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공짜로 받거나 극빈자 돕거나

381
등록 : 2001-10-2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사진/ (박승화 기자)

유명화가들이 전시회를 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유양옥(57)씨의 전시회는 언론을 많이 탔다. 유씨 전시회 기사를 다루지 않은 신문이 없을 정도다. 미술을 전혀 전공하지 않고(사학과 졸업) 인사동에서 미술책방, 화랑, 필방을 하던 인물이 화가로 변신한 파격도 이야깃거리였지만, 유씨의 그림이 신문에 소개할 만큼 훌륭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씨의 전시회(10월31일까지 서울 관훈동 학고재, 02-739-4937∼8)에는 신문기사에 나오지 않은 또다른 중요하고 솔깃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유씨가 전시장 한구석에 그림판을 차려놓고 구경온 손님 누구에게나 무료로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 도록 맨 앞장에 그림없이 ‘유양옥 그림판’이라고만 써 있는데, 그 겉장에다 그림을 그려준다. 전시회장 입구에 써붙인 ‘즐거운 그림 두레’라는 글은 바로 이런 뜻이다.

“도록이 나오고 보니 겉장이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또 그림을 직접 그려드리면 도록을 잘 버리지 않고 간직하실 것 같아서요. 이렇게 변변찮은 그림이라도 인사동 왔다갔다하는 보통 시민들께는 작은 즐거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평소에도 부채 그림을 그려서 주변에 그냥 드리는 게 습관이 돼서 괜찮습니다.”

대수롭잖다며 유씨는 씩 웃어넘기지만, 사실 옆에서 조금만 지켜보면 이게 얼마나 힘든 노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크기는 작아도 하루 수십장씩 그리는 것이 보통일은 아닌 탓이다. 그래서 그림 주문이 몰릴 때면,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으니까 기다려주는 게 이익(?)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유씨는 다시 힘차게 붓을 놀리며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힘이 넘치면서도 질박한 유씨의 화풍은 작은 도록 위에서도 그대로다. 유씨는 전시회가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한겨레21>에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유씨는 도록 겉장에 그리는 무료 그림말고 부채 그림도 함께 그린다. 그런데 이 부채 그림은 무료가 아니라 돈 받는 그림이다. 부채 그림 판 돈은 모두 극빈자 무료 진료시설인 요셉의원에 전달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