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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애청소년이 문화를 일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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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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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기 이전에 청소년들이에요. 예민한 나이인 만큼 누구 못지않게 문화적인 욕구가 크지요.”

‘품청소년문화공동체’(품공동체) 심한기(36·사진 맨 왼쪽) 대표는 2001년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준비하면서 “배운 게 더 많다”며 겸손해한다. 열악한 장애인 문화환경을 체감하게 됐고, 장애청소년들에 대한 선입견도 지우게 됐다는 것이다. 품공동체의 열혈 청년들과 장애청소년들이 함께 준비한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제가 10월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연강홀에서 열린다. 정신지체청소년들의 이성문제를 다룬 <작은 사랑>, 백설공주 이야기를 장애인의 시각으로 뒤집은 <백설공주의 선택>,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그린 즉흥극 <피라카숑 하퐁출롤> 등 8개 장애인청소년단체가 준비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장애청소년들의 잠재된 문화적인 욕구를 일깨우는 품공동체는 92년 청소년복지를 전공한 열혈 청년 세명이 지하사무실에 탁자 하나 달랑 놓고 시작했다. 모두 ‘제대로 된 청소년 복지’를 일궈보겠다는 열의 하나로 안정된 복지기관의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나날이었지만 품공동체를 “바보들의 천국”이라고 위로하며 10년을 버텨왔다. 주로 강북지역의 척박한 청소년문화를 일구는 데 주력해온 이들이 올해 처음으로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맡아 준비한 것이다.

“장애청소년들에게 문화가 없는 것은 극장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고, 자막처리가 안 돼 있어서가 아닙니다. 장애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욕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품공동체의 황지희(25·왼쪽에서 두 번째)씨는 장애인문화의 첫 번째 장애로 비장애인들의 시선을 꼽는다. 그래서 품공동체가 주관을 맡은 올해 청소년연극제는 철저히 ‘장애인의 관점’에서 준비됐다. 우선 각본을 만드는 과정부터 장애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했다. 무대장치도 이들과 학부모들이 그린 그림으로 배치했다. 심 대표는 “만드는 과정부터 장애청소년들이 즐기며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며 “조금 느리고, 허술할지라도 장애청소년 스스로가 해낼 수 있고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뭔가 대단한 연극, 화려한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는 만큼 등수도 매기지 않는다. 참여한 모든 단체와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상이 돌아간다. 경쟁을 앞세운 능력주의에 즐거운 작별을 고한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에는 비장애청소년들의 축하공연도 곁들여진다. 참, 품공동체 사람들은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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