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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3일, 요보호 아동인 18살 희현(가명)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생활가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정용일
가정 해체와 아동 방임은 빈곤 문제와 연관이 깊다. 가정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고 미래를 꿈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아동자립지원사업단이 2012년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아동 6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629명 가운데 167명(26.6%)이 자신의 월소득이 55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640명 중 157명(24.5%)은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만 24살까지 머물 수 있는 일시보호시설인 자립생활관에서 생활한다는 이들은 119명(18.6%)이었으며, 정부의 전세자금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경우는 105명(16.4%)이었다.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마저 힘겨운 이들이 많다는 지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일자리는 구하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간 이들은 응답자 636명 중 99명(15.6%)이었다. 승민씨처럼 대학 재학 중에 보호 기간이 끝난 이들은 146명(22.3%), 대학 졸업 뒤 시설에서 퇴소한 이들은 150명(22.9%)이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공동생활가정 생활교사인 천지영(27)씨는 “고교 졸업 뒤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긴다. 그런데 탄탄한 직장을 얻어 꾸준히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행복했던 적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스물셋 김선희(가명·여)씨는 열여덟 되던 해 취업을 했다. 빨리 보육원을 떠나 혼자 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고교 재학 시절 경북 구미에 위치한 공장에서 하드디스크 만드는 일을 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일은 훨씬 고됐다. 첫 직장 생활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고민 끝에 경북 안동에 위치한 2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가 있는 대구로 건너갔다.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패스트푸드 매장 매니저로 3년간 일했다. 일주일 중 6일, 하루 8시간을 꼬박 일하고 한 달에 140만원을 받았다. 그즈음 시설에서 퇴소했다. 보호 기간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국 10여 곳에 불과한 자립생활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거비를 아낄 수 있었다. 올해 그는 대구에 위치한 2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미혼모를 돕고 싶다는 희망도 생겼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은행 이용법도 모르겠더라고요. 시설에 있을 때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2년 뒤 선희씨는 다시 자립생활관에서 나와야 한다. 부산 부경대 화학공학과 3학년인 조수동(21·남)씨는 얼마 전 제주도 졸업 여행을 포기했다. 40만원 정도의 비용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4살 위 형과 경북 지역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산으로 향할 당시 그의 주머니엔 200만원가량의 돈이 있었다. 2007년부터 시행된 디딤씨앗통장(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가 월 3만원 한도로 동일 금액을 지원) 저축액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이었다. 그리고 3년 뒤, 600만원의 빚이 생겼다. 학자금과 생활비 명목으로 대출을 받았다. 교내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지만 자취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엔 늘 벅차다. 대학 생활 1년을 남겨두고 휴학할 생각이다. 레크리에이션 분야로 진로를 바꿀 것이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여행도 떠나고 싶다. 가정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 안정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서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선희씨에게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런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박은미 서울장신대 교수(사회복지학)가 2013년 8월 가정위탁 대상자와 공동생활가정에서 살고 있는 중고생 353명을 조사한 결과, 걱정거리를 주로 털어놓는 상대는 친구(응답자 334명 중 31.5%)였다. 아무에게도 걱정거리를 털어놓지 못한다는 아이들은 65명(19.5%)이었다. “대학을 가고 싶은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요.” 경남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인 김정환(22·남)씨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는 아동자립지원사업단이 2011년부터 운영하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있다. 후배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돈 문제로 자주 다투던 부모님이 연달아 집을 나갔다. 집에는 그와 3살 터울의 남동생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루아침에 소년 가장이 된 것이다.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해서 밀린 월세를 내고 남는 돈으로 작은 방을 구했다. 전입신고를 하러 간 동사무소에 그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고교에 진학한 뒤,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다. 동생은 마음을 잡지 못했다. 고교 2학년 무렵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금전적 어려움이 가장 크지만, 시설을 나가도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636명 중 84명만 부모·형제와 살아 경기도 안산에서 만난 열여덟 희현(가명·여)이는 웃음 많은 소녀였다. 올해 고교 3학년이었지만, 수능을 치르지 않았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는 싫지만 교복 입은 건 부러웠어요. 나중에 교복 입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끼워줄지 모르겠어요.” 올겨울이 지나면 ‘집’이라고 부르던 공동생활가정을 나와야 한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와 살게 됐다. 방황이 시작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폭력을 휘둘렀다. 혼자 있고 싶어,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결석이 잦다보니, 공부는 더욱 어려워졌다. 고교 1학년 때 집을 나왔다. 친구 집과 거리를 전전하다가 공동생활가정에 들어왔다. 그 역시 앞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일단 검정고시를 준비해야 한다. 일자리도 필요하다고 했다. 희현이가 공동생활가정을 나서면, 경기도로부터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받게 된다. 홀로 살 방과 살림 도구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돈은 아니다. 그나마 새 가정을 일군 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게 돼 한숨 돌린 상태다. 보건복지부와 아동자립지원사업단의 2012년 조사를 보면, 시설을 나간 뒤 부모·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는 응답자 636명 중 84명(13.2%)에 불과했다. 266명(41.8%)은 혼자 산다고 답했다. “네가 겪었던 문제로 고민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관심요.” 진지한 이야기는 싫다던 아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