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빠져 삶을 위로하마!
등록 : 2001-10-16 00:00 수정 :
잊고 싶은 성장사도 죽고 싶을 정도로 처참(?)했던 연애사도 음악을 듣다보면 세월과 함께 흘러간다. 오랜 벗들과의 사별도 70, 80년대의 질풍노도도 판을 돌리다보면 묻혀진다.
그의 본업은 ‘음악듣는 일’이다. 판을 갈아끼우는 틈틈이 방송하고, 책읽고, 글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일용할 양식을 버는 시간을 빼고 나면 그의 제자리는 언제나 스피커 앞 느슨한 카우치 위다. 카드빚 아랑곳않고 기기를 갈아치우는 오디오마니아로, 1만장 넘는 LP수집광으로 ‘이 사람이 사는 법’류의 코너에 가끔 등장해 이름 뒤에 또 하나의 레테르를 붙여준다는 것 빼고, 음악을 듣는 일은 사랑도 명예도 밥도 주지 않는다. 시인이자 방송인
김갑수(42)씨에게 음악은 삶을 위로해주는 ‘익숙한 벗’과 같다.
최근 KBS1라디오 <김갑수의 문화읽기>(매일 밤 10:01∼11:00) 진행을 맡아 방송인으로 입지를 굳힌 김씨가, 책을 한권 냈다.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웅진닷컴 펴냄)는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음악을 통해 본 인생론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한 음악광의 이력을 밝힌 자전에세이집 <삶이 괴로워 음악을 듣는다>의 속편인 셈.
방송일을 두고, “문학의 일선에 있는 사람이 방송을 활용하는 것”이라 설명하는 김씨는 이번 책을 두고, “삶의 일선에 있는 사람이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듣기는 문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도 허접한, 삶이라는 진공지대 속에서 “자아의 양은 늘어나면서 인생의 크기와 무게는 축소되어 보이는 그런 현상”이다. 비록 “저 혼자 충만하고 저 혼자 난해한 시간들”이지만, 삶으로부터의 일탈과 삶에 기대는 비루함은 ‘인생이라는 자’의 양면이 아니던가.
연애의 악몽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가도 새로운 사랑과 희희낙락하고, 어제 어깨걸고 휩쓸던 그 거리에 오늘 빌린 돈 갚을 걱정하며 마신 술을 게워내도, 여전히 인생이란 동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일까? 텔레만(6천여곡을 남긴 음악사상 가장 다작인 독일 작곡가)의 오보에를 들으며 창 밖의 빗줄기를 긋다보면 “너 아직 살아 있니? 난 아직 살고 있어”라는 짧은 문자메시지를 누구에겐가 보내고 싶어진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