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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동체를 꿈꾸는 건가요. =경쟁보다는 협동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수평적인 세상이오. 위계질서나 신분질서, 권위질서 이런 거 없는 세상이오. 우리는 쌍둥이들도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궁금해하고 따지잖아요. 그런 게 무슨 소용이에요. 네 안에도 하늘 있고 내 안에도 하늘 있다, 너도 존중하고 나도 존중하자, 그런 세상이오. 말하는 사람은 담담한데 혹시 선문답처럼 느껴질까봐 외려 듣는 내가 긴장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그걸 생경하게 느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가 동학에 빠져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 -그런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서 여기(옥천)로 오신 건가요. =제가 서울에서만 56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갑사 근처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여기로 온 지는 1년 조금 넘었습니다. 우연히 공동체를 숙제로 받은 명상 스승을 만나 여기서 공동체를 하는 게 좋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천당을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으로요. 그래서 명상 도반들과 땅을 샀어요. 이제부터 이 동네에 각자 집을 짓고 저희가 꿈꾸는 공동체를 만들 예정입니다. “자기 안의 부처 발현시키는 명상 필요” -선생님은 학생 때도 그랬고 사회운동을 할 때도 그랬고 삶이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투쟁도 결국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거였잖아요.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나요. =이전에는 바깥을 향해서 ‘바꿔라, 이건 싫어, 안 돼, 이게 옳아’ 이런 거였죠. 근데 그런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어서 우리끼리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 그런 생각이 든 거죠. 그렇다고 그곳이 고립된 공간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에너지를 민들레 홀씨처럼 퍼뜨리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아, 우리도 저렇게 살자’며 카피해서 여기저기 만들어지겠죠.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의 갈등을 잘 갈무리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수도자들도 인간관계가 껄끄러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요. =외국에서도 공동체의 수명이 평균 15년이래요. 왜냐하면 그 안에서 경쟁하고 자존심을 세우면서 이게 무너진다는 거죠. 그래서 명상이 필요한 거예요. 명상으로 수행한 사람들은 인간관계 문제에서 쉽게 갈등을 일으키거나 분쟁하지 않게 됩니다. 명상은 수행이잖아요. 자기 안에 있는 천사, 예수, 부처를 발현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태산과 같은 호연지기를 키우게 되고 사람 자체가 달라지게 되죠. 그러면 그런 갈등들이 상당 부분 생기지 않게 돼요. ‘명상 결정론’이라고 할 만큼 명상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해 보였다. 나는 그 믿음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가 평생에 걸쳐 몸으로 보여준, 제대로 산다는 것에 대한 결기는 언제고 믿는다. 그런 결기의 결과물이 그가 꿈꾸는 공동체라면 기꺼이 그 마을의 주민이 될 의사도 충만하다. 기본적으로 그 공동체는 여성성을 바탕으로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세상이 여성성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예측은 얼마나 얼마나 사람을 안심시키는지 모른다. -여성성의 힘을 믿으시죠. =보호하고 나누고 살피고 이런 게 여성성의 특징이라면 공격하고 점령하고 이기고 경쟁하는 것은 남성성의 특징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할지는 명확하죠. 고은광순이 치매에 걸린 87살의 노모를 모시고 홀로 갑사에 내려와 산 6개월은 그런 여성성의 힘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생생한 사례라 할 만하다. 고은광순은 당시를 세밀하게 기록했다. 나는 그 기록들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삶의 한 표본으로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어머니의 먹거리를 챙기는 과정,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서 온갖 지혜를 짜내는 간병의 과정, 반응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과정은 돌보고, 나누고, 살피는 여성성의 특징을 영화로 찍은 듯하다. “제 전생이 중동 레바논의 파락호였대요”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 시간이 선생님에게도 굉장히 의미가 있으시죠. =굉장히 의미가 있고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여자들은 일상적으로 하는 거죠. 당시 어머니는 가시는 길이 딱 한 가지였잖아요.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는 수천 갈래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니까 더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은데 대개의 여자들은 엄마의 역할을 하거든요. -생명을 대하는 접근 방식에서 여성과 남성은 차이가 많아 보입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모성성이라는 것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모성성이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해요. 사실은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는 거거든요. 남자들은 리모컨 효도를 해요. 자기는 부모 생일도 잊어버리면서 부인이 잊어버리면 죽일 년 살릴 년 하죠. (웃음) 부모가 아플 때 기저귀 한번 안 갈아주고 머리 한번 안 감겨줬을 거면서 제사는 순서 차려가면서 얼마나 깍듯하게 챙겨요. 계실 때 사랑한다 말하고 전화 한번 더 하고 기저귀 한번 더 갈아주는 그게 효도죠. -가족과 떨어져 치매에 걸린 어머니하고만 갑사로 내려가는 결정이 어렵진 않으셨어요. =아니요. 남편과 아들 둘에게 ‘육남매를 키워준 분인데 가시는 길을 저렇게 보내드릴 순 없다. 당신들은 건강하니까 잘 살아라. 난 어머니 모시고 내려가서 살겠다’ 그러고 그냥 내려왔어요. 닭을 키워보니 닭의 모정은 새끼가 크면 끝나요.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아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옥천으로 올 때는 어떠셨어요. =제가 여기 내려올 때 우리 네 식구가 동서남북으로 서서 108배를 했어요.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오기는 섭섭해서요. 이제 옛날처럼 모여 사는 것은 진짜로 마지막이잖아요. 그치만 수시로 카톡 하고 1년에 몇 번씩 만나니까 아쉬운 건 없어요. -선생님은 결정적인 사람이나 상황과 마주하면 진검승부를 하는 듯합니다. 물러서거나 머뭇거림도 없고요. 생각과 행동에 간격이 별로 없어 보여요. =남편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치고 빠지고 그래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계속 치고 치고 그러냐고요. (웃음) 제가 좀 집요하죠. 한번 물면 안 놓아주죠. 사람들이 호주제 폐지할 때 많이 질문한 게 ‘그거 될 가능성이 몇%라고 생각하세요’였어요. 저는 그게 참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될 때까지 하는 거거든요. (웃음) -참 많은 일을 해내셨어요. =내가 어떤 숙제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떤 도인이 제 전생이 중동 레바논의 파락호였다고 하더군요. 여자들 눈에 피눈물을 쏟게 해서 다음 생애엔 여성들을 위해서 태어나야지 그랬는데 중동은 앞으로도 300년이 걸리기 때문에 한국을 택했다는 거예요. 한국에 잘 태어나셨어요, 속으로 맞장구치며 물었다. -그런 걸 믿으세요. =제 인생을 보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요. 딸이 넷 있는 집의 넷째딸로 태어나 여성에 대한 직접 차별, 간접 차별 다 당했잖아요. 한의사가 된 것도 독재 투쟁하다가 감옥 갔다 와서 허리가 안 좋아져서 그거 고치려고 한 게 계기가 됐어요. 한의사가 되고 처음 함께 일한 스승이 아주 유명한 임신 전문 한의사였는데 거기서 보니 사람들이 전부 아들만 바라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죠. 민주화 투쟁, 호주제 폐지, 약사법 분쟁 뭐 그런 것들이 이렇게 톱니바퀴 엮이듯이 계속 다음 할 일을 안내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 때 데모할 때는 ‘아, 내가 이거 하려고 태어났나보다’ 그러고, 호주제 폐지 운동할 때는 또 ‘아, 내가 지금 이거 하려고 태어났구나’(웃음), 명상을 시작하고는 내가 가열차게 살았더니 이렇게 복을 주시는구나 했는데, 보니까 여기 와서 또 할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아, 그래 나도 이 정도면 밥값하고 갈 수 있겠다’ 싶어요. “공적인 게 사적인 거 사적인 게 공적인 거” -밥값 넘치게 하셨죠. 선생님을 사회적 전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전혀 전투적으로 보이지를 않으세요. =저는 싸울 일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 호주제 폐지 운동할 때 우리 인터넷 사이트에 남자들이 ‘핏빛 상처’ 그렇게 쓰고 별의별 긁는 소리를 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핏빛 상처에 연고 바르기 1탄, 2탄, 3탄’ 그렇게 연속으로 제목을 달면서 반박해요. 내게 사람들이 화살을 던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나는 그 화살을 더 뾰족하게 갈아서 다시 던질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잘 안 받으세요. =안 받죠.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일이 옳으니까요. 니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얘기하고 난 둥글다고 얘기하는 거야. 낯설겠지만 이게 틀림없이 옳은 거잖아. 나는 내가 옳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아요. 더 중요한 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으니까요. 이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내가 해야죠.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늘 공적인 자아로 사는 게 힘들진 않으세요. =그건 공과 사를 구분할 문제가 아니고 그렇게 해야 내가 편하잖아요. 독재가 사라져야 내가 편하고 호주제 같은 것이 폐지되어야 내가 편하죠. 그러니까 나 좋자고 하는 거죠. 근데 나 좋은 것이 내가 사적으로 좋은 게 아니라 더불어 좋으니까 그게 진짜 좋은 거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거의 없는 거네요. =그렇죠. 저는 공적인 게 사적인 거고 사적인 게 공적인 거고 그래요. (웃음) 네거티브한 측면에서 보면 반박할 여지도 많은 말이지만 고은광순의 선의와 일관된 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라서 흔쾌히 수긍했다. 개인의 올곧은 신념이 공적인 자리에 가서도 그대로 접목되지 못하는 경우를 진저리쳐지게 봐와서 그의 말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다른 사람하고 좀 다른 거 같으세요. =어렸을 때 역사소설 이런 거 보면 왕과 왕비가 나오는 궁중 얘기가 있잖아요. 그러면 제 관심은 ‘무수리들은 어떻게 살지?’에 꽂혀요. 국사 시간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천민인 망이·망소이의 난이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영화도 <스파르타쿠스>예요. 노예해방 영화. 그래, 저렇게 살아야지. 채찍 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어.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채찍을. 그런 세상은 뒤집어엎어야지. (웃음) 제 핏속에 그런 것들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정의감, 정의로운 세상, 상식 있는 세상 그런 것에 대한 기본적인 꿈이 남달리 좀 강하지 않았나 싶어요. 잘못된 것은 고쳐가면서 사는 것이 진짜 아름다운 거 아닌가요. 사실 여기 있으면서 서울에서 촛불집회 같은 거 있으면 멀리서 응원만 보내고 미안하죠. 추운데 거리에서 열심히 물대포 맞는 사람들은 진화된 사람들이거든요. 용기 있는 사람들이고요. ‘필요 없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구나’ 선생님은 충분히 진화하셨고 저는 더 진화하겠습니다, 혼자 다짐했다. 어느 글에서 고은광순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는 치열하게 싸웠다. 후대 사람들이 가부장제의 폐해에서 벗어나 웃으며 살 수 있다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세상의 부조리와 싸워왔으니 이제 나 자신의 진화와 성장을 위해 애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필요 없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구나.’ 그의 치열한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이렇게 화답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기다려주는 일/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다음에 또 기다려주는 일”-서정홍 ‘기다리는 시간’ 모든 시간들이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진화한다. 고은광순도 그리고 우리도. 이명수 심리기획자, 녹취 강선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