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비워달라' 한마디에 권리금 물거품… 구제법안 국회 심의 미룬채 1년여 방치
“요런 일만 없으면 그저 밥은 먹고살 텐데. 요런 일만….” 한숨을 푹푹 내쉬는 신강휴(49)씨의 이마에는 밭고랑 같은 깊은 주름이 팼다. 여기를 떠나면 도대체 어디 가서 뭘하고 살 것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군에 가 있는 큰아들, 대학생인 작은아들, 이제 고작 유치원생인 딸 뒷바라지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건물 주인도 참 무심하다. 준재벌로 불릴 정도로 돈도 꽤 많다던데. 그렇게 많은 돈 어디다 쓰려고 하는 건지. 그렇다고 무슨 ‘동정’이나 ‘은혜’를 바라는 건 아니다. 정당한 ‘내몫’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건물 주인은 요지부동이다. 법도 그를 보호해줄 수 없다. 보호망이 돼줄 법이 만들어진다더니 1년이 다 지나도록 꿩궈먹은 소식이다. 너무 억울해 한때는 분신을 해버릴까 하는 끔찍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앞뒤로 무려 20일 동안 가게 앞에서 단식농성도 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20일 동간 단식농성을 벌였건만
신씨가 이곳 군자동(서울 광진구)에 제과점(호주베이커리)을 차린 건 1989년. 3층짜리 건물의 1층 왼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25평짜리(공유면적 포함) 가게였다. 당시 시세가 보증금 2400만원에 월세 48만원이었다. 여기에 권리금이 6800만원에 이르렀다. 당장 9천만원을 웃도는 목돈을 들여야 했다. 그로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첨에는 별로 할 생각이 없었어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벌어놓은 돈도 별로 없고….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자꾸 권하고 또 그때까지 하던 일(봉제공장 노동자)도 점점 내리막길이고 해서 다른 일을 찾아야할 처지였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가게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모자라는 돈 4천만원은 사채(私債)로 메웠다. 당시 관례대로 2부이자(연 24%). 그로선 작지 않은 짐이었지만 벌어서 갚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술자 1명을 두고 아내와 함께 시작한 제과점은 다행히 그럭저럭 장사가 돼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큰돈은 모이지 않았다. “사채이자 갚아야죠, 또 해마다 월세를 10∼20%씩 올려줘야 했거든요. 처음에 48만원하던 월세가 지금은 210만원입니다. 이런 가게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데, 마땅히 갈 곳 없는 저 같은 사람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한 덕분에 겨우 빚 멍에는 벗어났다. 월 24만원씩 곗돈도 붓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된 것이다. 오는 2004년에 조그마한 아파트 한채를 분양받을 수 있겠다는 꿈도 꾸던 터였다. 지금 살고 있는 능동(서울 광진구) 전세방(보증금 3800만원)은 18평에 방이 두개뿐이어서 군에 가 있는 아들이 제대해 나오면 당장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신씨는 늦게나마 시작한 제과점 운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다.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으로 큰아들을 설득, 제과학교에 보내 기술을 배우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물주 요구대로 꼬박꼬박 월세만 올려주면 언제까지든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교 졸업뿐인 그의 학력으로는 무슨 법이니, 제도니 하는 것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단이 벌어진 건 지난해 9월이었다. 건물주로부터 가게를 비워달라는 내용증명 우편물을 받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그해 1월 새로 계약서를 쓰면서 ‘이제 재건축은 포기했으니 장사나 열심히 하라’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에어컨을 바꾸고 바닥타일도 새로 붙이느라 무려 3500만원을 들인 터였다. 이것말고도 신씨가 가게에 들인 돈은 꽤 많다. 지난 93년 4월에는 바깥 천장타일이 떨어지고 출입문과 셔터가 열리지 않아서 7200만원을 들여 대대적인 수리를 한 바도 있다. 소소한 것은 빼고라도 그간 얼추 1억원을 웃도는 거액을 털어넣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씨가 건물주 요구대로 가게를 비워줄 경우 받을 수 있는 것은 보증금 2400만원뿐이다. 가게를 수리하느라고 들인 돈은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다. 권리금도 물론 받을 수 없다. 권리금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서 받는 것인데, 신씨처럼 곧바로 건물주에게 가게를 반환할 경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13년 전 9천만원이 고작 2400만원으로
같은 건물에 세들어 맥주집을 운영하던 자매의 사연은 이런 엉터리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건물주의 요구에 따라 이 자매는 지난 7월 가게를 비웠다. 당시 이 가게는 임대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00만원이었는데 신규 세입자는 3천만원에 200만원을 부담하고 들어왔다. 주변 시세에 비해 턱없이 높은 수준이었음에도 세입자로선 권리금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건물주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했던 것이다. 결국, 5천만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권리금은 이전 세입자인 자매에게 돌아가지 않고 건물주의 손아귀로 흘러간 것이다.
때되면 가게를 수리하고 오랜 세월 장사를 하면서 터전을 닦은 데 대한 권리는 당연히 가게 운영자(임차상인)에게 돌아가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횡포를 부려도 세입자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전국임차상인연합회와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된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가 지난해 10월 입법청원한 ‘상가임대차보호법안’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상가임대차를 둘러싸고 사회적인 파장이 일고 분위기가 뜨거워져 금방이라도 법이 제정될 듯 보였지만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 쌈박질로 날을 지새우는 국회가 법안 심의를 뒷전으로 미뤄놨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국회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건물주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데 따라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국회의원들 자신이 건물주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풀이가 덧붙고 있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일은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의 법안이 나온 뒤 우후죽순으로 여기저기서 비슷한 법안을 들고나와 현재 무려 5개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법사위에 계류중이라는 사실이다. 입법심의는 뒷전인 채 법안만 풍성한 가운데 정작 일은 차일피일 더뎌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영세상인 한숨 강요할 건가
이런 갑갑한 현실에서 신씨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독기어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가게를 비워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다가 소송을 당해 1심 재판에서 진 뒤였다. 단식은 10월15일까지 20일 동안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 와중에 분신을 결심하고 유서를 써내려가다가 막내 인아(4)의 이름 앞에서 눈물이 왈칵 솟아져 단념하고 말았다. 단식농성 뒤 건물주의 태도는 약간 바뀌어 얼마간의(건물주쪽 표현으로는 ‘충분한’) 이사비는 대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지만 신씨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다면 권리금을 인정받아야 다른 데 가서 둥지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싸워나갈 겁니다. (덥수룩해진 턱을 쓰다듬으며) 단식농성하면서 길어진 걸 일부러 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리어카에 구호를 적어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는 1인시위라도 벌일 참입니다. 법이 제정될 때까지….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일이 해결되더라도 이 싸움은 멈추지 않을 작정입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신강휴씨. 그는 13년 동안 가꾼 가게를 아무런 보상도 못받고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했다.(박승화 기자)
신씨가 이곳 군자동(서울 광진구)에 제과점(호주베이커리)을 차린 건 1989년. 3층짜리 건물의 1층 왼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25평짜리(공유면적 포함) 가게였다. 당시 시세가 보증금 2400만원에 월세 48만원이었다. 여기에 권리금이 6800만원에 이르렀다. 당장 9천만원을 웃도는 목돈을 들여야 했다. 그로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첨에는 별로 할 생각이 없었어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벌어놓은 돈도 별로 없고….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자꾸 권하고 또 그때까지 하던 일(봉제공장 노동자)도 점점 내리막길이고 해서 다른 일을 찾아야할 처지였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가게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모자라는 돈 4천만원은 사채(私債)로 메웠다. 당시 관례대로 2부이자(연 24%). 그로선 작지 않은 짐이었지만 벌어서 갚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술자 1명을 두고 아내와 함께 시작한 제과점은 다행히 그럭저럭 장사가 돼 빚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큰돈은 모이지 않았다. “사채이자 갚아야죠, 또 해마다 월세를 10∼20%씩 올려줘야 했거든요. 처음에 48만원하던 월세가 지금은 210만원입니다. 이런 가게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데, 마땅히 갈 곳 없는 저 같은 사람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한 덕분에 겨우 빚 멍에는 벗어났다. 월 24만원씩 곗돈도 붓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된 것이다. 오는 2004년에 조그마한 아파트 한채를 분양받을 수 있겠다는 꿈도 꾸던 터였다. 지금 살고 있는 능동(서울 광진구) 전세방(보증금 3800만원)은 18평에 방이 두개뿐이어서 군에 가 있는 아들이 제대해 나오면 당장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다. 신씨는 늦게나마 시작한 제과점 운영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다.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으로 큰아들을 설득, 제과학교에 보내 기술을 배우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물주 요구대로 꼬박꼬박 월세만 올려주면 언제까지든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교 졸업뿐인 그의 학력으로는 무슨 법이니, 제도니 하는 것을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단이 벌어진 건 지난해 9월이었다. 건물주로부터 가게를 비워달라는 내용증명 우편물을 받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그해 1월 새로 계약서를 쓰면서 ‘이제 재건축은 포기했으니 장사나 열심히 하라’는 말만 철석같이 믿고 에어컨을 바꾸고 바닥타일도 새로 붙이느라 무려 3500만원을 들인 터였다. 이것말고도 신씨가 가게에 들인 돈은 꽤 많다. 지난 93년 4월에는 바깥 천장타일이 떨어지고 출입문과 셔터가 열리지 않아서 7200만원을 들여 대대적인 수리를 한 바도 있다. 소소한 것은 빼고라도 그간 얼추 1억원을 웃도는 거액을 털어넣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씨가 건물주 요구대로 가게를 비워줄 경우 받을 수 있는 것은 보증금 2400만원뿐이다. 가게를 수리하느라고 들인 돈은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다. 권리금도 물론 받을 수 없다. 권리금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서 받는 것인데, 신씨처럼 곧바로 건물주에게 가게를 반환할 경우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13년 전 9천만원이 고작 2400만원으로

사진/ "영세상인을 보호하라!" 신강휴씨는 건물주에게 가게를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 20일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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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임대차문제와 관련, 세입자들의 피해를 미리 막거나 줄이기 위한 방법을 담은 책자가 나왔다. 참여연대와 민주노동당 전국임차상인연합회 등 3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는 최근 ‘상가임대차보호 119’라는 책자를 발간, 임대차 관련 피해예방수칙 및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요령을 제시했다. 40쪽 분량의 이 책자에는 △사례로 알아보는 세입자 피해예방대책 △임대차 갱신 때 꼭 알아야 할 것 △상가건물이 넘어갈 경우 대처요령 △건물주가 소송을 제기했을 경우 대처요령 등이 소개돼 있다. ‘세입자가 알아둬야 할 9가지 핵심 체크 포인트’에선 민법에 나와 있는 임대차 관련 각종 조항을 소개하고 있다. 비매품이며 전국임차상인연합회(02-777-7518)로 연락하면 구할 수 있다. 운동본부는 임대차 분쟁을 겪고 있는 임차상인들을 위해 홈페이지(www.ngopsg.org), 전화, 내방 상담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립 뒤 지금까지 운동본부에 접수된 임대차 피해신고는 무려 1만2천여건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 영세상인이 450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건물주의 횡포로 실제 고통을 겪고 있는 임차상인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