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지구화시대를 맞고 있고 세계는 확실히 좁아지고 있다. 굳이 민족이나 국가, 국민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이 여전히 민족이나 국가, 국민이라는 데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누구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역사적 존재가 돼 하나의(때로는 몇개의) 민족이나 국가에 속하게 된다. 한국을 뿌리로 해서 태어난 사람은 역시 그 민족, 국가, 국민 속에서, 또는 그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단 그 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세계 각지의 동포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일본 거주자는 재일한국인이라고도 하지만 역사적·포괄적으로는 역시 ‘재일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중국 동포는 ‘조선족’이고 러시아 동포는 ‘고려인’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다른 호칭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술적으로는 역시 그런 호칭이 무난할 것이다. 해방 뒤 건너간 미국이나 유럽의 동포는 의당 ‘한국인’으로 불리게 된다. 세계 각지에 사는 한국인은 여러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체류자격 등 법적 지위나 사회적 위치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좋든 싫든 조국에 적지 않은 눈길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 세계 곳곳의 동포들은 재일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출신을 분명히 밝히면서 정주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국과 연결되는 민족적인 것을 계속 유지하거나 남겨둠으로써 ‘안심감’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통용되는 ‘민족적 공동체’의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인을 알고 싶다면 천황주의·가부장주의를 기축으로 한 ‘교육칙어’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들 한다. 중국인은 민족·민권·민생을 강조한 쑨원의 <삼민주의>를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교육칙어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를 떠받쳐온 이데올로기의 집중적 표현이며 동시에 지금 또다시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보이는 일본의 우익적 체질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척추다. 또 <삼민주의>는 역사의 거친 파도 속에서 대만 국민당이나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계승돼온 민주주의혁명 사상이다. 근현대사와 사상의 압살 이렇게 보면 당연히, 한국인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읽으면 될까 하는 문제가 나온다. 한국 근·현대 속의 한국인 형성, 즉 민족이나 국민개념의 이상이라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사상 또는 이념은 과연 있는가, 없는가? 물론 그것은 국민통합이라는 국가권력의 목표 설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많은 동포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이어갈 수 있는 사상의 영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론만 말한다면, 그것이 없는 게 한국 근·현대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그리고 남북분단의 비극을 겪고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근·현대를 살아남고 미래를 열어갈 사상 또는 이념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거나 등한히 해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해방 직후 좌우합작을 추진한 여운형의 사상이 그런 가능성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외세에 의해 압살당한 채 세월을 보내온 것이 한국의 사상사, 정신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한국은 남북의 평화적 통일만이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도 포섭할 만한 민족공동체 사상을 다듬어나갈 필요가 절실히 있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사상사
이번호부터 논단 필진이 바뀝니다.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 교수(사상사)와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소설가 방현석씨, 문화평론가 김진송씨 등이 돌아가며 집필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