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중심 출산문화에 밀려난 조산사들… 공포의 분만대 벗어나 산파와의 정서적 교감을
지난 10월6일 둘째 아이를 낳은 임미순(34)씨는 두번의 출산경험을 각각 ‘지옥’과 ‘천국’으로 기억한다. 첫아이 때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세상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를 ‘꺼내기’ 위해 임씨는 병원에서 유도분만을 했었다. 촉진제를 맞은 뒤 스물두시간 만에 분만대에 오른 그에게 첫 출산은 신비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다만 잊고 싶은 경험이었다. “파김치가 된 저에게 내일 출근해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며 의사 선생님이 가버릴 때 정말 세상에 버려지는 느낌이었어요.”
아이를 ‘꺼내는’ 출산문화의 희생양들
그는 둘째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았다.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다. 첫 출산 때의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두 번째 임신 때는 출산교실 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산부인과에 다녔다. 그러나 “예정일이 연휴 때니까 유도분만을 하자”는 의사의 말에 아연해졌다. 한참의 망설임 끝에 365일 개방한다는 조산원을 찾았다. “괜히 그런 데 갔다가 큰일나면 어쩌려느냐”고 식구들이 말렸지만 ‘의사의 일정에 나의 출산을 끼워맞추기 싫은’ 그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두 번째 출산은 스스로 놀라울 만큼 쉽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조산사는 진통 시작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옆에서 끊임없이 아픈 허리를 쓰다듬어주고, 격려하고, 기다렸다.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 뒤에는 답십리에서 그가 사는 과천 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직접 씻기고 수유에서 운동시키는 법까지 귀찮을 만큼 자세하게 일러줬다.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아이가 조금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새벽 서너시에도 조산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한다.
임씨의 출산을 도운 서울 일신조산원의 서란희 원장은 30년 동안 아이를 받아온 조산사다. 그가 71년 이곳에 조산원을 세울 때만 해도 서울에 700여개의 조산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열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지가 맞지 않아서 조산원을 운영하기 힘들죠. 병원에 취업하지 않으면 길이 없어요.” 한달에 스무명가량의 산모를 받는 이곳도 운영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씨를 맥빠지게 하는 건 돈문제가 아니라 조산원, 그리고 조산사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다. “만족스럽게 조산원을 나섰던 산모들이 가끔 찾아와서 하소연해요. 병원에 갔다가 조산원에서 출산했다는 말을 하면 의사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핀잔을 준다는 거죠. 같은 의료인들조차 조산사를 무시하는 현실이 답답하죠.” 출산과정 자체가 하나의 의료행위가 돼버린 요즘, 조산사라는 단어조차 일반인들에게는 생경한 단어다. 산모의 출산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돕는 조산사는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 한해 1년간의 수련과정과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을 획득하는 전문직이다. 그러나 70년대 말 이후 의료보험제도 실시와 함께 병원 중심의 출산이 보편화되면서 대표적인 사양직종 가운데 하나가 됐다. 2001년까지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한 조산사 면허증 자격자는 8천여 명. 이 숫자는 사망자와 비의료인까지 포함한 숫자로 현직 조산사 인구는 절반 정도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조산사’라는 직함보다 ‘간호사’라는 직함으로 일한다. 병원에서 조산사의 독립적인 영역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28조에 따르면 산부인과 병원 간호인력의 3분의 1 이상을 조산사로 운영하게 돼있지만 실제로 이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워낙 의사 중심으로 출산이 진행되다보니 산모들도 조산사보다는 의사가 한번 더 봐주길 바라죠.” 지방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는 한 조산사는 “의사들도 조산사를 지시에 따르는 부하 정도로 생각하고, 노동강도에 비해서 보수를 더 받지도 못하니 조산사들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진통에서 출산까지’ 산모와 함께
전국 산부인과 병원 가운데 조산사를 둔 병원은 많지 않다. 조산사가 있더라도 산모가 조산사와 간호사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드물다. 서울 동작구의 청화병원은 ‘예외적인’ 병원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는 다섯명의 조산사들이 산모를 ‘진통에서 출산까지’ 보살피고 있다. 아기가 산도로 나오는 십여분 정도의 출산과정을 제외하면 전후의 모든 과정을 조산사가 지키는 이 병원의 제왕절개율은 30% 미만. 국내 산부인과 병원의 전체 제왕절개율을 크게 밑도는 이 기록은 조산사의 역할이나 숫자 감소가 단순히 하나의 직업군이 아니라 출산문화 전반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부끄러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제왕절개율은 조산사의 감소와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 9월 방한한 프랑스의 인권분만 전문가 미셸 오당 박사는 “제왕절개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어김없이 의사에 비해 조산사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다. 한국에 제왕절개율이 높은 이유는 조산사가 부족해지면서 의료진의 개입이 많아지기 때문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럽의 출산문화와 비교하면 이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전세계에서 산모에 대한 보호체계가 가장 잘돼 있다고 인정받는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산모 가운데 33%가 조산사의 도움 아래 집에서 가정분만을 한다. 병원에서 분만하더라도 수술을 필요로 하는 이상이 없는 한 분만의 전 과정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는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건 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역시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70년대 들어 여성운동의 큰 축이 출산문제로 이어지면서 ‘환자는 의사에게, 산모는 산파에게’ 구호가 유럽의 출산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당시 여성학자들은 근대적인 의료체계 도입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과정을 밝혀냈다. 이것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소외되고 대상화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되찾기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출산문화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사람들이 바로 산파, 즉 조산사였다. 독일 유학 중에 출산을 경험했던 여성학자 김재희씨는 “참고 견뎌야 하는 출산의 공포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진통마저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자기 성장의 체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산파였다”고 회고한다. 산파의 역할이 단순히 아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임신의 순간부터 산모와 함께하면서 여러 가지 기능적인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듬직한 정서적 지지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경남지역에서 12년 동안 병원 조산사로 근무했던 조산사 홍연수(36)씨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두해 전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었다. 산전교육 전문 간호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홍씨는 임신부들이 출산이나 자신의 몸에 대해서 무지한 채 병원에 오기 때문에 겪는 고생을 보면서 산전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경험이 많은 조산사들만큼 출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없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근무하면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 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의 대부분을 사장시킬 수밖에 없죠.” ‘프리랜서 조산사’가 된 뒤 홍씨는 여러 병원의 문을 두드리며 출산교실을 섭외했지만 “그런 게 왜 필요하냐”, “자체 인력으로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며 1년 내내 문전박대만 당하다가 지난해 한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출산교실을 운영하면서 작지만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출산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조산사들이 조산원을 차려 독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병원에 대응할 경쟁력을 갖기도 힘들고요. 그렇지만 출산과정에서 조산사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요. 산전 교육이나 성교육 같은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죠.”
여성 몸의 권리찾기… 첨단분만의 후진성
지난해 서울방송의 출산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이 방영된 뒤 수중분만, 르 봐이예식 분만 등 새로운 출산법이 소개됐지만 반짝 유행처럼 지나갔다. 여전히 산모들은 집행을 기다리는 수인처럼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진 ‘첫경험’의 기억을 안고 분만대에서 내려온다. 첨단으로 포장된 출산문화의 후진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새로운 출산법이 아니라 ‘환자는 의사에게, 산모는 산파에게’라는 구호가 아닐까.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임씨의 출산을 도운 서울 일신조산원의 서란희 원장은 30년 동안 아이를 받아온 조산사다. 그가 71년 이곳에 조산원을 세울 때만 해도 서울에 700여개의 조산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열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지가 맞지 않아서 조산원을 운영하기 힘들죠. 병원에 취업하지 않으면 길이 없어요.” 한달에 스무명가량의 산모를 받는 이곳도 운영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씨를 맥빠지게 하는 건 돈문제가 아니라 조산원, 그리고 조산사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다. “만족스럽게 조산원을 나섰던 산모들이 가끔 찾아와서 하소연해요. 병원에 갔다가 조산원에서 출산했다는 말을 하면 의사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핀잔을 준다는 거죠. 같은 의료인들조차 조산사를 무시하는 현실이 답답하죠.” 출산과정 자체가 하나의 의료행위가 돼버린 요즘, 조산사라는 단어조차 일반인들에게는 생경한 단어다. 산모의 출산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돕는 조산사는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 한해 1년간의 수련과정과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을 획득하는 전문직이다. 그러나 70년대 말 이후 의료보험제도 실시와 함께 병원 중심의 출산이 보편화되면서 대표적인 사양직종 가운데 하나가 됐다. 2001년까지 보건복지부에서 발급한 조산사 면허증 자격자는 8천여 명. 이 숫자는 사망자와 비의료인까지 포함한 숫자로 현직 조산사 인구는 절반 정도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조산사’라는 직함보다 ‘간호사’라는 직함으로 일한다. 병원에서 조산사의 독립적인 영역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28조에 따르면 산부인과 병원 간호인력의 3분의 1 이상을 조산사로 운영하게 돼있지만 실제로 이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워낙 의사 중심으로 출산이 진행되다보니 산모들도 조산사보다는 의사가 한번 더 봐주길 바라죠.” 지방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는 한 조산사는 “의사들도 조산사를 지시에 따르는 부하 정도로 생각하고, 노동강도에 비해서 보수를 더 받지도 못하니 조산사들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진통에서 출산까지’ 산모와 함께

사진/ 약 30년 동안 한자리에서 산모들을 받아온 일신조산원. 이곳이 문을 열 때만 해도 동네마다 하나씩 조산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사진/ "조산사는 단순한 아이받는 이가 아니라 임신에서 출산까지 함께 가는 동반자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첫 출산을 앞둔 산모를 격려하는 일신조산원 서란희 원장.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