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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엽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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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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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자유교양 고전읽기’ 경시대회의 학교 대표로 뽑아주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이기도 했던 담임선생님이 나의 글을 칭찬해주었다. 나는 그 두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기억’을 빼놓고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이 지닌 장점과 재능을 발견하고 ‘인정받은 기억’을 안겨줄 줄 아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 하나하나로부터 아무런 장점과 재능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교사가 가장 무능한 교사이며 아이들로부터 꿈을 박탈하는 것이 가장 나쁜 교육이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이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출부를 하고 몸을 파는 엄마까지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우리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계급의 세습?


학부모들은 과외비를 대느라고 허리가 휘어지고 아이들은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뺑뺑이를 도느라 자신이 지닌 창의적 재능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다.

학교가 바뀌고, 교사가 바뀌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았을 교육개혁안인 ‘7차 교과과정’은 세 가지를 큰 기둥으로 하고 있다. 교사들간의 경쟁체제 도입과 수익자 부담에 의한 학교 차별화, 그리고 학급별 정원 축소가 그것이다. 나도 몇곳의 학원을 전전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의 한 사람이기에 그 내용을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너무도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교사들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하는 정책입안자들의 사고방식이다. 교사의 등급을 매겨서 성과급을 지급하고 부적격교사는 도태시키겠다?

나의 경우로 축소하면 아이가 5학년이 되는 동안 ‘촌지’를 들고 찾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며칠 밤을 고민하게 한 담임이 하나였고, 아주 좋은 교사가 둘이었으며, 그저 그런 교사가 둘이었다.

부적격교사로 도태되어야 할 교사는 첫 번째의 그 한명이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을 살아온 짧은 경험에 비추어보면 바로 그 교사가 가장 좋은 등급을 받고,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했던 두 교사는 가장 나쁜 등급을 받을 확률이 아주 높다.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 않다면 학교가 지금처럼 황폐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일년에 고작 몇십만원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서 교사들의 이마에 A급, B급, C급 딱지를 나눠 붙이겠다는 가소롭다 못해 엽기적기까지 한 방법론이다.

일부 부적격교사들의 설 자리를 없애고 교단을 활성화시키는 지름길은 교무위원회의 의사결정 기구화나 교장직선제 같은 방안들을 통해 양심과 사명감, 능력을 가진 교사들이 교육의 중심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걱정스러운 것은 교육의 불평등을 제도화하겠다는 그들의 대담한 발상이다. ‘자립형 사립고’란 게 쉽게 말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좋은 시설의 좋은 교실에서 지들끼리 공부하게 만들어주자는 것 아닌가. 어차피 별볼일 없는 집 아이들은 도토리 키재기로 그대로 두고 최상류층만 따로 교육시켜서 ‘계급’을 세습시키겠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형식적인 교육의 평등주의가 존재했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 아이는 어떻게든 공부시켜서 남부럽지 않게 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일 수 있었다. ‘자립형 사립고’란 것은 교육에 대한 서민들의 처절하고도 최종적인 희망마저 원천 봉쇄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교사의 문제가 아닌 교육의 문제

그나마 평가해줄 유일한 정부방안인 ‘학급당 정원축소’는 교실만 쪼개서 한 학년이 20반이 넘어가게 만드는 황당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교육부의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망국적 ‘개혁안’이 아니라 국민들이 보여주는 무관심이다. 내 아이의 학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내 아이의 교육 때문에 인생을 저당잡히고, 내 아이의 미래 때문에 이민을 꿈꾸면서도 이 엄청난 망국적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토록 철저하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7차 교과과정’을 둘러싼 문제는 결코 교사집단의 이해가 걸린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이며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터진 못 둑 아래서 제논의 물꼬만 열심히 살펴온 결과가 오늘의 우리 교육현실이다.

방현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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