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2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출연 배우들이 공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한겨레 탁기형
장 대표는 사실, 정보기술(IT)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다. 대학 졸업 뒤 ‘전공’을 살려 벤처 1세대가 됐다. 취직이 되지 않아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1990년 ‘나눔기술’을 창업했다. 지난해 6월까진 콘텐츠 제작 및 유통사인 캔들미디어 대표였다. 당시 그는 정치적 문제로 투자 난항을 겪고 있던 영화 <26년> 제작에 관여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회사 대표직을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회사를 그만둔 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미디어특보를 했다. “트라우마와 현재 모습까지 보여주고파” 연극 <해피투게더>를 무대에 올리면서 그는 몇 가지 실험을 할 계획이다. 연극무대 장면을 따로 촬영해 모바일 드라마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모바일 드라마는 내년 초쯤 완성될 예정이다. 연극과는 아예 다른 내용의 영화 제작팀도 꾸렸다. 사건을 알릴 수 있는 전시회도 기획 중이다. 연극임에도 홍보용 티저 영상을 만들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사건을 많이 알리고 싶다. 연극 공연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소스멀티유즈’(OSMU)를 하는 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시설 중심 자활 정책의 철저한 실패 사례이기도 하다.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연극 광고를 게재하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장 대표를 중심으로 한 연극 제작과는 별개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도 시작됐다. 작품은 내년 하반기쯤 완성될 예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다큐멘터리 과정에 재학 중인 전상진(30) 감독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은, 역시나 전규찬 교수였다. 책 출간뿐 아니라 ‘영상 기록’도 함께 진행해보자는 의미였다. 요즘 전 감독은 세상 밖으로 어렵게 나온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사건인데도, 피해자들의 삶에선 그때 기억이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더라. 형제복지원이 1987년에 폐쇄됐을 때 3천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는데 아무도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현재를 담고 싶다. 박인근 원장이 다시 복지사업을 할 수 있게끔 한 정치세력은 승승장구했는데, 이들의 현재 또한 보여주고 싶다.” 아직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촬영 진행엔 어려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자료 확보가 쉽지 않다. 1987년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 기록은 현재 울산지방검찰청에 보존돼 있다. 지난 6월 피해자 한종선씨는 검찰에 사건기록 일체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비공개 결정을 통보받았다. 대검찰청 예규 ‘사건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 등에 따라, 청구인 본인이 제출한 진술 서류만 열람·등사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는 돌고 돌아 전 감독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은 조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사회복지시설 등 국가가 민간에 공공서비스를 위탁한 뒤 벌어지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필 ‘사학 비리’로 유명했던 상문고와 세종대를 졸업했다. 2002년 대학 입학 뒤 2011년 졸업할 때까지 비리재단 이사장 퇴출운동을 벌여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 올해 초 독립 다큐멘터리 <주님의 학교>를 완성하기도 했다.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감사에서 공금 횡령 등 비리가 드러나 학교를 떠난 주명건 옛 재단 이사장은, 지난 7월 대양학원 이사로 선임돼 9년 만에 세종대로 복귀했다. 법인명만 바뀐 채 지금까지 형제복지원이 존재하는 현실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는, 이렇게 돌고 돌고 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