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군인들로부터 카렌반군(KNU)과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상황은 엄혹했다. 2009년 10월 KNU 초소에서 반군 병사들이 출입국 업무를 보고 있다.이유경
남편은 카친족이고, 아내는 카렌족이다.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카렌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남편은 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일했는데, 체류 기간이 지나서 강제출국을 당했다. 남편은 학창 시절에 사귀던 아내를 찾아가서 결혼하고, 아내의 고향에서 함께 장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부가 카렌반군(KNU·카렌민족연합)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버마 정부군이 마을에 들어온 KNU 정보국 소속 3명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 부부의 가게에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KNU는 1947년에 결성된 카렌 민족의 최대 조직으로, 카렌 민족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1949년부터 버마 중앙정부와 내전을 하고 있다. KNU는 자치를 주장하면서 그 산하에 외무부·교육부 등을 두고 별도의 군사조직까지 갖추었다. 언론에 의하면 2012년 1월 KNU와 정부가 평화협상을 체결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도 버마 법원은 KNU의 고위급 지도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아직도 많은 양심수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를 위해 선택한 한국행 내전을 옆에서 지켜본 이 부부는 버마 군인들로부터 KNU와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아내의 경우 작은오빠가 KNU 산하의 군에 입대했는데, 이로 인해 아버지와 큰오빠가 수시로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 공포를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들처럼 더 깊숙한 정글로 도망가거나, 강 하나를 건너 타이로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곳보다 나을 거라 생각하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남편은 이전에 강제출국을 당한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았으나,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아내를 위해 한국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이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난민 신청을 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남편은 굳이 강제출국 당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출입국관리소도 그것에 대해 특별히 묻지 않았다. 법무부는 처음에 이들의 신청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난민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출입국관리소가 남편이 과거에 강제출국 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난민 인정을 취소한 것이다. 법무부는 “난민의 인정을 하게 된 중요한 요소가 거짓된 서류 제출 및 진술, 사실의 은폐 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난민 인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남편이 부득이하게 가명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KNU와의 연루 혐의로 군인들에게 체포될 경우 생명이나 신체가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난민 인정 요건 가운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공포가 있었는지에 따라 난민 여부를 판단해야지, ‘가명’ 사용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1심 법원도 이러한 관점에서, 난민 인정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항소심 법원은 강제퇴거 사실을 감춘 것은 출입국관리 사무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중대한 위법이므로 난민 인정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생명 위협 앞에서 가명 사용했는데 난민제도는 출입국관리 사무의 안정성과 어느 정도 부딪힐 수밖에 없다.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해 도망을 나오는 과정에서 부득이 가명을 사용하거나 위조 여권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난민 요건에 해당한다면 난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난민제도의 취지다. 강제퇴거 사실을 감추었다고 해도 ‘난민’의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난민협약에도, 과거에 강제퇴거를 당한 국가를 난민 신청 국가로 선택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다. 타이에서 만난 카렌 친구는 난민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는데, 그곳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버마의 상황이 나아지면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배운 것을 펼쳐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부와 레인보우에게는 그저 삶이 평온하고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언제쯤 레인보우 가족도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을까.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