 불편한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 미용일의 업무 탓이 컸지만, 김씨의 친구는 수술비를 한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도 없고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탓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미용노동자들은 사회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된 미용노동자는 17.7%에 지나지 않는다. 김씨는 “이만큼이나마 온 것도 힘들었는데 몸이 아파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늘 불안하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겹쳐 미용사들의 이직률은 매우 높다. 김씨는 “미용학원에 함께 다닌 동갑내기 열명 중 지금까지 미용사를 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둘밖에 없다”고 전한다. 몸까지 상해가며 5년을 버틴 김씨의 임금도 고작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언젠가 나의 미용실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어렵게 살아남아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IMF 이후 미용실 등록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미용실이 우후죽순 늘어나 경쟁이 심해진 탓이다. 더구나 미용실의 프랜차이즈화가 가속화되면서 ‘내 미용실’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언제까지 푸대접을 관행으로 여길 건가

미용서비스지부 김민호 조직부장은 “미용사의 노동자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데도 사업주들은 아예 노동법과 노사관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없다”고 한탄한다. 최근 경기도 시흥시에 어렵게 미용실을 연 김철주 원장은 “언제까지 이런 관행을 유지할 수는 없다. 더이상 ‘우리 때는 더 고생했다’는 논리로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며 미용실 사업주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최근 미용업계는 스탭난에 시달리고 있다. 더이상 열악한 조건을 감내할 ‘신세대’들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60만 미용서비스 종사자 중에 단 몇명의 영광일 뿐인 억대 연봉의 환상도 그들을 묶어둘 수는 없다. 가위에 베이고, 염색약으로 갈라진 거친 손들이 지금 노동자로 나서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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