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에서 울진 앞바다까지, 파도·멀미와 싸운 조계완 기자의 오징어잡이배 체험
“오늘 배가 뜰 수 있겠습니까? 해안도로를 타고 오다보니까 파도가 심상찮던데….” “아, 걱정말고 빨리 오십시오. 배 뜹니다.” 휴대폰 저쪽으로부터 대답을 듣자마자 마음속에 뭔가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한편으로 안도감이, 또 한편으로는 오늘 밤에 고생 좀 하게 생겼군, 하는 생각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일찌감치 고속버스를 탈 때부터 오늘 배를 못 타면 낭패라는 생각에 내내 사로잡혀 있던 터였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동해시로 들어오면서 차창 밖에 펼쳐진 사뭇 사나운 파도는 올 것이 왔으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투로 우리를 맞고 있었다. “나는 못 타, 아니 안 타!” 동행한 사진부 강창광 기자가 손사래를 쳤다. 물론 장난삼아 해본 말이었지만, 그 역시 나처럼 높은 파도를 막상 보자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폭풍은 번번이 배를 붙잡고…
오징어잡이배를 타보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 9월. 동해시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오징어잡이배 체험행사’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묵호항으로 가던 우리는 어느새 멀미약을 찾고 있었다.
묵호항에는 우리처럼 오징어잡이배 체험을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동해시청 직원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휴대폰으로 오늘 배가 뜬다고 했던 동해시청 손재광씨가 우리를 보자마자 한마디 보탰다. “기상청의 폭풍주의보 해제 시간이 오락가락했었는데, 결국 오후 2시에 해제된답니다.” 오징어잡이배 체험행사는 10월9일부터 12일까지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폭풍 탓에 배는 번번이 뜨지 못했고,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끝에 마지막날인 이날(12일) 동해로 달려온 것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은 우리를 포함해 10명. 우리는 약국부터 들렀다. 귀밑에 멀미약을 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병에 든 멀미약까지 따로 챙겼다. 약국 주인은 “한번 배멀미를 시작하면 끝까지 기둥만 붙잡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묵호항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오징어잡이에 나설 배들이 출항 신고를 위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탈 배는 원래 10t짜리 소형 어선이었다. 그런데 항구에 배를 댄 선장이 걱정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배에 타는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한번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야. 우리처럼 작은 배일수록 배멀미하기 십상이지. 잘 생각해보라고.” 참가자들의 얼굴에 수심이 번졌다. 게다가 낮게 깔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생각을 고쳐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1t짜리 오징어 채낚기어선 명진호(선장 신정기·45)가 항구에 들어온 건 이때였다. 동해시 직원은 “아무래도 큰 배는 흔들림이 덜할 것”이라며 명진호를 타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나와 강 기자 등 참가자 6명은 예정에 없던 명진호를 무작정 탔고, 4명은 다른 배에 나눠탔다. “내 나이? 8학년1반이야” 퉁퉁퉁퉁…. 명진호가 엔진소리를 내며 뱃머리를 바다쪽으로 돌렸다. 갈매기들이 후두둑 날아올랐다. 갑판에는 노인 둘이 뱃머리에 타고 있었다. 앉아 있어도 몸이 기우뚱거리는 게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흔들렸다. 젊을 때부터 오징어잡이배를 탔다는 이씨(명진호 배꾼들은 김씨, 이씨 하는 식으로 서로를 불렀다)는 “선원이 9명인데 다들 선실에서 자고 있다”며 “지금은 오징어잡이 끝물”이라면서 밭은기침을 해댔다. 뱃전에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갑판 위로 소나기처럼 바닷물이 쏟아져내렸다. “이 정도 파도는 별거 아니야. 바다에는 여름과 겨울이 따로 없어.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하는데….”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탓에 뱃사람이 ‘쉬 늙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62살이었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귀를 의심하자 그가 뱃머리에 앉아 있는 다른 노인을 가리켰다. “내 나이? 8학년1반이야. 아들은 없고 출가한 딸들한테 신세지기도 싫고….” 81살의 송씨였다. 송씨가 꺼질듯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멀리 육지쪽 산에 저녁노을이 걸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실루엣처럼 어두워졌다. 묵호항을 떠난 지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배의 엔진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잡을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선장은 묵호항에서 23마일(약 37km) 정도 떨어진 해상이라고 했다. 선실에서 잠자던 배꾼들이 그제야 모두 갑판으로 나왔다. 배꾼은 중년 남자 두세명이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 환갑을 넘긴 노인들이었다. 거칠고 억센 뱃사람이라는 말은 적어도 명진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정도로 배꾼들은 한없이 작은 노인들이었다. “오징어 잡는 사람들이야 다 막다른 골목이지. 기댈 곳도 없고….” 송씨가 말했다. 배꾼들이 서둘러 물돛을 내리기 시작했다. 조류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낙하산처럼 생긴 물돛을 배 뒤편 바닷속에 내려 배를 정지시키는 작업이다. 이미 바다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엔진이 완전히 꺼지자 순간, 배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배에 매단 120개의 집어등(밤에 오징어를 불러모으는 데 쓰는 전등)이 일제히 켜진 것이다.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은 말 그대로 장관, 그것이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다른 오징어잡이배들도 조업을 막 시작하는 참인지 바다 멀리 군데군데서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집어등 하나는 3000W로 가정용 전구 30여개를 켠 것과 맞먹는다. 모자를 쓴 건 집어등 불빛이 뜨거워 얼굴이 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오징어잡이에 나서기 전에 선장이 도시락을 싸들고 갑판에 앉았다. 저녁식사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동해시청 직원은 배 위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거라고 했는데 선장이 내온 도시락은 하나뿐이었다. “아니, 도시락을 아무도 안 가져왔다는 거야? 할 수 없지, 나눠먹는 수밖에. 오늘 오징어잡이 체험말고 굶는 체험을 하면 되겠네.”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선장이 사람좋은 웃음을 배어물었다. 저녁은 소금기에 전 과일 몇개를 깎아먹는 것으로 때워야 했다. 선장이 됫병짜리 소주와 오징어회를 꺼내와 술추렴을 시작했다. “잡는 대로 다 가져가!”
배멀미 걱정은 이제 끝난 일이라고 지레 안심한 사람은 아직 없었지만 다행히 두어 시간 가까이 별탈은 없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선장은 “흙냄새를 맡으면 배멀미가 감쪽같이 사라지는데…”라고 했다. 귀가 솔깃했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흙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밤 7시를 넘기자 불빛 아래서 오징어잡이가 시작됐다. 배꾼들이 저마다 낚싯줄을 바다에 던졌다. 오징어 채낚기에 쓰이는 낚싯줄에는 1∼2m 간격으로 낚싯바늘 20여개가 매달려 있는데 바늘은 초록, 빨강, 분홍 등 형형색색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이 날개들이 물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면 오징어들이 달려들어 바늘을 물고, 일단 물면 바늘이 우산살처럼 활짝 펼쳐지면서 단박에 오징어를 꿰고 마는 것이었다.
뱃머리쪽에 자리를 잡은 송씨는 ‘날라리’라는, 물레처럼 생긴 기구에 낚싯줄을 감아 돌리는 방법으로 오징어를 잡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징어가 한두 마리씩 낚싯줄에 걸려 올라왔다. 설명은 간단했다. 오징어가 물면 낚싯줄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데 낚싯줄을 채듯이 당겼다 풀어주는 것을 되풀이하다가 느낌이 올 때 끌어올리면 된다는 게 전부였다.
한동안 배꾼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도 낚싯줄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당기고 늦추고 해봐도 낚싯바늘에 오징어가 걸려든 것인지 아닌지 당최 느낌이 오지 않았다. 줄을 끌어당겨보면 마지막 20번째 낚싯바늘까지 힘없이 올라오고 맨 끝에 매달린 낚시추까지 드러나면 맥이 탁 풀렸다. 허망한 짓을 몇번이나 되풀이하고 있자 보다못한 선장이 농을 쳤다. “잡는 대로 다 가져가.” 일산에서 온 최헌중씨가 내 대신 구원투수로 나섰다. 하지만 그가 끌어올리는 낚싯줄도 번번이 허탕만 치고 있었다. 대신 나는 배꾼들이 잡아올린 오징어를 갑판 중간 어창에 넣기 시작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발짝만 움직여도 배의 흔들림 때문에 몸이 기우뚱하면서 털썩 나자빠지기 일쑤였다. 무엇이든 붙들고 있어야 했고 심지어 주저앉아 있을 때조차 배 바닥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오징어잡이 못지않게 배에서 밤을 새우며 ‘견디는’ 자체가 간단치 않은 체험이란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징어잡이는 머리싸움”
오징어잡이는 신통치 못했다. 오징어들이 불빛을 보며 미친 듯이 사방에서 달려들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연신 줄을 당겨보지만 배꾼들의 낚싯줄에도 간혹 한두 마리씩 걸려들 뿐이었다. 집어등을 밝히는 발전기 소리가 적막을 더하고 있었다. “안 잡히는 날이야.” “종쳤다.” 이씨와 송씨가 한마디씩 푸념처럼 내뱉었다. 오징어가 불빛을 보고 자꾸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잡히는 숫자가 느는 게 정상인데 이날 밤은 영 딴판이었다.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 도깨비불처럼 불빛을 내며 조업중인 오징어배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파도에 배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마치 폭죽처럼 불빛들이 물 속에서 솟구쳤다가 사라지곤 했다.
밤 10시쯤 됐을까. 명진호가 집어등을 끄고 엔진소리를 내며 다시 밤바다를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징어들이 모여 있는 다른 곳으로 조업장소를 옮기는 참이었다. “오징어잡이는 모험이야. 머리싸움이지. 오라는 데도 없고. 일단 다른 곳으로 한번 가보는 거지.” 남은 됫병 소주를 꺼내들고 선장이 말했다. 파도가 점점 거칠어지는 게 더 먼바다로 나가는 듯했다. 뒤쪽에 또다른 배 한척이 밤짐승처럼 불을 켠 채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쪽도 조업장소를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오징어를 잡던 배꾼들은 다들 토막잠이라도 자려고 그새 선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뱃머리에서 한 배꾼이 앉은 채로 까무룩 졸고 있었다. “졸면 선장이 잠을 깨우러 다니는데 바다에 떨어질까봐 아예 내 발을 끈으로 묶기도 한다”던 송씨였다.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규칙적인 엔진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옆에 놓인 송씨의 ‘날라리’가 혼자서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배는 다시 멈췄고 다시 낚싯줄을 던지기 시작했다. 배꾼들은 저 혼자 깊어가는 바다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멀거니 바다를 보며 입에 담배를 문 채 낚싯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새벽 1시를 넘기면서 여기저기서 잡혀 올라오는 오징어들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어장을 제대로 찾은 모양이었다.
나도 낚싯줄을 바다에 던졌다. 끌어올렸다가 던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한순간, 손끝에 전해져오는 느낌이 묵직했다. 걸렸다! 속으로 생각하며 서둘러 낚싯줄을 끌어올렸다. 당길수록 뭔가 걸려들었다는 느낌이 더욱 또렷해졌다. 그러나 줄에 매달린 낚싯바늘은 20여개가 거의 다 올라올 때까지 모두 허탕이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 낚싯바늘에 오징어 한 마리가 걸린 채 몸부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잡았다아∼!” 배꾼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있었다. 새벽 1시 반께였다.
그때 얼굴에 뭔가 확 끼쳐왔다. 낚싯바늘을 입에 문 채 몸을 뒤틀며 퍼득거리던 오징어가 먹물을 뿌려댄 것이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뿌듯해진 나는 낚싯줄을 힘차게 바다 속에 던졌지만 오징어는 좀체 다시 걸려들지 않았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배꾼들은 밤새도록 자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지고 세찬 바람에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왔다. 함께 탔던 행사참가자 몇명은 어느새 비좁은 선실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차갑게 돋아났다. 그때였다. 허탕만 치던, 일산에서 온 최씨가 연거푸 오징어를 낚아올리고 있었다. 한때 가자미잡이배를 탔었다는 그의 실력을 발휘하듯.
낚싯줄 푸느라 시간 다 보내
새벽 3시께. 나는 오징어 한 마리를 더 낚아올렸다. 하지만 이놈은 여간해서 입에서 낚싯바늘이 빠지지 않았다. 결국 잡고 씨름하기는 통에 낚싯줄과 바늘들이 그만 어지럽게 뒤엉켰고 조업이 끝날 때까지 줄을 푸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무심한 바다는 새벽녘이 되자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배는 조업중에 흘러흘러 어느새 울진 앞바다까지 떠내려가 있었다. 새벽 4시가 가까워지자 선장이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귀항이었다. 집어등이 꺼지고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배는 항구를 향해 내달렸다. ‘만선의 꿈’을 뒤로한 채 송씨가, 온기가 있는 기관실 옆에 웅크린 채 졸기 시작했다. 검푸른 바다 위로 손톱만한 달이 걸려 있었다. 바닷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3시간여를 그렇게 달렸을까. 저 멀리 육지의 불빛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묵호항이 희미하게 보일 때쯤 뒤로 바다 멀리 희붐하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0월은 동해 오징어잡이의 끝물이다. 묵호항을 떠나 오징어잡이에 나서고 있는 소형 채낚기 어선.
묵호항에는 우리처럼 오징어잡이배 체험을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동해시청 직원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휴대폰으로 오늘 배가 뜬다고 했던 동해시청 손재광씨가 우리를 보자마자 한마디 보탰다. “기상청의 폭풍주의보 해제 시간이 오락가락했었는데, 결국 오후 2시에 해제된답니다.” 오징어잡이배 체험행사는 10월9일부터 12일까지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폭풍 탓에 배는 번번이 뜨지 못했고,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끝에 마지막날인 이날(12일) 동해로 달려온 것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은 우리를 포함해 10명. 우리는 약국부터 들렀다. 귀밑에 멀미약을 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병에 든 멀미약까지 따로 챙겼다. 약국 주인은 “한번 배멀미를 시작하면 끝까지 기둥만 붙잡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묵호항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오징어잡이에 나설 배들이 출항 신고를 위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탈 배는 원래 10t짜리 소형 어선이었다. 그런데 항구에 배를 댄 선장이 걱정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배에 타는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한번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야. 우리처럼 작은 배일수록 배멀미하기 십상이지. 잘 생각해보라고.” 참가자들의 얼굴에 수심이 번졌다. 게다가 낮게 깔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생각을 고쳐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1t짜리 오징어 채낚기어선 명진호(선장 신정기·45)가 항구에 들어온 건 이때였다. 동해시 직원은 “아무래도 큰 배는 흔들림이 덜할 것”이라며 명진호를 타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나와 강 기자 등 참가자 6명은 예정에 없던 명진호를 무작정 탔고, 4명은 다른 배에 나눠탔다. “내 나이? 8학년1반이야” 퉁퉁퉁퉁…. 명진호가 엔진소리를 내며 뱃머리를 바다쪽으로 돌렸다. 갈매기들이 후두둑 날아올랐다. 갑판에는 노인 둘이 뱃머리에 타고 있었다. 앉아 있어도 몸이 기우뚱거리는 게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흔들렸다. 젊을 때부터 오징어잡이배를 탔다는 이씨(명진호 배꾼들은 김씨, 이씨 하는 식으로 서로를 불렀다)는 “선원이 9명인데 다들 선실에서 자고 있다”며 “지금은 오징어잡이 끝물”이라면서 밭은기침을 해댔다. 뱃전에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갑판 위로 소나기처럼 바닷물이 쏟아져내렸다. “이 정도 파도는 별거 아니야. 바다에는 여름과 겨울이 따로 없어.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하는데….”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탓에 뱃사람이 ‘쉬 늙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62살이었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귀를 의심하자 그가 뱃머리에 앉아 있는 다른 노인을 가리켰다. “내 나이? 8학년1반이야. 아들은 없고 출가한 딸들한테 신세지기도 싫고….” 81살의 송씨였다. 송씨가 꺼질듯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멀리 육지쪽 산에 저녁노을이 걸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실루엣처럼 어두워졌다. 묵호항을 떠난 지 두 시간 남짓 지났을까. 배의 엔진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잡을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선장은 묵호항에서 23마일(약 37km) 정도 떨어진 해상이라고 했다. 선실에서 잠자던 배꾼들이 그제야 모두 갑판으로 나왔다. 배꾼은 중년 남자 두세명이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 환갑을 넘긴 노인들이었다. 거칠고 억센 뱃사람이라는 말은 적어도 명진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정도로 배꾼들은 한없이 작은 노인들이었다. “오징어 잡는 사람들이야 다 막다른 골목이지. 기댈 곳도 없고….” 송씨가 말했다. 배꾼들이 서둘러 물돛을 내리기 시작했다. 조류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낙하산처럼 생긴 물돛을 배 뒤편 바닷속에 내려 배를 정지시키는 작업이다. 이미 바다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엔진이 완전히 꺼지자 순간, 배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배에 매단 120개의 집어등(밤에 오징어를 불러모으는 데 쓰는 전등)이 일제히 켜진 것이다. 캄캄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은 말 그대로 장관, 그것이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다른 오징어잡이배들도 조업을 막 시작하는 참인지 바다 멀리 군데군데서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집어등 하나는 3000W로 가정용 전구 30여개를 켠 것과 맞먹는다. 모자를 쓴 건 집어등 불빛이 뜨거워 얼굴이 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오징어잡이에 나서기 전에 선장이 도시락을 싸들고 갑판에 앉았다. 저녁식사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동해시청 직원은 배 위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거라고 했는데 선장이 내온 도시락은 하나뿐이었다. “아니, 도시락을 아무도 안 가져왔다는 거야? 할 수 없지, 나눠먹는 수밖에. 오늘 오징어잡이 체험말고 굶는 체험을 하면 되겠네.”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선장이 사람좋은 웃음을 배어물었다. 저녁은 소금기에 전 과일 몇개를 깎아먹는 것으로 때워야 했다. 선장이 됫병짜리 소주와 오징어회를 꺼내와 술추렴을 시작했다. “잡는 대로 다 가져가!”

선장은 잡는 대로 다 가져가라고 했지만 결국 두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새벽 1시께 첫 오징어를 낚아올리고 있다.

명진호에 탄 오징어배 체험 참가자들이 신정기 선장(오른쪽)과 함께 저녁을 대충 때우고 있다.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오는 오징어.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