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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해리슨, 당신이 있어 행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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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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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58). 그는 냉소적이면서 지적인 존 레넌이나 몽상가였지만 성실했던 폴 메카트니, 무표정한 반항아였던 링고 스타와는 달리 '조용한 철학자'였다. 해리슨은 무대 위에서도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레넌이나 메카트니와는 달리 자신의 기타 연주에 몰입했다. 그런데 해리슨에게 반했던 수많은 비틀스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요즘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 <피플>은 최근 해리슨이 미국 뉴욕의 스테이턴 아일랜드 대학병원에서 '실험적인' 암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기존 치료방법으로는 머리를 갉아먹고 있는 뇌종양을 제거하기 힘들자 육신을 의학 실험용으로 내놓은 셈이다. 대변인 엘리자베스 프로인드는 "해리슨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로 그의 상태를 내비쳤다.

해리슨은 지난 6월 스위스의 산 조바니 암치료 전문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후 방사선 치료를 받았으나 경과과 그리 좋지 않았다.

해리슨은 이미 3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독한 골초인 그는 1998년 목에 생긴 악성종양 제거수술을 받았으며, 올 5월에는 폐암수술을 받기도 했다. 또한 1999년 12월 31일 런던의 집에서 정신벽력이 있는 침입자의 공격으로 가슴에 자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해리슨은 범인 마이클 에리브러햄과 그의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로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 특히 그 의사는 "에이브러햄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해리슨이 고통을 받게 된 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원망과 미움을 털어내려는듯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했다.

해리슨은 다른 비틀스 멤버와는 달리 한부모가정 출신이 아니다. 1943년 2월 25일 버스기사의 아들고 태어났다. 그는 비틀스의 최연수 멤버였으며 주된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다. 존 레넌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비틀스의 중요한 작곡가였다. 그는 첫 번째 작품인 <나를 괴롭히지 말아요!>를 시작으로 수백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녹음되지 않아 더이상 그의 작품을 감상하지 못할 성싶다.


골초였던 해리슨은 후두의 지독한 통증 때문에 비틀스의 미국 무대 성공의 계기가 됐던 1964년 2월 9일 열린 에드 설리번 쇼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했다. 2년 뒤 그는 10대 소녀 모델이었던 패티 보이드와 결혼했다. 이미 죽을 고비를 넘긴 해리슨은 초연하다. 벗이자 비틀스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에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규 기자/ 한겨레 국제부 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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