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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누구를 위한 강제합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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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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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승화 기자)

서울 명동 국민은행 본점 1층 로비에 10월12일 오후부터 스티로폼 멍석이 깔렸다. 국민은행 노동조합 김병환(46) 위원장이 국민·주택은행 강제합병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이미 지난 9월 주주총회에서 합병승인이 떨어진데다 11월1일이면 합병은행이 정식 출범하는 마당에 너무 때늦은 듯 보이기도 하건만 얇은 이불 2∼3개를 겹친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물론 시일이 많이 흐르긴 했지요. 합병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조합원들조차 체념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렇지만 두 은행의 합병은 처음부터 제대로 절차도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것이었으며 정부의 압력으로 이뤄진 게 분명합니다. 싸워서 철회시켜야지요.”

지금은 거대 국민은행 노조를 이끌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노조활동 경력은 대단히 짧아 겨우 2년 정도. 그것도 비상근 대의원 자격이었다. 노조에 깊숙이 몸담게 된 건 올해 2, 3월 두달 동안 합병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 파견돼 일하면서였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9월 위원장선거에서 노조 상근 10년을 웃도는 세 후보를 제치고 1차에서 곧바로 과반수를 얻어 위원장에 오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결과였다. “조합원들이 합병철회를 이끌어낼 적임자로 저를 꼽은 것이란 생각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내와 대학 1학년 딸,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그의 노조활동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3월 말에 크게 ‘사고’를 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강제합병에 항의하며 칼로 배를 그어 50바늘이나 꿰매야 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인생 궤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축구. 서울 중동중·고, 국민대 대표 축구선수를 거친 김 위원장은 군생활도 축구(해병대 대표 선수)로 마쳤다. 국민은행에도 축구선수로 영입됐으며 일선 은행업무에 배치된 것은 86년부터였다.


김 위원장을 만난 건 단식돌입 2일째 오후. 마침 토요일이어서 부모임, 야유회 가는 동료직원들이 많은 듯했다. 단식에 들어간 그를 퇴근길에 지나치면서 선후배 동료들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선배인 듯한 어떤 이는 봉투를 쥐어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미안해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김 위원장은 손을 내저었다. “놀 때는 놀아야지요. 잘 다녀오세요. 아 참, 그리고 맛있는 것 좀 남겨오고요, 하하.”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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