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버림받고 차도에서 무시당하면서도 그들이 자전거를 포기 못하는 이유
서울 잠원동에서 종로5가까지, 도로가 꽉 막힌 출근길. 자동차보다 버스를 타는 편이 빠르다. 버스보다 빠른 교통수단은? 뜻밖에 ‘자전거’다. 지속가능한개발네트워크 한국본부 김기태(39) 실장은 일주일에 서너번씩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벌써 5년째다.
지난 10월11일 아침 8시30분. 노란 점퍼에 보라색 헬멧을 쓴 김 실장이 자전거를 끌고 잠원동 아파트를 나선다. 취재팀이 자동차를 타고 따라 나선다. 차들이 길게 늘어선 강남 고속터미널 앞 도로. 보라색 헬멧이 멈춰 선 차 옆을 질주한다. 잠수교로 들어서자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 사이로 멀리 보라색 헬멧이 보인다. 자동차로 부지런히 따라가 보지만, 어느새 보라색 헬멧은 멀리 강 건너로 사라진다.
“위험해도 계속 나서야 한다”
잠수교를 빠져나와 남산2호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김 실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출발 전, 2호터널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터였다. 김 실장은 “기다리다 휴대폰을 걸어 보려던 참이었다”며 웃는다. 이미 5분 전에 그의 자전거는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다시 그의 자전거가 앞장서고 차가 뒤따른다. 2호터널을 조심스레 통과한 자전거는 신라호텔 앞에 이르자 속도를 높인다. 동국대 앞 사거리에서 차가 정체해 있는 사이, 또다시 보라색 헬멧이 멀어진다. 오전 9시15분, 종로5가 기독교 연합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어느새 자전거 탈 때 입은 점퍼와 헬멧, 바지를 벗은 채였다. 잠원동에서 종로5가까지 자전거로 걸린 시간은 30여분. 차를 기다린 5분을 빼지 않은 시간이다. 자동차로 오는 것보다 10분 이상 빨랐다. 김 실장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용도 시간도 적게 드니 당연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서울 등 길이 막히는 대도시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자전거 출근이 자가용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에도 좋고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장점도 빼 놓을 수 없다. 두발의 힘으로 페달을 돌려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 동력기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는 ‘자전거족’들은 김 실장을 따르는 거리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됐다. 김 실장이 ‘녹색교통’ 수단인 자전거에 관심을 기울인 지는 10년이 넘었다. 자전거를 즐겨 타기는 했지만 감히 거리에 나설 엄두는 내지 못했다. 몇해 전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던 어느날, 엉겁결에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 틈에 끼어 거리로 나서게 됐다. 처음엔 겁이 났지만 몇번 어울려 타다 보니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졌다. 김 실장은 “자전거 도로가 없다고 탓하고 매연을 두려워 하다 보면 결코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며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생각에 김 실장은 99년 자전거 동호회 ‘발바리’를 조직했다. ‘발바리’는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들’의 줄인 말이다. 이들은 “자전거면 충분하다”라고 적힌 구호를 앞세우고, 매달 셋쨋주 토요일 광화문 네거리를 떼로 누비고 다닌다. 열악한 자전거 교통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김 실장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실천’을 강조하는 반면, 김용호(36)씨는 ‘안전’을 중요시한다. 97년부터 서울 길동에서 삼성동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온 김씨는 “충분히 연습을 하고 안전장비를 꼭 착용하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전거 도로가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무작정 거리로 나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이다. 위험에도 김씨가 자전거 출퇴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출근길의 상쾌함 때문이다. 출근길에 한강변을 지나는 김씨는 “일어나기 싫을 때도 상쾌한 강 바람을 맞을 생각을 하면 눈이 떠진다”고 말한다. 자전거를 비웃는 도로교통법
상쾌한 출근길에 흠뻑 빠져 자전거 출퇴근을 고집하지만, 위험 요소는 도로 곳곳에 널려 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위협과 무시를 빼놓을 수 없다. 수원에 사는 김광원(28)씨는 지난 8월 황당한 사고를 당했다. 화성의 직장에서 수원의 집으로 자전거로 퇴근하고 있는데 봉고차 운전자가 느닷없이 욕을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따라가 “위험하게 타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며 따졌다. 운전자는 “앞차를 추월하려는데 방해가 된다”고 오히려 화를 냈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일부러 봉고차 앞을 천천히 달렸다. 경적을 울리며 20m 정도를 따라오던 봉고차는 김씨의 자전거 뒷바퀴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자전거 뒷바퀴가 차 범퍼에 올라가 넘어지지는 않았다. 망가진 뒷바퀴를 보상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김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김씨는 “차를 타도 사고 위협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라며 “안전장비를 갖추고 방어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자전거 운전자들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를 타고 인도로 달리는 것은 불법이다. 자전거가 자동차 등과 함께 ‘차마’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탓이다. 그렇다고 외국처럼 차도의 한 차선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할당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도로교통법 14조에 따라 차도 통행의 우선권은 자동차에 주어져 있다. 자동차가 추월할 경우 자전거는 비켜줘야 한다. 제대로 된 자전거 도로가 없는 현실도 위험을 가중시킨다. 현재 대부분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붙어 나 있다. 하지만 인도 옆으로 난 자전거 도로는 불법주차 차량과 상점의 간판에 점거당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보행자들과 충돌 위험도 뒤따른다. 그래서 네덜란드 등 자전거 교통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차도의 한 차선을 자전거 도로로 내주고 있다.
차도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다 보니, 자전거로 교차로에서 좌회전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자전거는 차도 맨 우측 차선으로 달리게 돼 있다. 좌회전을 할 때는 신호 안에 돌기 위해 우측 차선을 벗어나 안쪽 차선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통법규도 자동차 운전자도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자전거 운전자들은 “초보 시절 차들 사이에 끼어 좌회전을 하다가 식은 땀을 흘린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서기는 더욱 어렵다. ‘발바리’ 회원 강은주(25)씨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면서도 “밤늦게 출퇴근하기 일쑤인데 그때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자살행위 같다”며 아쉬워한다. 법의 무시와 자동차의 횡포 속에 한해 600여명이 자전거를 타다가 죽거나 다친다.
녹색교통만이 교통난 해소한다
열악한 자전거 교통 현실 개선을 요구하며 에너지시민연대 최승국 사무총장은 지난 5월29일부터 7월13일까지 자전거 출퇴근 1인 시위를 벌였다. 최 사무총장은 “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교통난 해소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녹색교통 수단인 자전거와 보행을 최대한 보호해야 오히려 교통난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2.4%. 일본의 25%, 독일의 26%, 네덜란드의 43%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네덜란드 등 서구 각국은 녹색교통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해 교통난을 해소해왔다. 최 사무총장은 “1인당 자동차 보유 숫자를 따지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1인당 자전거 보유대수가 높고 자전거 교통 분담률이 높을수록 교통선진국”이라고 분석한다.
녹색교통이 활성화될수록 교통흐름이 좋아질 것이란 분석은 정부자료를 통해서도 검증된다.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2001 자전거 이용활성화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 분담률이 10% 높아지면 자동차 주행속도가 현재 20km에서 30km로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연간 1조8900억원의 에너지 절감효과도 예상된다. 현재 서울 대기오염의 83%를 차지하는 매연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자전거가 생태친화적일 뿐 아니라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란 얘기다.
물론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전거로 모든 이동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차도에서 무시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자전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지난 6월6일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83.7%의 시민들이 이용여건이 개선된다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겠다고 대답했다. 동력기에 제 몸을 의탁하지 않고 두발의 힘으로 달리고 싶은 욕망은 우리 안에 있는 ‘본능’인 탓일 게다.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잠수교를 빠져나와 남산2호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김 실장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출발 전, 2호터널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터였다. 김 실장은 “기다리다 휴대폰을 걸어 보려던 참이었다”며 웃는다. 이미 5분 전에 그의 자전거는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다시 그의 자전거가 앞장서고 차가 뒤따른다. 2호터널을 조심스레 통과한 자전거는 신라호텔 앞에 이르자 속도를 높인다. 동국대 앞 사거리에서 차가 정체해 있는 사이, 또다시 보라색 헬멧이 멀어진다. 오전 9시15분, 종로5가 기독교 연합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어느새 자전거 탈 때 입은 점퍼와 헬멧, 바지를 벗은 채였다. 잠원동에서 종로5가까지 자전거로 걸린 시간은 30여분. 차를 기다린 5분을 빼지 않은 시간이다. 자동차로 오는 것보다 10분 이상 빨랐다. 김 실장은 “사람들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용도 시간도 적게 드니 당연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서울 등 길이 막히는 대도시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자전거 출근이 자가용은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에도 좋고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장점도 빼 놓을 수 없다. 두발의 힘으로 페달을 돌려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 동력기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는 ‘자전거족’들은 김 실장을 따르는 거리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됐다. 김 실장이 ‘녹색교통’ 수단인 자전거에 관심을 기울인 지는 10년이 넘었다. 자전거를 즐겨 타기는 했지만 감히 거리에 나설 엄두는 내지 못했다. 몇해 전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던 어느날, 엉겁결에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 틈에 끼어 거리로 나서게 됐다. 처음엔 겁이 났지만 몇번 어울려 타다 보니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졌다. 김 실장은 “자전거 도로가 없다고 탓하고 매연을 두려워 하다 보면 결코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며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생각에 김 실장은 99년 자전거 동호회 ‘발바리’를 조직했다. ‘발바리’는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들’의 줄인 말이다. 이들은 “자전거면 충분하다”라고 적힌 구호를 앞세우고, 매달 셋쨋주 토요일 광화문 네거리를 떼로 누비고 다닌다. 열악한 자전거 교통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김 실장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실천’을 강조하는 반면, 김용호(36)씨는 ‘안전’을 중요시한다. 97년부터 서울 길동에서 삼성동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온 김씨는 “충분히 연습을 하고 안전장비를 꼭 착용하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전거 도로가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무작정 거리로 나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이다. 위험에도 김씨가 자전거 출퇴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출근길의 상쾌함 때문이다. 출근길에 한강변을 지나는 김씨는 “일어나기 싫을 때도 상쾌한 강 바람을 맞을 생각을 하면 눈이 떠진다”고 말한다. 자전거를 비웃는 도로교통법

사진/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는 김기태씨. 자전거 교통의 지분 확보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가는 '실천'을 강조한다.

사진/ 자전거 출퇴근 1인 시위를 벌인 최승국씨. 녹색교통의 활성화가 교통난 해소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