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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산과 마을을 쓸어버린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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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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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등의 강원도 횡성군 피해현장 조사보고서… 제대로 복구 안 하면 또 무너진다

사진/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의 민가가 송전탑으로 인한 산사태로 무너져 내렸다.
지난 여름 강원도 횡성군 일대에 내린 집중호우로 수십곳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7월23일 발생한 이 산사태로 지역주민은 생활터전을 잃고 지방자치단체 또한 엄청난 재산손실을 입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재해도 결국 천재가 아닌 인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지역은 주로 청일면, 갑천면, 공근면 등 횡성군을 관통하는 765㎸ 송전선 아래 지역들이다. 가평∼태백을 연결하는 대형 송전철탑의 진입로와 기반시설로부터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처음 산사태로 수해가 발생하자 한전은 현장을 다녀갔으나 송전탑지역 산사태의 실태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횡성군과 피해주민, 녹색연합 등은 최근 산사태 실태와 피해지역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실시했다. 약 50일 동안 진행된 현장조사는 송전탑이 들어선 산지의 능선과 골짜기를 가리지 않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산사태의 실상은 애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했다.


산사태는 평지나 경사가 완만한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생했다. 횡성군을 지나는 765㎸ 송전선로의 송전탑 73기(송전탑번호 176∼248번) 가운데 36기 주변의 82곳이다. 최초 발생지점은 너비가 4∼5m에서 20∼30m까지였고, 흙과 돌, 바위 등이 쓸려내려간 길이는 200m에서 1.5∼2km까지로, 대규모였다. 산이 파헤쳐진 깊이는 1∼2m에서 심지어 10m가 넘는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산사태는 송전탑 건설을 위해 개설한 작업도로에서 최초로 발생하여 계곡으로 쓸려내려가 하류지역의 마을까지 덮쳤다. 계곡 하류는 상류지역에서 발생한 산사태 유실물과 계곡 침식물들이 합쳐져 침식 폭이 20∼30여m에 이르렀다. 수천t의 유실물들이 쓸려가고, 일부는 가옥이나 농경지 등을 뒤덮어 큰 피해를 일으켰다.

사진/ 765kV 송전탑 진입로의 콘크리트 노면은 지진이 발생한 현장처럼 일그러져 마치 빈대떡을 엎어놓은 모습같다.
작업도로는 계곡을 따라 개설한 곳이 많은데, 작업도로 진입부분은 도로와 계곡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켰다. 콘크리트 도로가 끊어지거나 포개져서 빈대떡이나 시루떡처럼 얹힌 경우도 많았다. 마치 지진 발생지역의 도로 같았다. 특히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나온 폐기물과 벌채된 나무 등을 계곡 주변에 묻어두거나 그대로 방치하여 산사태의 규모를 더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산사태가 이렇게 80곳이 넘는 곳에서 대량으로 터진 것은 애초에 위치나 입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송전탑을 세우기 부적합한 곳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데서 1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협곡에다 급한 경사를 이루는 지형인데도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무리한 진입로를 내다보니 이런 재해를 낳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다.

충남대 이준우 교수(산림자원학)는 “대형 송전탑과 같은 산림형질을 과도하게 변경시키는 시설을 설치할 경우 무엇보다 위치선정에 신중해야 하고, 산지에 토목공사를 할 경우에도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시공이 아무리 견실해도 입지가 적정하지 않으면 재해에 무방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송전탑 건설이 산사태의 구조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한겨레21>의 사전 경고도 번번이 무시

노선선정과 함께 지적되는 산사태의 또다른 원인은 부실공사다. 한전은 765㎸ 송전탑 공사를 동부건설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에 맡겼다. 하지만 이들 대기업은 일반토목은 잘했을지 몰라도 산림토목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시공능력도 미숙했다. 그래서 공사과정에서도 부실공사로 인한 산림훼손과 산사태가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사진/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 일대의 산사태 현장. 해발 700m의 송전탑 진입로에서 산사태가 시작되었다. 사면 전체가 무너져 내려 1km 이상 골짜기를 쓸고 간 뒤 마을을 덮쳤다.
공사중이던 지난 99년에도 이번 피해지역 중 하나인 청일면 신대리 일대에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부실시공이었다. 당시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신대리뿐 아니라 765㎸ 송전탑 전체의 산림훼손과 실태까지 정밀하게 조사하여 산사태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했다. <한겨레21>도 지난 99년 256호와 266호 등을 통해 이 문제를 두 차례나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전과 공사를 담당한 대기업들은 이런 지적들을 무시해 이처럼 엄청난 사태를 낳고 말았다.

늘 그랬듯이, 한전은 이번 재해도 비가 많이 와서 발생한 ‘인재가 아닌 천재’로 몰아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역주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도 한마디 없었다. 더욱이 산사태 현장에 대한 조사도 미적거렸다. 이런 한전의 태도에 대해 피해지역 주민들은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이런 수해와 산사태는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장마와 태풍으로 이보다 더 큰비가 왔을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청일면 일대의 대부분의 계곡과 개울들은 비올 때만 흙물이지 비가 그치고 나면 바로 맑은 물로 바뀐다.”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의 피해주민인 이도하씨는 “그런데도 한전이 천재 운운하는 것은 정말 뻔뻔스러운 모습”이라며 “주민들이 일찍 대피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며 인명피해도 여럿 있었을 것”라고 한전을 성토했다.

횡성군 송전탑지역의 산사태는 원인규명을 통한 피해보상과 함께 복구에도 많은 예산과 품이 요구되고 있다. 산사태가 난 뒤 정부는 산림청을 통해 산림지역의 피해실태를 조사했다. 강원도도 나머지 765㎸ 송전탑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울진-태백간의 345㎸ 송전탑에 대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많은 곳에서 부실공사의 증거와 산사태 발생가능성을 확인했다. 강원도는 즉시 위험한 곳에 보수공사를 실시할 것을 한전에 통보했다.

“한전만의 복구공사는 믿을 수 없다”

사진/ 한전이 그나마 했다는 송전탑지역 산림복구 현장. 마구잡이로 식생을 복원해서 대표적인 외래식물인 미국자리공이 곳곳에 확산돼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p>
이번 산사태를 계기로 산림청은 산림지역의 송전탑 건설을 허가할 때 엄격한 업무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다. 산림청 산지관리과 김남균 과장은 “송전탑은 국가 기간산업과 관련한 시설이어서 산림지역 안의 설치 허가는 불가피하지만 지나친 산림훼손과 산사태 등 재해 위험성을 안고 있는 노선이나 시설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앞으로 입지선정, 설계와 시공, 공사감독 및 준공, 사후관리 등 전일적인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요건에 맞지 않으며 노선변경이나 허가를 내주지 않을 방침이다.

산림청의 대책과 함께 이번 산사태지역에 대한 근원적인 복구를 위해 정부, 학계, 주민, 시민단체 등이 망라된 항구복구자문단 등이 꾸려졌다. 이 자문단은 복구공사가 설계부터 시공, 감리, 완공 등 전반적인 공정이 투명하고 견실하게 추진되는가를 점검하고 관찰하여 제대로 된 복구공사를 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되었다. 복구자문단이 결성된 배경에는 ‘한전만의 복구공사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바탕이 되었다.

주민들도 피해보상 못지않게 제대로 된 복구를 호소하고 있다. 횡선군의회 송전탑산사태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재성 군의원은 “제대로 복구공사를 하지 않으면 또 무너질 것은 뻔한 일”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주민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지금도 송전탑 진입로 곳곳에 균열이 나 있는 등 큰비만 오면 바로 무너질 곳이 한두곳이 아니다”라며 “일부 주민들은 이주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를 독점공급하며 국가 기간에너지의 대동맥이라고 자부해온 한전. 하지만 강원도에서 송전탑을 건설하고 유지관리하면서 보인 모습은 재해발생의 대동맥이었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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