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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몸이 아프니까 남들도 아프겠다”

주거취약계층 대상인 ‘민들레예술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 김두천씨
11살 때 상경, 고생 끝에 만난 아내와 사별, 자살 기도까지 시가 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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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5 17:31 수정 : 2013-06-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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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공모전이 있고 그만큼의 문학상이 있다. 책과 문학이 외면받고 있다는 요즘 시 대에 오히려 문학상은 넘쳐나고 있다. 그리 고 또 하나의 문학상이 추가됐다. 그 성격은 앞서의 경우와 다르다. 노숙, 쪽방, 비닐하우 스 등에 기거하는 주거취약계층의 예술적 가능성을 일반 시민과 함께 나누려는 ‘민들 레예술문학상’이다. 수소문 끝에 지난해 처 음 시행된 공모전에서 시 부문 우수상을 받 은 김두천(59)씨를 만날 수 있었다.

“상금이 주택 보증금이라 서운”

서울역 부근의 동자동, 밝은 인상의 두천 씨를 따라 한참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간다. 흔히 ‘쪽방’이라고 불리는 방에 도착하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 이는 것은 많은 약병이었다.

“혈압, 당뇨, 전립선, 위암 수술 2번, 간경 화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해요. 이제 약 먹는 일밖에 안 남았지요.”

두천씨는 방에 자리를 잡자 서울역쪽방상 담소에서 진행되는 노숙자 대상 문학 교육에 서 썼던 시들을 보여줬다. ‘그리운 그 사람’과 ‘내 마음속의 그리움’이란 제목이 눈에 띈다. “시를 적은 노트가 더 있는데 이사 준비를 하느라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우 수상 상금으로 주최 쪽은 임대주택의 보증 금 50만원과 보금자리를 마련해줬고 주말에 이사할 예정이란다. “집도 좋고 월세도 더 싸 지만, 거기(신월동)로 이사하면 어떻게 생활 할지 걱정이에요. 그래도 여기 있으면 아는 사람도 많고 밥이나 반찬도 얻어먹을 수 있 는데….”

언제 이 쪽방촌에 들어왔는지 물어보자 짧은 한숨을 내쉰다. “제가 2007년 10월에 4호선 금정역에서 열차에 뛰어들었어요. 죽 으려고, 세상이 힘들어서. 근데 죽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끌려갔어요. 20일쯤 있었는데 거기 원장님이 진단서를 줄 테니 동사무소에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죠.”

그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렵게 여 기 동자동 쪽방촌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위암이 발견돼 수술을 해야 한다 고 했다.

“그전엔 약국도 안 가봤어요. 그런데 갑자 기 약을 먹기 시작하니까 사람이 기운이 없 어요. 방에 혼자 있다보니 우울증이 오더라 고요.” 두천씨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 동 네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말이 좋아 봉사활동이지, 사실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에요. 가만있으면 자꾸 우울해지니까 뭐라 도 해야겠다 싶어 거동을 못하는 노인들 병 원에도 데려가고, 사무소에 후원이 들어오 면 집집마다 나눠주고, 점심을 나눠주는 봉 사는 매일 하고 있는데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못했어요.”


지난해 민들레예술문학상 주최쪽은 한 달간 시인과 소설가들의 재능기부로 사전 문 학특강을 실시했다. 한 시인은 오히려 가르 치는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는 소 감을 전하기도 했다. 특강을 받을 때 어떠했 는지 물었다. “글을 쓴다고 생각해본 적 없 어요. 처음에는 열 몇 명이 모였는데 전부 빵 하나도 안 준다고 가버렸어요. 나까지 3명이 남았는데 끝까지 남았어요. 저는 초등학교 도 못 나왔어요. 그래서 받침도 다 틀려요. 작가분이 고쳐주기도 했는데 나중에 공모에 저만 됐더라고요. 전국에서 500명인가 지원 했다는데 어쩌다보니 됐어요. 상금 50만원 을 준다고 해서 내심 좋았는데 현금이 아니 라 임대주택 보증금이라 해서 솔직히 조금 그랬어요. (웃음)”

“나보다 잘난 사람만 있으면 오죽 좋아요. 근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많거든요. 이런 사람도 보듬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해요.” 지난 6월11일 오후 서울 동자동 자신의 쪽방에서 김두천씨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가장 괴로운 시간 돼

우수상을 받은 시의 제목은 ‘진철이’다. “진철이가 갔단다/ 집 없는 진철이가 갔단다 어딘지 몰라도 갔단다/ 공원 맞은편 쓰레기통 옆에 허름한 텐트를 쳐놓고 살다/ 영영 저 세상으로 갔단다/ 두 겨울을 한뎃잠 자더니/ 마흔 갓 넘은 젊디젊은 나이에 숨을 놓았단다/ 여비도 없을 텐데 어떻게 갔을까/ 간경화에 암이 번졌는데 거기다 대고/ 날마다 술을 퍼붓던 진철이가 갔단다/ 진철이가 갔는데 왜 이다지도 내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까/ 어저께는 우리 쪽방 사람들끼리 모여서/ 돈 몇천원 몇만원 호주머니 털어서 상을 차려주었다/ 응곤이 형님, 만원만 빌려주씨요,/ 손에 만원을 거머쥐고 진철이 영전에 절을 하고 지폐를 놓았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잘 가소/ 저 세상에서는 술 먹지 말고 잘 가소/ 젊은이들이 자꾸 떠난다/ 올겨울엔 또 누가 갈까/ 술 한 잔 돌고 나니 눈이 발개졌다/ 하아,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단 말인가”(‘진철이’ 전문)

생생한 슬픔과 삶이 그려지는 이 시를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이 사람을 잘 아는 건 아닌데 내 방에서 몇 번 재우기도 했어요. 시처럼 저희끼리 장례를 치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보니 잠이 안 와요. 그래서 노트에다 몇 글자 끼적거려봤어요. 우연히 그게 생각나서 썼는데 얼마 있다 보니 당선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기성 시인의 시보다 좋다고 하자 “사실 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눈도 잘 안 보이고 팔도 아파요”라고 말하며 슬쩍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신산하고 고단하던 그의 인생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남 곡성에서 11살 때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구두닦이부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거쳐 그만큼의 고생과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길바닥에서 하는 일은 다 해봤어요. 남한테 안 지려고 하다보니 교도소도 몇 번 들락거렸죠. 세상을 살면서 아직 나이는 젊다고 생각하는데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봐서 이제 내 풀에 내가 지쳤어요.”

이런 그에게도 행복한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1987년에 안사람을 만났어요. 그때 구로동 삼성전자에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같이 생활을 하다 조그만 식당, 갈빗집을 차렸어요. 그런데 생활이 좀 살 만하니까 97년에 사별했어요. 몸이 안 좋아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가장 괴로운 시간으로 금세 바뀌었다.

“그때 돈을 2억원이나 모았는데 안식구를 잃고 나서 그 충격으로 정신 못 차리고 방황하고 동업하다가 다 날리고 그러다 경기도 군포에서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금정역에 서 있는데 세상이 다 싫더라고. 순간적으로 열차에 뛰어들었지만 그게 시발점이 돼 지금 여기에 있어요.”

한참의 침묵이 이어졌다. 체념한 듯,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밝은 얼굴과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욕심은 없어요. 이게 주어진 운명이니까. 바라는 건 없어요. 내가 이렇게 약을 먹어가지고 오래 살려고 하겠어요. 사는 동안에 누구한테 멸시는 안 당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내 몸이 아프니까 남들도 아프겠다고 생각이 들고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고….”

따뜻한 위로 전해주는 한 끼 밥처럼

긴 시간, 어쩌면 짧은 시간의 이야기 끝에 두천씨는 마치 시와 같은 말을 전해줬다. “내 인생을 내가 자유롭게 못 사는 게 인생이에요. 왜 그러냐. 주위에서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하니까, 그게 사회니까. 나보다 잘난 사람만 있으면 오죽 좋아요. 근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많거든요. 이런 사람도 보듬어주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배웅을 나온 두천씨는 마주치는 동자동 쪽방촌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온기를 전했다. 필자에게도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그를 보며 시라는 것이, 문학이란 것이 계속해서 그에게 한 끼 밥처럼 따뜻한 위로와 온기를 전해주었으면 한다.

글 윤성훈 제4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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