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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3 아들과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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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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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아들과 제법 신경전을 벌였다고 생각했는데, 대입 수능시험 파문을 보니 명함도 못 내밀겠습니다.

시험이 어려워 테러라는 비판이 나오고 교육부총리가 사과를 하고, 학원이 개최한 설명회에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학부모들이 초만원을 이루고….

주식시장이나 아파트 청약시장보다 더한, 치열한 생존경쟁과 승부의 세계를 보는 듯합니다. 이를 두고 영국 가 이해할 수 없는 사생결단의 시험이라며 ‘죽느냐 사느냐’라고 한 관전평이 실감납니다. 는 우리에겐 일상적인 풍경으로 굳어진 이런 분위기에 못 이겨 지난해에 6만명 이르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중도하차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기고 보자는 우리 사회가 교육을, 교육이 이러한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서로 이끌지 못하고 서로 꽉 붙들어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최근 고교 선지원을 앞두고 실업계를 가겠다고 해 승강이를 벌였습니다. 시간을 갖고 선택을 하자고 설득해 인문계로 방향을 돌리면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교육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성적이 중간쯤되는 아이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공부는 싫다, 재미가 없으니까. 고등학교 가서 3년 동안 시험공부에 매달릴 생각을 하니까 막막하다. 그리고 솔직히 대학 나와봐야 취직하기도 어렵지 않느냐. 기술 하나 배워서, 외국 나가서 살고 싶다. 떨어지면 검정고시 보겠다며 5명밖에 뽑지 않는 대안학교에 지원한 친구의 결정에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때 외국 학교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 아이인데. 왜 벌써부터 학교공부만큼은 싫다고 자빠지는가?

교과서를 펼쳐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 전 시절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제가 아이라도 탈출을 꾀했을 것 같습니다. 입시에 매달렸던 - 상당수 과목은 무엇 때문에 외웠는지도 모른 채- 지난날을 생각하면 ‘내 인생 돌리도’라는 외침이 아직도 절로 나오는 판인데.

세상이 확 바뀌고 디지털로 변하고 엄청 다양해지고 더욱 풍요로워진 지금, 자식들까지 빛바랜 교과서로 획일적인 성적순의 줄서기를 되풀이해야 하는가? 100년, 1천년 앞선 가상세계에 빠져 있는 비주얼 세대에 연대기식의 고색창연한 역사교과서와 딱딱한 영어교과서는 무엇을 말해줄까?

교육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란 이상적인 목표까지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세칭 일류대에 들어가기를 크게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중·고교가 성년이 되기 전에 기죽지 않고, 제 하고 싶은 것 찾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입시가 아이를 잡지 말았으면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커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나라니까.

쉬운 수능이 좋은 수능입니다. 그 바탕 아니면 창의성이니 개성이니 하는 싹수가 아예 나올 수도 없으므로.

한겨레21 편집장 정영무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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