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대장은 “새로운 시공간이 주는 매력 때문에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시 산을 찾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일까. 젊은 시절 그의 히말라야 등 반은 매우 도전적이었다. 1993년에 오른 그 레이트 트랑고타워(6283m)는 카라코람 히 말라야를 대표하는 대암벽이었고, 1996년 등반한 가셔브룸4봉(7925m) 동벽은 세계 최고난도로 꼽히는 거벽이었다. 특히 트랑고 타워는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 다. 베이스캠프에서 사흘 거리인 대암벽 아 래 올려놓은 20일치 식량과 장비가 눈사태 에 쓸려 사라지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벽 을 오르던 닷새째 날에는 80여m를 추락해 갈비뼈 2개가 부러져 죽다 살아났다. 식량 에 연료까지 떨어져 마실 물을 못 만들고, 그 바람에 탈수 현상이 일어나면서 판단력까지 흐려졌다. 그렇게 등반을 시작한 지 14일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거대한 설산과 끝없는 빙하가 그가 살아 있음을 말해주었다. 사실 그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대자연만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의 오지 발타르 빙하의 바투라2봉(7762m)을 탐사하던 2004년 7월에는 권총강도를 만나기도 했다. “답사를 하고 사진을 다 찍고 나오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는 거예요. 순간 몸이 얼어붙었죠. 사내 3명이 총을 겨누더군요. 꼼짝없이 그들에게 억류됐죠.” 아랫마을에서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을 죽이고 숲 속으로 도망친 자들이었다. 가방과 몸을 뒤져 현금 100달러와 카메라를 챙긴 그들은, “코리안이 왜 이렇게 돈이 없냐”며 김 대장을 마구 구타했다. 혹시 몰라 여비를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김 대장은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 싶었다. 다만 한 달 넘게 히말라야 곳곳을 촬영한 필름만은 가져가지 않기 바랐다. 기대는 무너졌다. “3명이 있는데 본능적으로 누가 그 전에 2명을 죽였는지 알겠더라고요. 그자가 계속 저를 괴롭혔거든요. 차라리 빨리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죽기 전에 마지막 담배 하나만 피우게 해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만약 살아나면 너희에게 똑같이 복수해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치겠더라고요.” 이윽고 무리 가운데 가장 악랄하게 생긴 그자가 총을 쏘았다. 제발,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눈을 떠보니 다행히 살아 있었다. 그자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한번 살려준 거야, 이번에는 진짜야라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하는데 5분 동안 엎드려 있으라는 말로 들렸어요. 살려주고 간 거죠. 그들이 가고 난 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뛰다시피 밤새 산을 내려왔어요. 한 달 뒤 그들이 검거됐다는 소식에 경찰서를 찾았어요. 다행히 필름은 되찾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따귀를 한 대씩 때리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까 그러지 못하겠어서 그냥 한 명씩 안아줬어요.” 한 달 뒤 재판이 열렸다. 판사가 이슬람법에 따라 이들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들을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이 사람들이 날 살려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는 국경 근처에 있다가 국경수비대에 끌려가 나중에 풀려나기도 했는걸요. (웃음)” 자신이 겪는 고통은 이렇게 웃으며 회고할 수 있는 그도 동료를 잃는 슬픔만은 이겨낼 수가 없어 보였다. 이번 등반에서 고산 증세로 숨진 서성호 대원에 대한 질문에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서성호 대원은 그와 고락을 같이한 친구였다. 모퉁이를 돌면 어떤 길이 펼쳐질까 이번 등반에서 내려온 그는 이틀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정상에서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력으로 참고 견뎠다지만 몸은 이미 못 견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면서도 그는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빙하의 끝은 어디일까,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모퉁이를 돌면 어떤 길이 펼쳐질까 늘 궁금해요. 새로운 시공간이 주는 매력이 다시 산을 찾게 하는 힘이죠. 이번 하산길에 못 보던 봉우리를 봤어요.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다음엔 저길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걱정하는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요. (웃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미지의 고봉이 벌써 그를 부르고 있었다. 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