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피해자가 전범이란 말인가
등록 : 2001-11-06 00:00 수정 :
이희자(58·사진 가운데)씨의 부친 이상현씨는 1944년 중국 광시성 군인병원으로 끌려갔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한살배기 딸은 반세기가 지난 93년에야 부친이 사망한 것을 알았고, 97년 정부기록보존소 서가에 방치돼 있던 명부를 통해 부친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무단합사’에 대한 취소조처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고, 한국 정부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11월1일 강제징집 피해자 유족, 일본 시민단체 등과 손잡고 일본국가와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8월13일에 있었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본국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신사참배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 소송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도 있다, 말도 안 된다”고 비난했다. 11월5일 오전 이씨는 박진부 부회장(사진 왼쪽), 김은식 사무국장(사진 오른쪽)과 함께 일본대사관을 찾아 “한국인 피해자들과 일본의 양심세력을 ‘이상한 사람’ 운운하며 능멸한 발언에 대해 사과할 것”과 “이에 대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고이즈미 총리를 명예훼손 혐의로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씨는 그동안 일본을 100여 차례 드나들면서 자료발굴에 힘을 쏟았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는 한국인은 2만1182명에 이르고, 그중 118명의 유족들이 합사취하소송의 원고단에 합류해 있다. 이씨는 군인·군속 피해자들의 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뉴기니 전선에서 생환해 99년 사망한 이기두씨와 필리핀 전선에서 생환해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김지곤씨가 현지전사로 엉뚱하게 처리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아버지가 A급 전범자들과 나란히 일본 천왕에 대한 충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진행중인 피해보상 재판에 힘을 쏟으면서 실증적인 자료를 찾아내는 게 시급합니다. 우리 모두 이기는 싸움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문의: 02-747-886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