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이덴티티

377
등록 : 2001-09-19 00:00 수정 :

크게 작게

재일조선인 2세인 필자는 5개월 동안 영국 런던에서 머문 뒤 9월1일 서울에 도착했다. 한 학기 동안 서울대 국제지역원에서 한일관계사 강의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겨울을 지내게 된다.

런던 체류중에 유럽 각국과 미국, 캐나다 등에서 적지 않은 동포들을 만났다.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이민송출국인데, 실제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한국인들이 살고 있고 그 수는 약 56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1세만이 아니라 2세 등도 식생활관습 등의 생활문화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조국의 그것들을 이어나가고 있는 듯하다. 정주국의 국적이나 시민권을 취득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 아이덴티티(정체성) 양상은 좋든 나쁘든 결코 조국과 단절되지 않고 있다.

아이덴티티를 향한 욕망

재일조선인의 경우 1세 및 그 자손으로 지금도 여전히 일본 국적을 취하지 않은 ‘특별 영주자’는 약 51만명에 이른다. 1세 시대는 사실상 이미 끝나고 이제 2세, 3세가 중심이 됐으며 4세, 5세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각지를 돌아보면 재일조선인과 해방 뒤 해외에 나간 한국인 사이에는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에 많은 유사점이 있어 ‘역시 같은 민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이제 지구화시대를 맞고 있고 세계는 확실히 좁아지고 있다. 굳이 민족이나 국가, 국민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이 여전히 민족이나 국가, 국민이라는 데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누구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역사적 존재가 돼 하나의(때로는 몇개의) 민족이나 국가에 속하게 된다. 한국을 뿌리로 해서 태어난 사람은 역시 그 민족, 국가, 국민 속에서, 또는 그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단 그 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세계 각지의 동포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 거주자는 재일한국인이라고도 하지만 역사적·포괄적으로는 역시 ‘재일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중국 동포는 ‘조선족’이고 러시아 동포는 ‘고려인’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다른 호칭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술적으로는 역시 그런 호칭이 무난할 것이다. 해방 뒤 건너간 미국이나 유럽의 동포는 의당 ‘한국인’으로 불리게 된다.

세계 각지에 사는 한국인은 여러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체류자격 등 법적 지위나 사회적 위치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좋든 싫든 조국에 적지 않은 눈길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 세계 곳곳의 동포들은 재일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출신을 분명히 밝히면서 정주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국과 연결되는 민족적인 것을 계속 유지하거나 남겨둠으로써 ‘안심감’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통용되는 ‘민족적 공동체’의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을 알고 싶다면 천황주의·가부장주의를 기축으로 한 ‘교육칙어’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들 한다. 중국인은 민족·민권·민생을 강조한 쑨원의 <삼민주의>를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교육칙어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를 떠받쳐온 이데올로기의 집중적 표현이며 동시에 지금 또다시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보이는 일본의 우익적 체질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척추다. 또 <삼민주의>는 역사의 거친 파도 속에서 대만 국민당이나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계승돼온 민주주의혁명 사상이다.

근현대사와 사상의 압살

이렇게 보면 당연히, 한국인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읽으면 될까 하는 문제가 나온다. 한국 근·현대 속의 한국인 형성, 즉 민족이나 국민개념의 이상이라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사상 또는 이념은 과연 있는가, 없는가? 물론 그것은 국민통합이라는 국가권력의 목표 설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많은 동포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이어갈 수 있는 사상의 영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론만 말한다면, 그것이 없는 게 한국 근·현대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그리고 남북분단의 비극을 겪고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근·현대를 살아남고 미래를 열어갈 사상 또는 이념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거나 등한히 해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해방 직후 좌우합작을 추진한 여운형의 사상이 그런 가능성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외세에 의해 압살당한 채 세월을 보내온 것이 한국의 사상사, 정신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남북의 평화적 통일만이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도 포섭할 만한 민족공동체 사상을 다듬어나갈 필요가 절실히 있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사상사


이번호부터 논단 필진이 바뀝니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사상사)와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소설가 방현석씨, 문화평론가 김진송씨 등이 돌아가며 집필하게 됩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