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이건희 회장을 넘어서 3대째 이어질 것인가. 2008년 7월 경영권 불법 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회장이 법정으로 가고 있다.한겨레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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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배력은 더욱더 공고화 2008년 출간된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는 삼성의 어두운 측면을 구성하는 불법·비리의 구조적 요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총수 일가가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경영권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것, 둘째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 셋째는 삼성그룹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의 경제정책과 법질서를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책이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세 가지 문제점 가운데 어느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 재벌의 사회적 지배력은 더욱더 공고화되었다. 그룹 전체가 무노조 경영의 희생자 김용철 변호사는 재정경제부·국세청·검찰·국정원·금융감독원은 물론 청와대까지 삼성을 위해 움직인다고 증언하고 자신이 직접 뇌물을 건넨 인사들의 명단과 전달 경위까지 밝히며 양심선언을 했다. 그러나 삼성 특검은 비자금 조성 과정과 사용 용도는 물론 뇌물 수수 혐의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지 않고 끝냄으로써 삼성 재벌의 불법·비리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삼성 쪽은 특검 결과 발표 이후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이재용 전무의 삼성전자 최고고객책임자(CCO) 사임,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는 경영 일선에 복귀해 각각 삼성전자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장악했고,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복원되었다. X파일을 공개했던 노회찬 의원은 유죄 선고로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뇌물 수수 의혹을 받은 인사들은 승승장구해 법무부·검찰청 등 핵심 국가 권력기관의 최고위직에 올랐다. 삼성은 변화하지 않았고, 삼성의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더 공고화되었으며, 삼성의 불법·비리 행위를 응징하고 바로잡아야 할 국가기구 담당자들은 도리어 삼성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국가의 규제 부재 속에서 삼성은 변화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삼성이 지독히도 변화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건희 회장은 20년 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지난 20년 동안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성장에 힘입어 국내 재계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세계시장 속에서도 확고한 시장 지위를 구축했다. 하지만 총수 일가의 지배·경영권 독점 세습과 함께 무노조 경영 원칙은 확고부동하다. 삼성은 새로운 기업 경영 전략으로 세계시장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했지만 정작 환골탈태를 요구했던 총수 일가의 전근대적 기업관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삼성이 국민 여론의 질타를 받을 때마다 내놓은 사과 성명과 경영 혁신의 약속들에서도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유린과 노동조합 결성 시도 및 노동조합 활동 탄압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집착은 총수 일가의 지배·경영권에 대한 집착만큼 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은 무노조 상황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철저한 일상적 감시와 강도 높은 탄압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과 노동조합 결성 의지를 반영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입사 2년 만에 백혈병이 발병해 2년 뒤 스물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의 부친이 “백혈병이 감기도 아니고, 한 공장에서 여러 명이 걸렸는데…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다보니 노동자들을 마구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만약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도 내 딸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라고 절규한 것은 삼성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잘 보여준다. 헌신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은 제게 범죄를 명령했습니다”라고 증언했듯이,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을 뽑아서 무노조 경영 등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와 아집을 관철하기 위해 범죄자로 만들어왔다.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유린하는 삼성 재벌의 노동통제 체제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탄압 주체들의 인간성까지 파괴한다는 점에서 삼성그룹 전체가 무노조 경영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 세계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이건희 회장을 ‘은둔의 제왕’(Hermit King)으로 규정한 것은 삼성 재벌의 어둡고 폐쇄적인 행태를 지칭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율적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삼성으로서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고 법질서 속에서 시장경쟁력을 추구하는 길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 조건과 사 쪽의 처우를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불만을 해소하고 자존감을 유발해 헌신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심리학의 실험 결과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며 상생하는 것만이 일제강점기 양조장에서 물려받은 무노조 경영의 음험한 이미지를 벗고 창의성과 혁신의 표상으로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삼성노동인권지킴이 공동준비위원장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후원 안내 : http://socialfunch.org/samsungnodonggo, 계좌번호 국민은행 822401-04-069048(예금주: 삼성노동인권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