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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타하리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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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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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는 이중간첩이 아니라 전쟁에 이용당한 희생양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 이중간첩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여간첩 마타 하리(본명 마가레타 게르트루다 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총살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마타하리의 고향인 네덜란드 레바르덴시와 마타하리재단은 최근 “마타하리한테 이중간첩 혐의를 적용해 처형한 것은 불확실한 증거에 의한 잘못된 것”이라며 프랑스 법무부에 재판을 다시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시와 재단쪽은 마타하리의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 10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 독일 정보기관 문서를 분석한 레지스탕스 전 요원 레옹 시르만이 모은 증거 자료들을 토대로 “독일은 1차대전 당시 마타하리의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일부러 그를 프랑스에 넘겼으며, 프랑스도 반독일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 처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1999년 영국 정보기관 ‘MI5’도 비밀문서를 해제하면서 “마타하리가 독일에 군사정보를 제공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으며, 순전히 정황증거만으로 그를 처형했다”고 밝혔다. 1876년 네덜란드의 부유한 상인 집에서 태어난 마타하리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19살에 네덜란드 장교와 결혼했지만 7년 만에 이혼한 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게 된다. 파리에서 그는 자신의 미모와 육체를 한껏 과시하며 관능적인 반나체 무희로 사교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다가 1914년 1차대전이 터진 뒤 독일 정보기관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그러나 곧 프랑스 정보기관에 정체가 드러나면서 두 나라 사이에서 이중간첩으로 활동했지만, 프랑스는 1917년 “독일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겼다”는 이유로 파리 근교 뱅센에서 당시 41살이던 마타하리를 공개 처형했다.

말레이시아어로 ‘아침의 눈’이라는 뜻의 마타하리는 20여명의 독일군 장교와 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이름은 성·음모·배신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마타하리에 대한 재판이 다시 시작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프랑스법상 당사자나 가족에 한해 재심을 요청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마타하리의 가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록 기자 / 한겨레 국제부 myzod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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