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촛불집회 현장을 누비고 있는 ‘유모차시위대’. 1년여가 지난 뒤 난데없이 날아든 소환장은 이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엄마, 크기를 알 수 없는 용기의 소유자 나는 조사받던 그녀들 옆에 변호인으로 앉아 있었는데, 전혀 주눅들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조사를 받다가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며 수사관의 퇴장을 요구하고 기저귀를 갈고, (고가의 수입 유모차) 스토케를 태우던 ‘된장엄마’인 자기를 거리로 나가게 한 게 누구냐며 당당하게 나오던 그녀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도대체 엄마들이란 크기를 알 수 없는 용기의 소유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엄마들에 대한 혐의사실(경찰의 통제로 이미 폐쇄된 도로 및 갓길로 행진한 것)이 일부 인정된다 해도 기소유예 정도로 간단히 마무리할 수도 있었으련만 검찰은 벌금형의 약식기소를 했고, 엄마들은 정식재판 청구로 이에 맞섰다. 엄마들에 대한 재판 중 일부는 관련법의 위헌성 문제 때문에 수년간 재판이 중지된 상태로, 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엄마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2014년 4월30일. 한 엄마의 제안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강남역에 모여 첫 침묵시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유모차부대, ‘앵그리맘’이라 불리는 엄마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소망은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살고 싶다, 아이를 위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이들의 소망은 2008년의 그녀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녀들을 거리에 세운 감정은 세월호 엄마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선 동일시의 감정이다. 그런데 자유청년연합, 미디어워치 등 애국 보수를 표방하는 일부 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학대하고, 인권유린을 일삼는 유모차부대의 아동학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유모차부대 엄마들을 아동학대죄로 고발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의 이러한 발언은 2008년 유모차부대 엄마들에 대해 ‘공산분자의 발상이다’ ‘가짜 엄마다’라는 등의 비난을 하던 보수 논객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이런 동일한 상황이 기시감이 아니라 정녕 사실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는 나라를 꿈꾸는 것 아닌가. 엄마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에 대한 보수(모든 보수가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의 상상력은 ‘아동학대’로밖에 연결되지 않는 것인가. 엄마들을 고발할 것이 아니라, 왜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집요하게 파헤쳐 발본색원하고, 깊이 새겨진 상흔이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위로하는 것이 진보든 보수든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외치며 거리에 선 엄마들에게 아동학대라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세월호의 엄마·아빠들은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한다. 큰 소리로 세상을 저주하고 욕을 하며 슬픔을 풀어내야 하는데, 조금만 크게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진짜 유가족이 아니라는 둥, 불순세력이 끼어 있다는 둥 막말을 하니 어디서 슬픔을, 그 큰 한을 풀 수 있겠는가. 2008년처럼 끝나지 않기를 2014년 유모차부대의 엄마가, 세월호의 참사가 2008년과 같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2008년과 2014년의 상황이 자꾸만 동일하게 맞춰져가는 것은 그저 나의 기시감에 불과하기를 소망한다. 세월호 참사는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될 것이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연루된 모든 자들은 엄히 처벌되고, 사고의 원인과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적·물적 제도 개혁이 시행될 것이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된다. 세월호의 생존자와 피해 가족들은 국가와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서서히 상처를 회복해간다.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엄마들은 이제 안심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아이들은 안전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어른이 된다. 이것이 나의, 우리 모두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다.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