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직접 ‘장애인 인권’에 대해 강의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노들장애인야학 제공
이제 이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호시탐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밀어내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이곳의 토양이 바뀌어야 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하는 곳, K들을 추방했던 최초의 그곳, 학교로 가자. 장애인 인권교육 사업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인권강사 K 만들기 K를 교단에 세우기 위한 속성 코스에 돌입했다. 대학교수가 법조문을 해설하고 베테랑 인권강사가 아이들을 사로잡는 비법을 전수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K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가슴 뛰는 혁명을 노래하기에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고, 수십 명의 천둥벌거숭이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에는 그의 팔이 너무 얌전했다. 무엇보다 K에게는 활동보조 서비스도 충분하지 않았고, 아직은 글을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강의 준비는 물론이고 당일 아침 활동보조와 이동까지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 야학 교사인 내가 K의 짝이 되었다. 1시간의 인권교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K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다. 우리는 오직 K만을 위한 강의안을 만들었다. 처음 중학교로 인권교육을 나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전날부터 숙식을 함께하며 연습했다. 글을 빨리 읽을 수 없는 K는 커닝 실력이 부족했으므로 대사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나는 밤새 그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었고 동이 틀 무렵에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K의 활동보조를 했다. 봉고차 가득 중증장애인 강사들을 태워 용역처럼 ‘출동’하는 그 피곤했던 아침에는 이 사업이 이렇게 오래, 번창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여러분, 공부하기 힘들지요?” 아동의 ‘놀 권리’로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동들은 잠시 들어주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찧고 까불며 권리 실천에 들어간다. 놀 권리가 금세 나의 목소리를 잠식한다. 그러다 K가 입을 떼는 순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반응’을 한다. 이 교실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장면이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든다. 잘 들리지 않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갖다 대고, 놓친 이야기의 빈틈을 채우려고 미간을 찌푸리고 눈동자를 굴린다. 아이들의 오감이 활짝 열린 이 틈을 타서, 나는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같은 멋있는 말로 뒤통수를 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K가 내 뒤통수를 더 자주 친다. 자기 차례인데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천장만 바라보거나, 간신히 입을 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예상에 없던 질문을 받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늘어놓는 대답이 줄줄이 반인권적일 때, 나는 밤샘 노동의 본전 생각이 난다. K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기억력은 비상하게 뛰어나고, 차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인권의식만은 기가 막히게 균형 잡힌, 그런 사람이면 좋았으련만. K는 그저 범상하다. 내가 그러하듯이.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생고생을 몇 년간 사서 했다. 그것은 이 인권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차별받은 장애인 당사자를 교육자의 위치에 세우는 것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나에게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그것들을 넘느라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응원하고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한 걸음 내딛고 두 걸음 머뭇거리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K가 자신을 밀어낸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어깨가 조금 떨리고 있어서 좋다. 어깨에 진 짐의 무게만큼 K의 삶은 땅속으로 뿌리박을 것이다. 어떤 뿌리도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다. 조금씩 내려가면서 단단해지고 굵어질 것이다. 삶은 더 이상 유예될 수 없다. 사회적 약자, 주변인이라는 상징 익숙한 사고의 회로를 거꾸로 돌리고 결속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이 ‘할 수 있게’ 되고, ‘비정상’의 것들이 ‘정상’이 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익숙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깨야 한다. 약자에게 주어야 할 것은 권력이고, 주변인에게 필요한 것은 중심의 자리, 자기 울음을 우는 주체의 자리다. 오래전 밀려나고 사라진 것들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조합은 낯설다. 그것을 기획하는 건 상상력이지만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용기 있는 실천이다. 낯선 조합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말보다 더 크게 말하는’ 인권의 힘이다. 서울 대학로 한복판의 장애인 야학은 아름답다. 그리고 중증장애를 가진 인권강사 K는 힘이 세다. 홍은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