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사람이 부르는 ‘타국살이’
등록 : 2001-10-09 00:00 수정 :
추석연휴 기간이던 지난 10월2일 낮,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천극장. 적막하기조차 한 텅 빈 교정에 스피커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낯선 언어가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말을 따라, 아담한 노천극장 주변으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따가운 가을햇살 탓인지 군데군데 드리운 나무그늘 아래에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 한국에 와 있는 타이노동자들이었다.
우리의 추석명절을 함께 쇠려는 게 아니라 ‘우안거’라는 타이의 전통 불교의식에 바칠 돈을 모금하기 위한 자리였다. 우안거는 연일 비가 내리는 우기 내내 승려들이 절에서 도량을 닦은 것으로, 우안거가 끝나면 타이의 일반 불자들은 승려에게 옷과 주방도구 등을 봉헌한다. 이 모임을 기획한 한국외대
최창성(63)교수(태국어과)는 “한국의 긴 추석명절에 오갈 데 없는 타이노동자들을 위해 이 행사를 열었다”며 “마침 타이의 우안거도 막 끝난 참이라서 오늘을 택했다”고 말했다. 단상 앞에 내놓은 나뭇가지에는 한국돈과 타이돈이 뒤섞인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남편과 함께 이날 행사에 나온 타이 여성노동자 캄문(46)은 현재 일산의 종이컵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9년 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와 의정부 등지를 전전하며 어렵게 돈을 벌고 있지만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학비를 대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대다수 타이노동자는 타이 명절 때도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신세다. 대부분 불법체류자라서 한번 공항을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행사에는 홀로 들어와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부인을 만나러 타이에서 온 남편도 있었다. 부인이 쉬는 추석명절을 이용해 찾아온 것이다.
행사는 참석한 100여명의 타이노동자들이 저마다 타이노래를 한곡씩 흥겹게 불러젖히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나무그늘 아래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국외대의 타이인 교수 탓싸니(51)의 타이노래가 노천극장을 뒤흔들자 무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의정부의 가내공장에서 일한다는, 노란머리의 타이 여성노동자는 그의 노래에 맞춰 멋들어진 춤솜씨를 한껏 과시했다. 이날, 아무도 듣지 않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그들의 노래는 높고 푸른 가을하늘로 올라갔다. 어둑해질 무렵에서야 끝난 행사 내내 타이노동자의 얼굴에 그늘은 없었다. 물론 내일모레면 또다시 팍팍한 일터로 돌아가야하지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