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 지하도에서 숨진 이들의 영정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는 장애인들. 이들은 가난한 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숨줄을 조이는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한겨레 김정효
주기도 싫은 돈, 왜 법으로 만들었나 틀어놓은 영상 속엔 노모와 함께 사는 늙은 아들의 사연이 나온다. 몇 번째 재실행되고 있다. 이 가난한 이들의 55만원, 50만원, 40만원은 이제 그만,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뺏을 걸 빼앗아야지 않나. 매달릴 곳이라곤 국가 같은 것밖에 없는, 매일의 삶이 시급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죽고 있다. 드러나지도 않은 곳에서, 국가가 지역사회가 아니 당신이 내게 무언가를 주었어야 했다고 말해볼 생각도 못한 누군가가 오늘도 죽고 있다. 드러나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얼굴들이 있다는 게 더 아프다. 아이들 얼굴 위에 근조 리본이 씌워져 있다. 너무나 익숙할 정도로 많이 봤나보다. 저것이 끔찍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똑바로 다시 본다. 웃는 아이들 얼굴에 죽음을 뜻하는 근조 리본이 붙어 있다.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고 있고. 비극. 비극. 비극. 발이 시리다. 살아 있는 내 두 발. 오후 1시45분. 교대시간 2시. 농성장에 온 시간 지난밤 10시. 전기장판 켜고 자리 깔고 자고 자리 치우고 영정에 초 켜고 밥 사먹고… 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저 추위를 견디며 영정 속 얼굴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동시에 바라보며, 산 사람의 시선을 대체로 피하며, 종종 묻는 말에 답하며 앉아 있었다. 김주영의 영정과 선전물을 유심히 보던 아주머니께서 장애등급제가 왜 없어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장애등급이 있어야 뭘 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지금 장애등급에 따라서 서비스를 주고 있는 게 맞는데요.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은 더 있는데 정부가 1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 많아서 정작 필요한 사람이 서비스를 못 받고 있어요. 정부가 예산을 늘릴 생각은 안 하고, 이 서비스는 1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하고, 1급 자격도 굉장히 어렵게 만들어놨어요. 이쪽에 예산 쓰는 것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무심히 휙휙 지나간다. 나 역시 고개 들어 그들을 갈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간간이 지우·지훈이와 주영씨와 눈을 맞춘다. 떠나지 못하게 하니 그들은 곁에 있다. 잠잘 때도 웃을 때도 저렇게 장막이 되어 곁에 있다. 콧구멍에서 허연 김이 나온다. 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글을 쓴다. 어쩌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낯선 이들과 마주하기 어려운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한 나의 방법일지 모르겠다. 무심한 사람들… 나는 고작 발이 시리다 농성 초반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금방 무언가 바꿔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자신감,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정당함. 사람들을 만나 친절하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 줄 왜 몰랐을까. 그렇다고, 뭐,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무엇이 달라졌다고. 560일이 넘는 동안 달라진 건 늘어난 영정, 죽은 자들의 얼굴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의 위치와 단단함을 더 크게 느낀다. 농성장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우릴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불편하겠지. 그냥 지나가기도 쳐다보기도 말을 걸기도. 마음만큼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이 죽고, 춥고. 살아 있는 나는 고작 발이 시리다.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