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지식인이 지식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자기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권력을 행사하는 언론기관에 깊숙이 편승해 자기존재를 과시하려는 지식인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일은 피하려 한다. 그럴 경우 사태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공정한 입장에서’ 논한다는 수법을 동원할 수 있다. 국가나 민족, 국민, 사회정의,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큰 틀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은 얼버무리기 십상이다. 지식인은 물론 인간은 무엇보다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 이 관계성의 다수는 실제로는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라도 우연에 의한 운명적 존재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그래도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은 일개 역사적 존재로서 강제로 하나의 관계성 속에 내던져지게 된다. 부모나 가계, 그리고 언어나 학교교육 등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며, 거기에서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관계성도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강제된다. 즉 인간은 어른이 돼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갈 수 있게 됐을 때는 이미 인격의 대부분이 완성되고 사회적 위치 또한 대체로 확정된 뒤다. 재벌의 자제가 재벌을 옹호하는 언동을 일삼거나 고급관리의 자제가 체제지향적으로 되기 쉬운 것은 역시 그 생육과정에 상당한 요인이 있다. 다만 인간이란 재미있는 존재여서 자신이 자란 환경에 반발해서 재벌 출신자가 오히려 재벌의 악폐를 고치고 고급관리의 자제가 진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깥을 향해 발언하는 지식인은 특히 자기 출신이나 사회적 위치에 대해 항상 자각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많든 적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지식인도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되려 한들 그 지적 활동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지식인은 어떻게 하면 ‘객관성’ 또는 ‘공정성’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지식인의 자각이 필요한 이유 자신을 둘러싼 관계성을 규명하려면 지식인에겐 무엇보다도 역사적·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기 위치를 자각하기 위한 내면적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 일정한 기득권을 지닌 대학교수나 언론인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신에 대한 성찰이 강력히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득권층 지식인은 종종 자신의 역사적·사회적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를 보는 눈이 보수적으로 되고 때로는 더욱 기득권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여주기 십상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어질 것 같은데, 다만 주관적으로는 중심·강자·다수파가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주변·약자·소수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상의 인물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지식인은 주변·약자·소수파 입장에 섰을 때 비로소 사회 전체를 주시하고 변혁을 위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인을 타자와 교류하고 사회 전체의 변혁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인생 그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윤건차/ 일본 가나카와대학 교수(사상사·서울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