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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해고 그뒤, 일터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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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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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주름진 나날… 지친 심신 이끌고 애끓는 복직투쟁 벌여

사진/ 복직의 그날을 기다리며…. 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농성을 벌이고 있다.(강창광 기자)
‘공장으로 돌아가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0월10일, 서울 종로3가 종로성당 3층 강당이 200여명의 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언뜻 보면 이곳이 농성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감색 투쟁조끼에는 복직을 요구하는 글귀가 선명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전국금속산업노조연맹 주최로 열린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삶의 질 조사결과 발표 및 대책마련을 위한 공청회’였다.

물론 참석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지난 2월17일 1750명 정리해고 대상자 통보, 4월10일 경찰의 대우차 부평공장 폭력진압, 9월21일 제너럴모터스(GM)와의 매각 양해각서 체결, 그리고 가을.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들과 잔뜩 때로 얼룩진 투쟁조끼가 8개월에 걸친 기나긴 해고노동자의 신산스런 삶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군데군데에는 귀밑 머리칼이 희끗한 ‘늙은 노동자’도 섞여 있었다.

실업급여로 연명, 가정파탄 초읽기


해고 그뒤,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천 산곡성당에서는 여전히 250여명의 대우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농성을 벌이고 있다. 금속산업노조연맹은 “정리해고된 1750명 중 500여명은 1주일에 하루이틀씩 새벽 인력시장 같은 데 나가서 일하고 또 사나흘씩은 산곡성당에 나와 싸우고 있다”며 “나머지는 집에서 쉬거나 취업 또는 창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정진주 연구원이 발표한 ‘대우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삶의 질 조사’(대우차 정리해고자 247명 설문조사 및 해고자 가족과 인터뷰)는 해고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해고노동자의 ‘파탄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사대상 해고노동자의 평균나이는 38.6살, 근속연수는 12년이다. 우선, 생계유지를 위한 주요 수입원으로는 전체 응답자 중 97%가 실업급여를 들었고, 퇴직금은 40%, ‘각종 예금·적금을 깨서’는 25%, ‘빚을 내서’라는 응답이 13%였다. 실업급여가 끝난 뒤의 생계대책은 ‘퇴직금으로 살겠다’가 47%, ‘무대책’이라는 사람도 36%였다. 6개월간 주어지는 실업급여도 이제 한두번 더 타면 끊길 처지다. 공청회장에서 만난 한 해고노동자는 이름 밝히길 꺼리며 “실업급여마저 끊기면 한마디로 답이 안 나온다”며 어두운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쥐었다. 살던 집을 팔고 전·월세로 옮기는 것은 물론 전세로 살던 노동자 중 21%는 월세 또는 부모, 친지집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생활비를 덜고 있었다.

물론 이런 형편이 평온한 가정을 그대로 내버려둘 리 없다.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14년간 일했다는 유재용(43)씨는 “산곡성당에 언제부터인가 안 나오는 사람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가정이 파괴된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나는 공장일 나가는 아내가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지금 속으로 삐걱대는 집들이 많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해고노동자도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데 집사람이나 애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게 비수로 와서 꽂히지. 내가 실업자가 됐으니까…. 별 일 아닌데도 부부싸움이 크게 벌어지는 거야”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일까. 해고노동자들의 눈은 저마다 책상 위에 놓인 공청회 자료집에 가 있어도 정작 마음속은 온통 ‘공장으로 돌아갈 날’만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정진주 연구원은 “이혼이나 별거, 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거나 다른 친지집에 얹혀사는 등 해고 뒤 15% 정도의 가족이 변화를 겪고 있다”며 “해고상태가 장기화하면 가족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조사결과 ‘부부간에 대화가 줄었다’가 69%, ‘부부싸움이 잦아졌다’가 72%, ‘성생활이 줄었다’가 65%로 나타났다.

해고노동자 유재용씨는 “동료들이 가정불화가 생기는 집을 돌면서 ‘끝까지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어서 그나마 가정파탄이 덜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희망이 끝내 절망으로 바뀔 경우 가정이 줄줄이 결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자신은 복직투쟁을, 아내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권유하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이것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51%)가 많아 해고노동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해고에 뒤따르는 이런 변화는 해고노동자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 건강했는데 해고 이후 스트레스로 ‘홧병’에 시달리는 것이다. 정진주 연구원은 “가족관계가 나쁜 해고자가 좋은 해고자보다 무려 83배 정도 정신건강에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공청회장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15년간 부평공장에서 일했다는 김용수(39)씨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이 생기는 사람도 해고 동료 중에 많다”고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청춘을 바친 공장에 돌아가고 싶건만

사진/ 대우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삶의 질에 관한 공청회 모습.(박승화 기자)
물론 생계가 막막해지자 상당수 해고노동자는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청회장에는 허름한 양복차림으로 온 사람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우차 ‘회생’을 명분으로 한 자신들의 ‘희생’을 여태껏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에게 일용직은 ‘며칠 하고 그만두는 일자리’에 불과하다. 유재용씨는 “죽어도 부평공장의 조립공장 4거리에서 죽을 것”이라고 사뭇 비장한 각오를 보였고, 차체조립부에서 24년을 일했다는 김석배(53)씨는 “내가 왜 잘렸는지 황당하고 억울하다”며 “29살부터 내 청춘을 바친 곳인데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왼쪽에 ‘고용’, 오른쪽에 ‘안정’이라고 적힌 투쟁조끼가 그의 울분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재취업을 위해 정부가 세운 대우자동차 희망센터에서 알선해주는 일자리도 경비직이거나 일용직이기 일쑤다. 한 노동자는 “희망센터에서 공항관리공단에 알선해주었는데 인천공항까지 들어가는 데 7천원, 나오는 데 7천원 쓰고 나면 얼마나 벌겠냐”고 신세를 한탄했다. 게다가 ‘대우차 해고노동자’라는 딱지도 재취업을 가로막기 일쑤여서 이래저래 “복직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시름은 더할 수밖에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직투쟁 속에서 실업급여는 끊기고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해고노동자를 가장 괴롭히는 건 ‘사회적 고립’이다. 노동이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수단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와 자아정체감을 형성해주는 구실을 하는데, 느닷없는 ‘해고’가 이것을 깨버리는 것이다. 해고노동자 김석배씨는 “예전에 내가 현장 부장으로 있을 때는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곤 했는데 해고 뒤에는 평소에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내가 이런 처지니 부르기도 뭣 하고…. 그야말로 단절의 삶”이라고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같은 해고노동자 유재용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들하고 그전에는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했는데 지금은 해고된 동료들 외에는 거의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씨는 지난 추석 때는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쪼들리는 살림에다 자신의 실직 처지 때문에 친지 방문도 뜸해지는 것이다. 정진주 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 한 노동자는 “정리해고만으로 스스로 죄인이 된 것 같아요. 동네에서 ‘저 아저씨 갑자기 왜 안 나가?’라고 묻는데 ‘정리해고됐습니다’는 얘기가 안 나옵니다. 저 사람이 뭘 그리 잘못했기에 해고가 됐나, 그렇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것도 두렵고…”라고 했다. 공청회장에서 만난 김용수씨는 “내 형편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처갓집에도 한번 못 가는 처지”라고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동차 벗어나 무엇으로 살란 말인가

사진/ 해고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다. 대우차 해고노동자들은 평균 12년을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보냈다.(강창광 기자)
사회적 고립이 단적으로 나타나는 게 부쩍 줄어든 말수다. 한 해고노동자 아내의 말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다 한번씩 집에 들어올 때는 기어 들어오고 들어오면 잠을 하루이틀씩 자요. 말 한마디도 않고. 들어올 때부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몸이 되어 들어와서는 나갈 때도 말 한마디도 않고 나가는 겁니다.” 이에 대해 정진주 연구원은 “해고로 인해 친척, 친구와의 인간관계가 줄어들거나 단절되면서 해고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혼란과 함께 자신의 자존감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은 물론 삶 전반에 걸쳐 사회적 관계가 끊기는 등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가 파괴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차 해고노동자들은 복직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트럭운전을 해보려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던 해고노동자 김용수씨는 “배운 기술이 자동차뿐인데 대안도 없고 갈 데가 없다”며 “실업급여는 끊기고 퇴직금을 까먹으며 살고 있지만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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