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행히 우리는 라면 사재기를 할 필요조차 없이 할리우드도 보여주지 못한 전쟁 블록버스터 한편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다. ‘무한정의’로 명명된 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 부시는 뉴욕에서 흘린 피의 몇배는 더 돌려받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전범들의 신사에 당당히 참배한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듯이 조연을 자처하며 자위대를 파견하겠다고 설친다. ‘도라 도라 도라’를 외치며 황군의 진주만 재공습을 선언하는 결단에까지 못 미쳐서 아쉽지만, 일본이 보여준 아쉬움은 조연 경쟁에 나선 영국이 채워줄 모양이다. 그동안 먹여주고 월급주며 키워온, 없이 사는 나라 출신의 용병들을 파병하겠단다. 전쟁이라니까, 어떤 전쟁이나 다 그랬듯이,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과 여자와 노인들은 그들이 태어난 땅이 영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갈 것이다. 그렇게 죽인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피로 풀을 먹이면 구겨진 부시의 체면과 미국의 자존심이 빳빳하게 다려질까. 아무래도 아닐 듯싶다.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 습격을 테러가 아닌 ‘전쟁’으로 받아들인 부시의 해석능력은 의외의 탁월함이었다. 미국이 당한 습격은 확실히, 21세기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묵시록적 사건이었다. 힘의 균형을 잃은 세계를 누비며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벌였고, 수많은 주권국가들을 입맛대로 바꾸어 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수많은 생의 보금자리를 폐허로 만들어왔다. 자국에서는 피냄새 한번 풍기지 않고서 말이다. 이제 어떤 국가도 미국을 상대로 한 20세기적 형식의 전쟁을 벌이지 못한다. 미국의 정의가 자신들의 정의와 정반대라고 믿는 세력들은 이제 자신들의 피만 흘리게 되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전쟁을 미국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흘린 절반만큼의 피라도 미국이 흘리기를 원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전쟁의 방식이 어떠한 것인지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명백해졌다. 폭력을 사용하여 상대국가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간의 전투, 그것이 전쟁이다. 그러한 개념에서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해 어떠한 도발도 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결코 정당한 전쟁이라고 부를 수 없다. 힘없고 불쌍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삼은 부시의 비열한 공격행위는 인류에게, 무엇보다 미국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전쟁’을 말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살상전은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 습격사건을 미국이 앞장서서 가장 효과적인 21세기적 전쟁형식으로 승인하고 그 반복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인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이번 습격사건이 21세기적 전쟁형식으로 승인된다는 것은 앞으로 인구 500만명이 넘는 모든 도시는 습격의 대상이 되고, 상시적인 전쟁터로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전쟁 캠페인은 21세기의 비극적 전쟁 묵시록이다. 미국이 힘있는 국가일 뿐만 아니라 책임있는 국가라면 ‘전쟁’을 말하기 전에 6하 원칙에 따라 이번 사건의 전모를 먼저 밝혀야 한다. 미국의 편에 서지 않으면 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미국의 편에 정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힘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고 싶어하는 자가 사람이다. 방현석/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