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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화류(平和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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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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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창광 기자)
“이제까지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라를 한번도 침입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조상이 싫다”로 시작되는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는 한국인의 호전성을 부추기면서 해외시장 개척을 향한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요즘같이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복’의 은유는 긴장감과 섬뜩함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전쟁’을 상상할 수 없어야 한다

수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미국의 테러사건은 모든 사람을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보복 전쟁’을 선포했고, 한국 정부는 파병을 포함해서 미국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이 당한 어처구니없는 피해에 대해 미국과 전세계는 ‘정의’의 이름을 걸고 응당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응당한 조치의 유일한 방식이 ‘전쟁’일 필요는 없다. 이제까지 인류가 상호 공존의 논리하에 만들어놓은 유엔의 조약이나 국제법에 근거한 적절한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전쟁은 단순히 누가 무슨 무기를 어떻게 잘 사용하여 승리했느냐에 대한 ‘승리자’의 잔치가 아니다. 전쟁은 전쟁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을 기록하고 치유하는 모든 역사적 행위들을 수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감당해낼 수 없는 그 막중한 윤리적 책임감 때문에 ‘전쟁’을 상상할 수 없어야 한다. 전쟁이 쉽게 상상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이유없는 죽음과 피해들에 관해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배워야 한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과 죽음은 주로 이동성이 없고 무기력한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로부터 온다. 일상시에도 사회적 약자인 이들은 ‘호전성’이 칭송되는 위험한 사회에서는 더 많은 차별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적 인권은 하찮은 것으로 폐기 처분되고, 이들은 ‘어쩔 수 없는 피해자’란 이름으로 역사 속에서 지워진다.

지난 중동의 걸프전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단지 등의 미디어에 재현된 전쟁의 이미지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 이미지는 미국의 무차별한 미사일 공격을 ‘불꽃놀이’의 차원으로 낭만화시켰고, 신기술에 대한 근거없는 ‘칭송’을 만들어냈으며,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침공으로부터 ‘해방’시킨 미국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이 전쟁을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한 ‘위생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쿠웨이트에 상륙한 지상군이 자행했던 수많은 강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역사가 ‘신화’로 탈바꿈되기 좋은 미디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마 진실을 아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독재자들에 의한 성적 착취와 굶주림으로 삶의 경건성을 상실해버린 여성과 어린이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겐 또 하나의 강력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인류가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 무엇일까?

이 집단적 무감각증에 균열을

침착함과 긴박함으로 전세계의 여성과 민주 시민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의 무력행사를 허용하는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바버라 리 하원위원, NOW를 비롯한 미국 여성단체들이 벌이는 반전 시위 등은 용기있고 겸손한 위안이며 적극적인 행동이다. 우리나라 여성들도 ‘평화를 촉구하는 여성단체들의 성명서’나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을 통해 전세계 여성들의 반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정부의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를 통해, 그리고 아프간 여성들의 현실과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인종차별의 상황들을 고발하면서 ‘평화류’(平和流)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반전 운동은 TV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다루어지지 않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월감과 객기, 그리고 삶에 대한 무기력이 폭력을 찬양하고, 죽음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러한 여성들의 움직임은 우리의 집단적 무감각증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킨다. 이슬람 여성운동단체의 말처럼 ‘아프간의 굶주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미국인의 슬픔을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인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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