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은 2002년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액 65억원을 청구하고 임금 53억원을 가압류했다. 고 배달호씨는 이런 악랄한 노동탄압 사실을 유서에 남기고 분신했다. 1993년께 어느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한 고 배달호씨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후마니타스 제공
ILO도 정부에 개선 권고했는데 결국 배달호씨가 분신하게 된 것은, 두산중공업의 비상식적 노조 파괴 공작 등에 근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방법을 통한 노조 활동의 탄압, 무력화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두산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사회적으로 기업 쪽에서 가압류 및 손해배상을 통한 민사적 대응으로 노동3권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법원은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노동문제의 특수성, 사회법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민사법의 일반적 원칙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다. 법원의 이러한 태도가 이 비극의 제도적·사법적 배경이었다. 이런 까닭에 국제노동기구(ILO)도 2001년 3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동분쟁에 대해 시민법의 일반법인 민법·형법의 전면적인 적용을 통한 해결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임을 들어 가압류 및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방해죄를 통한 문제 접근에 대해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배달호씨의 분신을 계기로 노조·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사회문제화되자, 정부와 법원도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제기되는 가압류 등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가압류 결정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그러나 최근인 지난 11월29일 경기도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2009년 쌍용차 대규모 정리해고 당시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파업 참여 노조원 등에게 회사엔 33억1140만원, 경찰엔 13억7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전에 정리해고자와 희망퇴직자, 무급휴직 복직자 154명의 임금·퇴직금·부동산 등에 대해 28억9천만원의 가압류를 결정하기도 했다. 배달호씨가 분신한 뒤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헌법,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 의해 보장되는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해 사 쪽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신청이라는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쉽게 사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적으로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법원의 태도도 여전한 것이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는 평소 ‘호루라기 아저씨’로 불렸다. 노조 집회가 있을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참여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패 꽃다지는 배달호 열사의 추모곡 제목을 ‘호각’이라고 지었다. 고인은 분신하기 하루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사갖고 돌아와 고장난 수도꼭지를 교체한 뒤 아내에게 봉투 겉면에 ‘배달호 45만원’이라고 써서 주었다. 추모곡 가사를 옮기며 고인이 처했던 상황과 마음과 슬픔을 생각한다. 호각 새벽 흐린 광장에 그대 홀로 서 있네 오십 평생 일해온 지난 시절의 기억 한 번도 놓지 않은 호각을 입에 물고 다시 한번 부르네 새벽 어둠을 넘어
숨막히는 작업장 아무 대답도 없네 싸움은 지쳐가고 분노마저 사라져 무너진 현장 위로 조여오는 칼날뿐 닫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네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검게 물든 깃발은 내 가슴을 흔드네 천둥 같던 그대의 호각 소리 들리네 세상은 그대론데 주저할 게 무언가 그대 호각을 이제 내가 입에 물고서
길게 우는 호각 소리 깊은 잠을 깨우네 침묵하는 공장 어디에도 깊은 잠을 깨우네
박갑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