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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화문을 항해하는 세월호 공동체

특별법 합의안 나온 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광화문광장을 찾는 시민들…
청와대 안으로 관광객은 들어가도 유가족들은 끝내 내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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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19 14:26 수정 : 2014-08-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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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은 어느덧 ‘세월호 공동체’가 되었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희생자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씨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슬픔과 연대를 나누는 장이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이곳은 하나의 공동체다. 누구나 스스로 손팻말을 들고, 스스로 부스로 나가 서명을 받는다. 태어나 처음 만난 이를 부둥켜안고 앙앙 울음을 운다. 위로한다. 함께 싸운다. 여기에 사제가 있고, 학자가 있고, 스승이 있고, 노동자·학생·예술가들이 있다. 아이와 노인이 있고, 엄마·아빠와 아들·딸들이 있다. 역할을 분담하지 않아도 모두가 “견딜 수 없어서” 모여들어 서로를 돌보는 서울 광화문광장의 시민들은 ‘세월호 공동체’라고 부를 만하다.

쓰러지지 않으려 울음 견디는 유민 아빠

“평소의 구분과 양식이 모두 파괴되면, 대다수 사람들은 형제를 보살피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런 목적의식과 유대감은 혼란과 두려움, 상실과 죽음 속에서도 기쁨을 가져온다.” 재난 뒤 찾아온 새로운 민주주의와 공동체에 대해 기록한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미국의 저술가 레베카 솔닛은 적었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공동체는 전대미문의 슬픔을 뚫고, 조금 늦게 찾아온 재난공동체다. 2014년 8월 서울의 여름, 은총은 천주교 교종 프란치스코에게 있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광화문광장에서 이웃의 슬픔을 보듬는 장삼이사의 얼굴 위에 깃들어 있었다.

농성장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어깨를 들썩인다. 꾹꾹 눌러 참다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는 중이다. 유민(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10반) 아빠 김영오(47)씨가 야윈 몸을 이끌고 농성 천막에서 나와 소녀들을 토닥인다. 한 소녀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쏟아내듯 이야기한다. “아저씨 진짜 강하고 멋진 분이세요. 아저씨는 꼭 이길 거예요.” 울음에 가려 말을 그친다. 김씨와 꼭 끌어안은 채 소녀가 말을 잇는다. “왜냐하면 아저씨는 아빠잖아요.” 유민이와 같은 또래의 소녀들이 그를 ‘아빠’라 부른다. 울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더 오래 싸우기 위해 그는 감정을 견디는 것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아빠’는 광화문 농성장의 구심점이다. 지난 8월12일 김영오씨의 단식은 30일째에 접어들었다. 원래 마른 체구였던 김씨의 체중은 57kg에서 48kg으로 15% 줄었다. 잇몸의 출혈로 양치도 하기 어렵다. 안홍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일주일 전 “제대로 단식을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모욕했지만 딸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싸우는 아빠의 자세엔 아직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므로 광장을 찾으면 누구나 중앙의 천막에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유민 아빠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오른쪽 자리는 그로부터 사흘 뒤 동조단식을 시작한 도철 스님이 지킨다. 시민들은 성지순례라도 하듯 전국 각지에서, 해외에서 찾아와 그를 위로한다. 이날은 프랑스에서 한 작가가 김영오씨를 찾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를 르포르타주 만화로 그린 에마뉘엘 르파주다.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싸우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그는 밝혔다. 즉석에서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모든 희생자의 얼굴을 담은 소녀상을 그려 유민 아빠에게 전달했다. 말이 통해도 슬픔을 전할 수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깊이 함께 우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를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해주세요.” 멀리서 찾아와 위로를 전한 이에게 유민 아빠가 화답했다.


“견딜 수 없어서” 광화문 찾는 시민들

언어학자이자 진보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도 <한겨레>를 통해 8월14일 김영오씨에게 전자우편 편지를 보냈다. “비극의 (세월호) 유람선 사고 희생자라는 사실을 전해듣고 깊은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정부가 끔찍한 참사의 진실 규명에 나서도록 설득하기 위해 당신이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었다. 당신의 고귀한 행동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굳은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그는 썼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들의 투쟁에서 언론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겨레21〉은 가족·시민들과 함께하는 2박3일의 동조단식을 통해 세월호 국민농성의 의미를 제3의 외부자가 아니라 상처받은 내부자의 시선에서 함께 보고자 했다.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시민들은 대부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유민 아빠를 힘껏 안아준 뒤 위로받는 것은 시민들이다. 인디밴드를 하고 있는 디안과 만화가 하비도 그랬다. 8월13일 광화문광장을 찾은 그들은 직접 그린 그림과 위로의 메시지를 한장 한장 펼치며 김영오씨에게 전달했다. “유민 아버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면서 계속 화만 났어요. 말없이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다가 이렇게 찾아왔지요. 아버님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셔야 다른 사람들도 무너지지 않을 텐데 걱정이에요.”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고 디안이 말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한 주부도 “투병 생활을 한 적이 있어 건강이 좋지 않지만 아이를 안고 다녀왔다. 원통함과 비탄으로 곡소리가 나오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웃고 사랑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희망의 장소였다”고 돌이켰다.

말하자면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씻어낸다. “구조될 줄 알았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희생될 줄 알았다면, 그때 바로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바다에 돌이라도 던지든 뭔가를 했을 거예요. 내가 살인의 동조자라는 생각에 후회가 너무 큽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선임(43) 아이쿱생협 이사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씨는 아이가 캠프를 떠난 시간을 이용해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집에 있을 때도 그는 늘 유민 아빠가 걱정이다.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양가적이다. “제가 유민이 아빠라고 해도 목숨 걸고 싸울 거예요. 하지만 그러다 저분이 쓰러지시면 안 되잖아요.” 유민 아빠가 없다면 이 ‘치유’와 ‘씻김’의 공동체도 흔들릴 것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니 멀리 보고 길게 가야 합니다. 저도 참새 방앗간처럼 시간 날 때마다 나오려고요.”

단식·특강·발언대·독서, 무엇이든 함께

농성장에서는 무얼 하든 자유다. 동조단식은 자율에 맡긴다. 대부분이 하루 이상의 동조단식을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8월12~14일 일 사흘간 하루에 500여 명씩 총 1500여 명이 국민농성에 참여했다. 종교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유가족을 포함하지 않은 수다. “단식농성을 따로 접수하지 않고 머물다 간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대책회의는 설명했다. ‘한 뼘 그림책, 세월호 이야기 어린이들이 그리고 쓴 노란엽서’를 시민들에게 배포해온 김하늘(49) 작가는 “요즘 언론에 (세월호 관련) 부정적이고 나쁜 보도만 나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이 더 간절해진 것도 같다”고 전했다.

밤샐 채비를 하고 농성장을 찾은 이들은 책을 읽거나, 노란 리본을 만들고, 삼삼오오 대화를 나눈다. 하루 한두 차례씩 농성 천막 한쪽을 지키고 있는 ‘전국교수행동’ 소속 대학교수들의 특강도 이어진다. 10대들도 광화문광장에서는 각자 몫의 발언권을 가진다. 8월12일 저녁엔 페이스북·카카토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고교생들이 ‘고등학생도 알 건 안다’는 제하의 집회를 열고 세월호에 대한 고민들을 털어놨다. 발언에 나선 양지혜 학생은 “우리 사회에서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되고 노동자는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이 된다. 생명보다 이윤이 중요한 사회”라며 “간간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저도 죽어가는 청소년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특별법은 이윤보다 안전이 중요하고 사람이 중요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수들’보다, 휴가를 이용해 혼자 나온 이가 많다. 연대 발언이나 1인시위도 익숙하지 않은 표정들이다. 휴가를 틈타 농성장에 나온 안아무개(50)씨는 “한 번은 나와서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너무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잖아요.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 대해) 저렇게 말해?’ 싶은 사람들이 이번에 보니 다 내 이웃이더라고요.” 혹여 유민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농성장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직장 일로 바쁘니까 못 나오는데 내가 나올 때까지 저분이 기다려줄까 싶었어요.”

청와대로 향하는 세상에서 가장 먼 길

올해 초등교사로 임용된 정보람(27)씨도 일주일 넘게 혼자 농성장에 나오고 있다. 8월12일부터 동조단식도 시작했다. 교사인 그에겐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전남 진도에도, 경기도 안산에도 혼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배 안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인데도 내려간 선생님들이 계시잖아요. 아이들 얼굴을 보니까, 제가 그 입장이었어도 배 밖으로 못 나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어요.” 참사 이후의 단순한 슬픔은 사고를 지켜보며 분노로 전이됐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이 답답했다. “유가족이 벼슬이냐 하는 사람들, 안타까워요.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면 특별법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욕하며 시비를 걸어와요. ‘교황님도 오시는데 국제적 망신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고요.” 정씨가 선글라스를 끼고 1인시위를 하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세월호 가족들에게 모멸의 시간은 끊이지 않는다. 하루도 멀다. 자식의 죽음을 명명백백히 밝히자는 이들에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기소하고 수사하고 심판한다면 문명사회가 아니다”(8월12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라는 말이 돌아온다. “31일을 굶었으면 죽었어야지, 아직까지 살아 있느냐”며 어느 노인은 삿대질을 한다.

말의 매로 시원찮아 거리로 내동댕이치고 걸음을 막는다. 8월13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마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려던 7명의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은 몇 걸음 떼어보지도 못하고 경찰에 가로막혔다. 가로막은 경찰은 구호를 외친 적도 없는 엄마·아빠들의 팔다리를 붙들어 인도로 끌어냈다. 고통의 풍경은 몇 번을 봐도 좀체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온 풍경의 잔상들까지 겹쳐 설움을 끌어올린다.

‘여기서 죽겠다’며 딸 예지의 신분증을 목에 감은 엄마 엄지영씨는 그대로 목이 졸린 채 여경들에게 끌려나왔다. 비 내리는 보도블록 위에 누운 채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의 붉어진 목 위로 예지의 얼굴이 떨어졌다. 아들 성호가 그리워서 성호의 신발과 옷을 껴입고 다니는 아빠 최경덕씨도 그저 도로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다리부터 들린 채 5m 넘는 거리를 밀려나왔다. 성호 아빠가 이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으라는데 가슴이 아파서 못 묻겠습니다. 아이를 묻을 수 있게 제발 도와주십시오.”

두 사람은 모두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이송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예은 아빠 유경근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가족들이 단식 중인 국회에 지지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교포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8살 아들이 청와대 경내를 돌아본 뒤 그랬다더군요. ‘왜 한국은 경찰이 대통령을 지켜? 경찰은 국민을 지키는 사람 아니야?’ 제발 국민을 지키는 경찰이 되길 바랍니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

이날 남은 엄마·아빠들은 밤새 비 내리는 거리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대통령을 기다렸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은 아무 응답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대통령은 공항에 나가 교황 프란치스코를 영접했다. 엄마·아빠들은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는 청와대로 수백 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끝이 보이지 않도록 꾸역꾸역 들어갔다. 왜 그들이 그토록 모멸을 겪어야 하는지 그 자리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꽃다지, <내가 왜>)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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