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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비효과와 두 번의 실형

전자우편 위조 혐의로 실형 산 뒤 무고죄로 두 번째 실형 받은 의뢰인
20대 후반 회한으로 보낸 그를 누가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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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4 17:0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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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이 2년이 넘는 징역. 그보다 훨씬 더 긴 5년여에 걸친 6번의 형사재판.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한 결과였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한겨레 자료
<나비효과>라는 노래가 있다. ‘내일 일을 지금 알 수 있다면, 후회 없는 내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걸. 널 보낸 그때도 알았었더라면.’ 돌이켜보면 삶은 우연 속 회한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실제 일어나기도 하는데, 변호사는 의뢰인이 겪는 그런 소용돌이를 함께 겪기도 한다. 변호사의 경험은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중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맡을 경우, 특히 형사사건일 때 좋지 않은 재판 결과가 나오면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변호사의 직업병이리라. 두 차례. 합이 2년이 넘는 징역. 그보다 훨씬 더 긴 5년여에 걸친 6번의 형사재판. 그것이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돼 한 사람에게 닥친 일이라면. 그 일은 그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긴급체포라니

심각하고 불안한 얼굴로 젊은 남자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직접 초안을 잡은 항소이유서를 내밀었다. 그는 1년이 넘는 실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돼 만기를 채우고 출소한 뒤, 새로운 재판에서 다시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였다. 단 한 번의 전과도 없던 그가 유일한 전과를 실형으로 살고, 또다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다행히 1심 법원은 항소심 재판을 하는 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임하라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그는 두툼한 소송 기록을 보여주면서 억울하다고 했다.

사건 기록을 보니, 그가 두 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의 내용은 이런 일로 두 번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다. 그가 여행업체의 이벤트에 당첨돼 상품으로 200만~300만원 상당의 여행상품권을 받았는데, 그가 응모한 여행기가 문제였다. 한 회원이 게시판에 그의 여행기가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있는 글을 베낀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 뒤 게시판에는 그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나중에는 그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그의 실명을 유출한 것인데, 그는 게시판 관리자를 의심했다. 그는 관리자에게 게시판의 악성 글들을 지워달라 항의하고, 자신의 실명이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유출됐는지를 따졌다. 그런데 관리자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게시판 관리자는 ‘그가 잘못을 시인했으며, 그의 상품을 박탈하고, 저작권 침해로 고발할 것’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화가 난 그는 관리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모두 천수백 쪽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읽다보니, 그가 고소한 사건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던 반면 어느 순간 그의 처지가 180도 바뀌어 있었다.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던 그를 검사가 긴급체포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그를 체포한 이유는 그가 고소하면서 증거로 낸, 게시판 관리자가 보냈다는 전자우편이 조작돼서 사문서 위조와 행사라는 것이었다. 그는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면서 여러 개의 전자우편을 냈는데, 그중 관리자가 자신에게 전자우편으로 사과를 했었다고 한 전자우편이 있었다. 그런데 게시판 관리자는 그 전자우편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검사는 그가 출석하기 전에 포털 사이트에 그가 관리자에게서 받았다는 게시판 관리자의 전자우편이 그의 우편함에 있는지를 조회했는데, 포털 사이트로부터 그런 전자우편이 없다는 회신을 받아놓고 있었다.

대개 체포된 뒤로는 사건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고,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검사는 게시판 관리자에 대한 명예훼손 주장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관리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반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기소가 되었다. 사실 그 전자우편은 명예훼손 여부와 큰 관계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자우편의 진위가 사활이 걸린 쟁점이 된 것이다.

그는 명예훼손 피해자이기도 한데

여기서부터일까? 그의 삶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증거는 조작할 수 있고, 그의 우편함에 그 전자우편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게시판 관리자가 알기 때문에 해킹당할까봐 그 전자우편을 캡처해놓고, 자신의 다른 전자우편 계정으로 전송하고, 그 우편함에서는 지웠다고 했지만, 법원은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의 말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보통 피고인이 결백을 주장하는 경우 극렬하게 다투게 되는데, 법원은 그런 그를 개전의 정이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만기 출소 뒤 그는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했다. 게시판 관리자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고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검사는 그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사문서 위조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였고, 이전 재판 결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는 무고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항소심을 수임하고, 디지털포렌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전자우편의 헤더와 그 포털 사이트의 전자우편 헤더들을 분석했지만, 직접 증거를 찾아서 제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일반인이 그런 조작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그 전자우편의 증거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을 할 수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게시판 관리자에게 재판부에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 제출을 부탁해봤지만 거절당했다.

직접 증거가 없는 진실게임의 양상 속에서, 나도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100%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억울했기 때문에 무모한 두 번째 고소를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그에게 개전의 정이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 결과를 받고,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는 다른 사람의 글로 상품을 탄 잘못은 있지만 분명 명예훼손과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자이기도 한데, 그 피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반면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 유출과는 상관도 없던 전자우편 하나로 그는 검찰과 5년간 백척간두의 법정싸움을 하며 20대 후반을 보내야 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설사 그가 거짓말을 했더라도(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는 억울하지 않을까? 그가 치른 시련과 대가는 응당한 것일까? 일방적으로 자기만 당한다는 생각은 어떤 일에 외곬으로 매달리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검찰이나 법원의 입장에서 누가 이 사건을 기억할까?

검찰이 잘 조율해 균형 있게 처리했다면

일벌백계를 옹호하지 않는다면 그 재판이 오심이 아니더라도 이벤트 공모를 둘러싼 사건에서 비롯된 그 사건의 처리가 잘됐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결과는 한 사람에게 평생의 불행이 되었다. 처음부터 검찰이 양쪽을 잘 조율하면서 균형 있게 고소사건을 처리했더라면, 그도 다르게 접근했으리라. 나비효과의 가사처럼. 누군가에게 삶은 회한이 가득하게, 이렇게도 흘러가는구나. 그는 오래도록 나를 가슴 아프게 한 의뢰인이었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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