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와 약사의 기득권 다툼에 갈 길 잃은 한약학과 학생들의 최후투쟁
그들은 마침내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의대생들이나 약대생, 한의대생들은 그간 더러 수업거부나 시험거부를 했고, 심하면 집단적으로 자퇴서까지도 냈다. 물론 그 자퇴서도 언제고 반려될 것을 전제로 한 ‘정치적 안전장치’가 내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근 아예 ‘폐과’를 신청했다. 존재 자체를 없애달라는 건 도무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경희대·원광대·우석대 등 전국 3개 대학 한약학과 학생 370여명과 교수들이다.
한·약 분쟁의 타협안으로 탄생
“여학생들이 많이 울었다. 교수님 한분도 눈물을 훔쳤다.” 머리를 빡빡 밀어붙인 박석재(29·원광대 한약학과 3)씨는 얼마 전 폐과신청을 결의하며 치렀던 삭발식장면을 전했다. 삭발식이라면 지난해 의약분업 사태 때도 흔히 봐왔던 터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땐 의사와 약사, 의대생과 약대생들이 ‘맞삭발’을 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힘을 과시하는 출정식이었다. 올해는 한약대생들만이 쓸쓸히 머리를 잘랐다. 그땐 온 국민이 두려움에 떨었지만, 올핸 한약대생들만 자괴감에 떨고 있다.
지난해 의사와 약사, 의대생들과 약대생들이 똑같이 내걸었던 기치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였다. 1993년 약사와 한의사, 약대생과 한의대생들이 맞붙었을 때도 명분은 같았다. 여기에 견줘보면 한약대생들이 내건 깃발은 작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경희대 한약학과 비상대책위원장 이창형(27)씨는 폐과 신청을 결의한 배경을 “더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곧장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말로 폐과를 원하겠는가?” 의약계쪽 사정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약학과’는 귀에도 설다. 한의학과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한약학과는 93년 이른바 한약 지배권을 둘러싼 ‘한·약 분쟁’의 타협안으로, 이듬해 약사법 개정을 통해 규정이 마련됐다. 정부가 약대와 한의대가 함께 있는 대학에 한해 한약학과를 설치하기로 해 96년에 경희대와 원광대에, 98년에 우석대에 각각 만들어졌다. 논리는 단순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처럼 ‘한방진료는 한의사에게 한약은 한약사에게’였다. 처음 한약학과는 ‘물좋은’ 곳으로 인식됐다. 한약사 자격증을 따면 무조건 돈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방의 과학화와 한약유통의 합리화를 통해 국민에게 값싸고 질좋은 한약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한약학과 입학생들에게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한껏 높여줬다. 수능성적 5% 이내의 우수 학생들이 몰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많은 30∼40대 사회인들도 늦깎이 학생이 됐다. 경희대 한약학과 이용승(27)씨도 “한국의 패치 애덤스(진정한 환자의 친구로 불리는 미국의 늦깎이 의사)가 되고 싶어 뒤늦게 다시 대학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은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얘기였다. 처음부터 현실은 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족쇄일 뿐이었다. 약사법에 따른 한약사는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조제하는 자’이다. 그러나 한약재 판매에서 가장 큰 소득을 올리는 한의사들이 자발적으로 한약사들에게 처방을 낼 리는 만무하다. 한방의약분업이 없는 한약사는 독립된 직능으로서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약학과 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한국의 패치 애덤스’는 커녕 당장 생계해결조차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한약사는 굶어죽기 좋은 직업?
현재 한약사가 자격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복지부가 정한 100가지 한약재 안에서 조제해 파는 것이다. 복지부가 정한 용량보다 더하거나 덜어 조제해서도 안 된다. 한·약분쟁 당시 기존에 한약을 다뤄왔던 약사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주기 위해 양성화한 한약조제약사(한약을 취급할 수 있는 약사) 2만7천여명도 전국에서 이와 똑같은 일을 한다. 더욱이 한약과 관련한 정규학력이 없는 한약업사(옛 한약방 운영자)들은 6만여 가지의 한약재를 자유롭게 ‘혼합판매’하고 있다. 말이 좋아 혼합판매이지 조제나 다름없다.
엄영관(45)씨는 젊어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한약에 관심도 있고 한약사가 되면 가족 먹여살리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뒤늦게 다시 한약학과에 들어갔다. 올해 초 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 5월 서울 경동시장 안에 이른바 ‘한약국’이라는 걸 차렸다. 한약국은 시장 깊숙한 곳, 그것도 건물 3층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경동시장 안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건물 3층에 자리잡은 한약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많아야 하루에 한두명이다.
그래서 엄씨의 고객은 친척·친구·이웃 같은 지인이 전부다. 전업주부인 아내도 인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한약국 유지조차 쉽지 않다. “1층에 한약국을 내려 해도 100가지 처방으로는 찾아오는 손님의 증상에 맞는 약을 도저히 조제해줄 수 없다.” 그는 “보건소에선 일반 약국에서 다 파는 한방과립제조차 약사들 눈치를 보느라 아무 근거도 없이 우리에겐 못 팔게 한다”며 “하고 싶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제도의 모순이 개선되지 않아 전문지식으로도 먹고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엄씨처럼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이면 그나마 형편이 낫다. 인맥이 없는 사회 초년생 한약사들은 한약국 개업조차 엄두를 못낸다. 지금까지 배출된 한약사는 모두 172명이지만 한약국을 개업한 한약사는 20명도 안 된다. “가장 압도적인 진출분야는 ‘실업’이고, 그 다음이 속절없는 대학원 입학이다. 제약사도 한약조제약사만 뽑고 대형한방병원조차 한약사를 뽑지 않는다.” 경희대 비대위장 이창형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온 학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무런 대책 없이 학교를 관두고 있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한약사들이 이처럼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것은 제도 도입 당시 “3년 안에 한방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정부의 구상이 여태 실현되지 않은 탓이다. 94년 한·약분쟁 중재에 나선 경실련은 한방의약분업을 전제로 한약사 제도 도입안을 내어 한의사와 약사쪽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보건복지부는 이 합의를 근거로 약사법을 개정해 한약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뒤로 한방의약분업을 위한 어떤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방의약분업안은 물건너갔나
“한방정책관실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복지부 차원에서 결심을 해야 한다.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엄청난 연구·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한방건강보험을 대폭 확대해 분업을 위한 정지작업을 해야 하는데 보험재정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한방정책관실 관계자는 “경실련 중재안에 한방의약분업안이 들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시 양방의약분업 도입도 벅찬 상황에서 한방의약분업안을 수용할 형편이 아니었다”며 “복지부가 명시적으로 한방의약분업을 못박은 적은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복지부가 한약사 문제해결 의지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한약사는 한의사와 약사 분쟁에서 탄생한 것인데, 내가 보기엔 잘못 탄생한 거다.” 김원길 장관은 지난 9월27일 국정감사에서 한약사 문제에 대한 질의에 “우선 당장 100방으로 묶어놓고 있는 게 걸림돌인데, 이걸 건드리면 심각한 문제가 나기 때문에 안 보고 지나갔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물론 그가 말한 ‘심각한 문제’란 지금의 한약사 제도를 만들어낸 한의사와 약사라는 거대한 기득권집단의 반발과 대립이다.
실제 최근 한약사쪽의 100방 확대 요구에 대해 한의사와 약사쪽은 철저히 상대방을 의식한 직능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약사회쪽은 “한약조제약사의 조제범위도 동시에 확대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의사쪽은 “한약조제약사는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약학과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약사회는 ‘의료일원화를 전제로 한 약학과로의 통합’을 요구하며 한방의약분업에 대비한 한약분야 흡수를 노리는 데 반해, 한의사쪽은 ‘한방의약분업 불가’를 내세우면서도 ‘한약학과 존속’을 요구하며 한약학과를 방패막이로 삼으려 하고 있다.
“나는 약대 출신이다. 그러나 한약학은 발전가능이 매우 큰 정체성이 뚜렷한 학문 분야다. 한의사 출신 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경희대 한약학과장 홍선표 교수는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한방과 양방을 과학적으로 결합해 엄청난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우리는 기득권 싸움에 얽매어 한방과학화를 스스로 거스르고 있다”며 “거대 이익집단들은 물론 복지부조차도 한약학에 대한 육성 의지보다는 학문의 정체성을 해치는 쪽으로 나아가며 옥동자를 사생아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 한의사와 약사들의 밥그릇 다툼속에 졸속으로 탄생한 한약학과. 최근 한약대생들은 폐과를 신청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의사와 약사, 의대생들과 약대생들이 똑같이 내걸었던 기치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였다. 1993년 약사와 한의사, 약대생과 한의대생들이 맞붙었을 때도 명분은 같았다. 여기에 견줘보면 한약대생들이 내건 깃발은 작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경희대 한약학과 비상대책위원장 이창형(27)씨는 폐과 신청을 결의한 배경을 “더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곧장 이렇게 되물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말로 폐과를 원하겠는가?” 의약계쪽 사정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면 ‘한약학과’는 귀에도 설다. 한의학과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한약학과는 93년 이른바 한약 지배권을 둘러싼 ‘한·약 분쟁’의 타협안으로, 이듬해 약사법 개정을 통해 규정이 마련됐다. 정부가 약대와 한의대가 함께 있는 대학에 한해 한약학과를 설치하기로 해 96년에 경희대와 원광대에, 98년에 우석대에 각각 만들어졌다. 논리는 단순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처럼 ‘한방진료는 한의사에게 한약은 한약사에게’였다. 처음 한약학과는 ‘물좋은’ 곳으로 인식됐다. 한약사 자격증을 따면 무조건 돈이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방의 과학화와 한약유통의 합리화를 통해 국민에게 값싸고 질좋은 한약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한약학과 입학생들에게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한껏 높여줬다. 수능성적 5% 이내의 우수 학생들이 몰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많은 30∼40대 사회인들도 늦깎이 학생이 됐다. 경희대 한약학과 이용승(27)씨도 “한국의 패치 애덤스(진정한 환자의 친구로 불리는 미국의 늦깎이 의사)가 되고 싶어 뒤늦게 다시 대학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은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얘기였다. 처음부터 현실은 이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족쇄일 뿐이었다. 약사법에 따른 한약사는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조제하는 자’이다. 그러나 한약재 판매에서 가장 큰 소득을 올리는 한의사들이 자발적으로 한약사들에게 처방을 낼 리는 만무하다. 한방의약분업이 없는 한약사는 독립된 직능으로서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약학과 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한국의 패치 애덤스’는 커녕 당장 생계해결조차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한약사는 굶어죽기 좋은 직업?

사진/ 한국의 패치 애덤스를 꿈꿨건만. 한약학과 졸업생들은 당장 생계해결조차 이려운 처지이다.

사진/ 뒤늦게 한약학을 전공한 뒤 경동시장에 한약국을 차린 엄영관씨. 한약재를 100가지 이상은 조제할 수 없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