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가 강제 노 역을 했던 고 류흥준씨의 유골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방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할린 한인 유골이 정 부 차원에서 봉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 김봉규
“내 이름은 리정애, 왜 이정애를 강요하나” 대한민국 국적은 혈통에 따라 부여된다. 그렇다면 조선적 재일동포도 대한민국 국적자일까. 1·2심과 달리 상고심에서는 이런 쟁점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1948년 제정된 국적법에는 ‘최초의 대한민국 국민’이 누구인지 규정돼 있지 않다. 윤지영 변호사는 “1948년 5월11일자 남조선과도정부 법률 제11호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따라 조선적 재일동포는 조선인”이라며 “해당 임시조례는 국적법 제정에 따라 효력을 잃고 국적법에 승계됐으므로, 조선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주장했다. 1996년 대법원은 이런 임시조례의 규정에 따라, 조선인 아버지를 둔 자는 조선 국적을 취득했다가 제헌헌법 공포와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보았다. 현실에서 조선적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적 재일동포인 리정애(38)씨는 2010년 한국 국적 남편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2011년 일본 친정에 들렀다 1년 넘게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오사카 총영사관이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다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리씨는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관련된 ‘신분증’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 국적자로 간주돼, 결혼이주민이 얻는 체류 비자 발급 대상도 아니다. “2010년 12월 법무부가 조선적 재일동포도 한국 국적자라는 검토 의견을 내, 한국에서 지내게 됐으나 아무 권리도 없는 상태”라며 “일본에 들어가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편함에도 그가 조선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어날 때부터 조선적이었다. 영사관에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해) ‘리정애’ 표기를 ‘이정애’로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은 내 정체성과 마찬가지다. 초등학교까지 일본 학교를 다니다가 뒤늦게 내 이름을 찾아 소중하게 생각한다.” [%%IMAGE2%%] 지난해 정영환 교수는 지구촌동포연대(KIN) 등 단체와 함께 러시아 사할린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한인들과 재일동포 문제가 결국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식민지 지배 이후, 어떤 한인들은 소련에, 어떤 한인들은 일본에 남게 됐을 뿐이다.”사할린 동포 2세 김숙희씨는 지난해 8월 법무부를 상대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확인해달라’는 국적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현재 그에겐 국적이 없다. 경상남도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됐다가 귀국하지 못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북위 50도 이하의 사할린을 손에 넣는다. 천연자원 개발을 위해 해방 때까지 4만3천여 명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이 땅에 들어왔다. 대다수는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 동원된 이들이었다. 김씨의 부모도 이들 중 일부였다. 전쟁이 끝나자 사할린은 소련 땅이 된다. 일본 정부는 1946년 소련과 협정을 맺어 자국 국민만을 귀환시켰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이렇게 버려졌다. 냉전 체제는 이들의 귀환길을 또 한 번 막아섰다. 사할린 한인 대다수는 남한 출신이었지만, 소련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소련은 무국적자를 일본이나 한국을 동경하는 위험분자로 간주해 차별했다. 김씨의 부모는 그럼에도, 소련(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말라는 뜻을 남기고 오래전 숨졌다. 윤지영 변호사는 “부모가 조선인이었다면 국적법 제정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김씨 역시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귀환권’ 사할린 ‘무국적자’는 수백 명의 소수로 알려져 있다. 대다수 한인이 무국적 상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75년가량 꼬일 대로 꼬인 사할린의 과거사 문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1989년 한·일 양국 적십자사로 구성된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공동사업체’를 통해 사할린 1세들의 친척 방문, 영주 귀국 등의 대책을 내놓는다. 1994년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됐다. 영주귀국 대상자는 동포 1세 및 배우자와 장애 자녀로 제한됐다. 고향에 가려면 자녀와 이산가족이 돼야 하는,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됐다. 자녀들과 헤어질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한 이들은 지원에서 배제돼 있다. 이런 이유로 사할린 현지 1세들에 대한 생활 지원 및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2~3세들에 대한 한국 정착 지원, 식민지 시기 강제 가입한 연금·보험금, 받지 못한 임금 등을 돌려받기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 등을 골자로 한 사할린 특별법 제정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 대표는 “사할린은 아직 해방을 맞지 못한 땅”이라고 했다. 국제인권법상 일제강점·분단으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겐 고국으로 돌아갈 ‘귀환권’이 존재한다. 독일은 통일 이후 민족적 근거에 기반해 옛 공산권에 거주하던 독일인에게도 국적을 주었다. 스페인은 내전과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해외로 이주한 스페인계 후손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역사기억법을 제정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일조선인 귀환권을 ‘고국권’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귀환권이 자신과 연관된 모든 나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라면, 고국권은 자신의 민족적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로 갈 수 있는 권리다. 조선 땅에서 떠난 한인들에겐 남북한이 동시에 고국이다. 이런 고국권의 실현 방식은 단순한 입국 보장부터 국적 부여까지 다양한 수준이 있을 수 있다. 이 교수는 “현행 재외동포법은 낮은 수준의 고국권을 제도화했다”고 평가하며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 영주권자인 재외국민과 외국 국적 동포만을 재외동포라 규정하고, 무국적 고려인이나 조선적 재일동포를 배제한 대목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영환 교수는 현재 대법원 특별3부의 선고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소송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안보 정국’인 한국에 입국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올해 초 선고가 예상됐으나, 11월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1·2심 결론이 달랐고, 흔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자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에 들어올 수 없기에, 소송 과정 동안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적이 없다. 대법관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식민유산과 분단 극복의 가늠자 될 재판” “조선적이란 법적 지위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분단이란 우리 민족의 고통스러운 근현대사의 상징이며 유산입니다. 일본 정부는 치안 정책의 대상으로서만 우리 민족을 바라보고, 해방 뒤에도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를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왔는데, 한국 정부가 취해왔던 재일조선인에 대한 자의적인 출입국 통제는 이런 일본 정부의 정책에 편승하는 것입니다.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비원입니다. 이번 조선적자의 여행증명서 재판이 식민지 유산과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지가 달린 중요한 재판이라는 인식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