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씨가 2월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유서 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박승화
무죄판결이 ‘강기훈의 고난’에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소 뒤 그는 수모와 모멸의 세월을 살아왔다. “저런 새끼는 죽여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던 노인과 버스 옆자리에서 알아보고 쌍욕을 하던 사람들”을 그가 견디며 사는 동안, 그를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린 책임자들은 승승장구했다. 강씨는 1월16일 재심 결심공판에서 밝힌 최후진술에서 그의 기소와 판결에 관여했던 검사들(강신욱·신상규·송명석·안종택·남기춘·임철·곽상도·윤석만·박경순)과 판사들(노원욱·임대화·부구욱·박만호)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했다. 그중 적지 않은 인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근거리로 옮겨갔다. 벼랑에 몰린 정권을 유서 대필 사건으로 구원해낸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현재 박근혜 정부의 ‘공안사건 지휘자’(청와대 비서실장)로 지목되며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강신욱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서울고검장을 거쳐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2007년엔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캠프의 법률특보단장을 맡았다. 같은 해 11월 진실화해위가 사법부에 재심을 권고했을 때 그는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특정 단체가 입맛에 맞는 결론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당시의 김기춘 법무부 장관, 강신욱 강력부장 신상규 주임검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광주고검장을 역임(현재 변호사)했다. 강씨는 “원심 법정에서 재판 내내 나를 비롯한 모든 증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다 같은 패거리라고 광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최후진술서)며 그를 기억했다. “너희들은 뽕쟁이(마약사범)나 똑같은 놈들”이라던 취조실 발언(1991년 6월24일)도 잊지 못했다. 남기춘 검사는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클린검증제도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7년 진실화해위 권고 때 그는 “1991년 당시 증거물로 제출되지도 않았던 김기설씨의 필적을 가져다 감정한 뒤 이것이 옛날 감정 결과와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수사와 재판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무죄를 유죄로 만든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무죄판결을 내린 재판부조차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강씨가 무죄판결에도 덤덤했던 까닭이다. 그는 “재판 결과보다 당시 검찰과 사법부가 자기반성의 뜻을 전해줬다면 훨씬 소중하게 다가왔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검찰이 재상고할 가능성이 높으니 대법원에 가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정의를 지연시킨 책임을 묻지 않는 한 ‘너무 늦게 온 정의’는 정의일 수 없다. 그의 무죄는 그를 고난으로 몰아넣은 권력의 책임을 밝히는 시작이어야 한다. 법원은 재심 대상이 아니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강기훈씨는 현재 간암 투병 중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