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평, 그 고난의 기록
등록 : 2000-08-23 00:00 수정 :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계획이 있었다. 비전향 장기수, 그들의 삶을, 바로 그들의 육성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서미라(40)씨는 최근 발간한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도서출판 창)로 소망을 이뤘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를 비롯해 비전향 장기수 7명의 삶을 담아낸 것이다.
“등장 인물들이 다 자기회고록을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어려움을 겪었죠. 저는 ‘남쪽에도 역사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북에 가더라도 자료를 남겨놓고 가셔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남편이 오랫동안 양심수 후원활동을 했고 그도 10년 동안 후원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씨는 지난 1월 출판사를 운영하던 오빠가 지병으로 숨지자 휴직하고 출판사를 맡았다. 그리고 맨처음 기획한 게 바로 <0.75평…>이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인간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가족사와 젊은 날의 사랑, 이별의 아픔, 어떤 계기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게 됐는지 등등. 구체적으로 그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어 궁금하기도 했죠.”
비전향 장기수의 원고를 받고, 3명의 편집자가 이들의 구술을 정리했다. 원고나 구술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들의 삶 자체가 극적이었다. 이야기를 받아 적던 편집진도 함께 울고 웃었다. 고은 시인의 추천사처럼 “무시무시한 고행 앞에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자못 묵연할 따름”이었다고 한다.
책을 기획할 때에는 연말께나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월 초 송환 결정이 나자 시간이 촉박했다. “남쪽에서 책을 보고 북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장기수들의 삶을 담지 못했습니다.”
서씨는 추천사를 부탁하러 교정쇄를 들고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를 찾아갔다. 너무 바빠 추천사를 쓸 시간이 없다고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원고 뭉치를 두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강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해 밤새워 읽고 추천사를 썼다는 내용이었다.
“북쪽 출판계와 교류하면서 사상의 장벽을 뛰어넘는 책을 냈으면 합니다.” 서씨는 또 하나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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