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2일 출간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전시돼 있다. 이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순위 7위에 올랐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정의란 무엇인가> 뒤 새누리 ‘경제민주화’ 공약 피케티 개인을 넘어서 자본주의 비판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는 흐름도 나타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더숲)는 올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최근 한두 달 새 <한국 자본주의>(장하성·헤이북스), <욕망 자본론>(신승철·알렙), <자본론 공부>(김수행·돌베개), <21세기와 자본론>(황태연·중원문화), <오늘 자본을 읽다>(강신준·길) 등이 출판됐다. 재계와 보수적 입장의 경제학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케티의 인기가 기폭제가 되어 ‘부자 증세’ 등 정치적 구호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여기서 피케티의 두 번째 열쇳말이 등장한다. 바로 세금이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완화할 대안으로 ‘돈이 돈을 버는’ 자본수익률을 낮추는 방법을 제시한다. 최상위계층에게 최대 80%의 소득세를 물리고,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해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나라를 옮겨다니는 걸 막자는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재계와 여당 등은 감세가 대세처럼 돼 있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뀔까봐 걱정하는 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담뱃값, 주민세 등 쪼잔하게 ‘서민 증세’로 가고 있는데 때마침 방한한 피케티로 인해 ‘부자 증세’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9월16일 연 ‘피케티 21세기 자본론과 한국 경제’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는 이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피케티가 한국 조세정책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인세 부담을 높이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피케티가 월드스타라서 일반 국민들이 거기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될까봐 걱정이다.”(현진권 자유경제연구원장) “피케티처럼,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 세금을 줄여서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성장률을 올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지난 9월12일 피케티가 운영하는 ‘월드톱인컴데이터베이스’(WTID)에 한국 통계 연구자료를 등재한 김낙년 교수는 “불평등과 증세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확장될 거다. 하지만 차분한 연구 결과에 기반한 논의가 아니라, 피케티를 소재로 써서 서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정치 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일방적인 피케티 ‘때리기’와 ‘띄우기’로 변질돼가는 논의 지형을 비판했다. 한국 사회의 ‘피케티앓이’는 잠시 지나가는 열병으로 그칠까, 아니면 장기적으로 ‘부자 증세’라는 정책 변화를 끌어낼 ‘신화’가 될까? 아직 판단을 하기엔 이르다. 앞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 부 이상 팔리고 각종 강연·북콘서트 등으로 인기를 끌자,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재빨리 ‘경제민주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담론은 현실을 움직였지만, 바꿔내지는 못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개인적으로 피케티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태인 새사연 원장은 “최경환 부총리가 소득 주도 성장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결국 ‘부채 주도 성장’ 위주의 정책을 내놓는 것처럼 여당이 진보 쪽 화두를 선점하는 것에 재미 들린 것 같다. 미국에서도 피케티 열풍이 정책 반영에 미친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 게다가 한국은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이라 부자 증세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다”라고 내다봤다. 담론은 현실을 움직였지만 바꿔내지는 못해 그러나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담론은 허무하다. 피케티 스스로도 <21세기 자본> 서문에 썼다. “부의 분배라는 문제는 언제나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며,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고 갈등적인 면을 갖게 된다.” 지난 9월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피케티가 한국에 던진 첫 메시지는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지나치게 부의 격차가 벌어지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