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팔보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외동아이와 형제가 있는 아이의 리더십, 성숙도, 사회성, 유연성, 안정성 등 16가지 속성을 분석한 결과 둘 간의 점수에 차이가 없었고 성취 동기와 자존감에서는 외동이 점수가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형제가 있는지가 개인의 사회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왜 고정관념은 강화되기만 하는 걸까. 로렌 샌들러는 “가족역학과 아동발달에서는 민간의 조언과 대중의 믿음이 고스란히 전문 지식의 원천이 되었다”며 “500건이 넘는 연구가 외동에 대한 편견이 모두 고정관념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학적인 연구는 우리의 믿음에 맞지 않으면 무시되어버린다”고 분석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형제가 있다고 반드시 사교적인 것이 아님도 쉽게 알 수 있다. 11살·9살 자매를 둔 김현영(45·가명)씨는 둘째딸이 언니만 좋아해서 걱정이다. 언니와 있을 때는 잘 놀고 이야기도 잘하는데 언니와 떨어져 학교에 가면 입을 꾹 닫고 지내는 ‘합죽이’가 된다. 김씨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다보니 어릴 때부터 언니와 함께 학원에 가고 언니 친구들과 같이 놀면서 둘째가 첫째의 껌딱지가 돼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모든 형제자매가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형제자매는 이런 문제가 있기도 하다. ‘둘이라서 나빴어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형제가 있으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제나 옳을까. 김경식(34·가명)씨는 “2살 아래인 동생이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란 뒤에는 집안의 경조사를 의논할 때 동생이 있어서 든든하다. 이런 관계를 내 아이에게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제관계에서 입은 상처로 아이를 하나만 낳겠다는 결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박은진(39·가명)씨는 아이를 낳는다면 반드시 하나만 낳겠다는 신념에 가까운 결심이 있었다. 4자매 가운데 막내였던 박씨는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세 언니는 아버지를 모두 어려워했지만, 박씨만은 아버지와 장난치며 놀았다. 대신 큰언니는 자라면서 물질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결국 둘째언니와 셋째언니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늘 사랑받지 못한다는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박씨는 “셋째언니는 그 때문인지 지금도 분노 조절이 잘 안 되고 비뚤어졌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돌봐야 하자 언니들은 모두 그 일을 박씨에게 떠밀었다. “가장 많이 사랑받았고 형편도 좋으니 네가 해야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경제적·육체적 부담은 컸다. 그 일에서 형제들은 누구도 박씨를 돕지 않았다. 남편과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버지 제사도 지내지만 명절 때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다. 박씨는 이 때문에 쌍둥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을 지워야 하나’라는 “돌이켜보면 너무도 끔찍한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만큼 형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득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 부모로서 자원과 애정을 두 아이에게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심각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남편은 어디 나갈 때 딸아이부터 챙기고 딸아이에게만 관심이 많아서 나는 균형을 위해 아들을 더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조차 결국 공평하게 애정을 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비교와 경쟁의 고통에서 자유롭다
많은 학자들은 외동의 장점으로 ‘비교와 경쟁의 고통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꼽는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쓴 미국 시카고대 교수 존 카치오포는 “자녀가 많은 가족은 형제끼리 비교당하고 종종 고통스러울 정도로 차이가 강조되기 때문에 가정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교와 경쟁 때문만이 아니라 자원이 집중됨에 따라 외동아이의 성취가 높다는 이론도 있다. 주디스 블레이크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보건대 교수는 ‘자원 희석 모델’을 사용해 외동의 성취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부모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자녀가 여러 명이면 자원이 분산되지만 자녀가 한 명이면 자녀가 그 자원과 애정 역시 독점함에 따라 성공 기회가 높다는 것. 손석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도 “생애 초기에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외동아이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외동을 낳는 부모가 그 선택을 하는 데는 ‘자신의 행복’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김명은씨가 아이를 하나만 낳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김씨는 대기업 인사부에서 일한다. 김씨는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에서의 입지는 물론이고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의욕과 비전이 경감되는 게 느껴진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이 시간이 더욱 길어지고 육아 부담은 두 배가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행복하면서 생활도 육아도 일도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7살 딸을 둔 이혜정(34·가명)씨도 “육아의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의 딸은 아기 때 보채는 일이 많았다. 분유를 먹을 때, 잠을 잘 때, 낮에 놀 때도 늘 안아줘야 했다. 밤잠을 설친 적이 여러 번이다. 이씨는 지금도 회사에 갔다 집에 오면 아이와 저녁 먹고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모두 보낸다. 그나마 이제 딸이 7살이 되면서 혼자 노는 법을 조금씩 배워감에 따라 이씨 역시 퇴근 뒤 자신의 시간이 생겼다. 이씨는 “이제 하고 싶은 어학 공부를 퇴근해서 할 수 있겠구나, 가끔 영화도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다면 육아의 고통이 반복되고, 내 시간은 다시 7년 뒤로 유예되지 않겠나. 그걸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 가족 수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외동은 절대선이 아니다. 로렌 샌들러는 “하나만 낳기로 선택한 부모들은 아이에 관해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스틴(남편)과 나는 두 아이가 거품 욕조 안에서 물장구를 치는 모습, 갈고리로 긁어둔 낙엽 더미에서 뒹구는 모습, 어두운 이불 속에서 서로 속닥거리는 모습, 저녁 식탁에서 서로 놀리는 모습, 나의 장례식장에서 서로 손을 꼭 잡는 모습 등을 아예 모르기로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동이라고 해서 반드시 외롭거나, 이기적이거나, 사회성이 낮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한다. 그가 말하는 ‘아이 하나 낳을 자유’에는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가족의 수를 결정할 때 잘못된 고정관념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자신의 미래를 잘 예측한 뒤 그에 따라 결정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이 하나 낳을 자유’는 다시 말하면 사회·문화적 압력 없이 ‘내 가족 수 내가 선택할 자유’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참고 문헌 <똑똑한 부모는 하나만 낳는다>(중앙 m&b), <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0세부터 사춘기까지 외동아이 육아법>(나무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