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문사건의 피해자 중 2명이 출소 뒤 또다시 절도 범죄를 저질러 구속됐다는 기사가 지난해 이맘때 언론에 보도됐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그 고문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해 1인당 수천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배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만일 국가가 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지 않았다면 그 고문사건의 피해자들은 아마 다시 수감된 감옥에서 고문 피해로 인한 배상금을 영치금으로 수령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구성된 수사기록
변호사 2년차, 중대한 법익 침해는 물론이요 조그마한(?) 위법과 절차 위반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던 초년병에게 퇴로가 없는 사건 하나가 배당됐다. 소매치기 범죄로 복역하다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피고인의 절도죄 사건이었다. 그의 혐의는 서울 강남 일대 고급 아파트의 창으로 침입해 귀금속을 훔쳐냈다는 것이었다. 빈집을 확인하는 건 참으로 간단했는데 초인종을 눌러보거나 창문에 작은 돌을 던져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모두 5건이었는데 각각 다른 3일간 범행을 한 것으로 기소됐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모두 그 전 절도죄로 복역하다가 만기 출소한 이후의 범행이었다. 따라서 3년의 누범 기간에 해당돼 법정형의 장기의 2배까지 가중된 범위 내에서 처벌을 받아야 했고, 형 종료 뒤 3년 이내에 행한 범죄로 집행유예 결격사유에 해당할 뿐 아니라 정황상 현실적으로 어떠한 정상참작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예상대로 수사기록상 피고인은 경찰에서 모든 공소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자백을 받고 일일이 피해자의 집에 데려가 현장검증까지 했다. 피고인에게 각 피해자의 집에서 절취한 물품을 물어 확인한 뒤 피해자와 대면까지 시켰다. 피해자들에게는 진술조서를 받았고 피해자들이 절취당했다고 신고한 물품이자 피고인이 절취했다고 자백한 물품들의 목록을 증거목록으로 첨부했다. 경찰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는 3일간의 범행에 맞춰 3회 작성됐다. 검찰 송치 뒤에는 송치 당일 1회의 피의자신문에서 경찰에서의 진술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자백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 정도면 수사기록은 완벽하게 구성된 것이었기에 ‘피고인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족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이른바 전관을 찾아가야 할 사건이 잘못 온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부터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대면에서 뜻밖에도 피고인은 그러한 범행을 한 사실이 전혀 없고 경찰의 강압에 의해 모두 허위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고인의 소매치기 전력이나 누범 기간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피고인의 주장을 무턱대고 믿기도 어려웠고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솔직하게 물었더니, 피고인은 빈집털이 기술(?)을 배워 출소 뒤 여러 차례 절도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자백한 5건은 절대로 자신이 한 것이 아니며 경찰이 지목해준 것을 그대로 인정했을 뿐이고 첫날 강압 행위에 의해 1건을 허위 자백한 뒤 나머지 4건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백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피고인의 신체에는 강압 행위의 증거라 할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절도 행위를 저지른 건 맞는데
사무실로 돌아와 고민했다. 피고인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관성(?)에 기댄 수사기관이 밝혀내지 못했을 뿐 다른 절도 범행을 저지른 건 맞는데 기소된 사실에 대해 무죄 변론을 하는 게 옳은지, 무죄 변론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입증해나갈지 선량한 시민의 법감정과 변호사의 의무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며 헤맸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만들지 않는다.’ 결국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문제가 아직 실재하는구나 새삼 깨달으며 ‘적법절차’로 정신무장을 하고 변론을 준비했다.
먼저 피고인이 검거 당일 야간에 당했다는 강압 행위부터 입증코자 했으나 당시 같은 유치장에 있던 재소자가 ‘피고인이 야간에 조사를 받고 들어왔다’는 취지로 한 증언 이외에는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제1회 조서에 대해서는 검거 당일 야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었음에 주력했다. 제2회 조서에 자백한 3건의 범행과 제3회 조서의 1건의 범행에 대해서는 알리바이 입증에 주력했다. 피고인이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간 사실을 그 친구 어머니의 증언과 피고인이 사용한 주유카드 내역 조회로 입증하고, 제3회 조서 기재 범행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친구들과 함께 갔다는 나이트클럽의 웨이터까지 증언을 들었다. 어눌했지만 확신에 찬 증언을 해준 웨이터는 뒤에 피고인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쪽은 공소사실의 피해자들과 피고인을 조사한 강력반 형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특히 강력반 형사는 피고인의 친구를 통한 첩보 입수와 피고인의 전력, 출소 뒤 단기간에 피고인이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승용차를 이용한 사실 등을 들어 공소사실은 물론 강남 지역에서 발생한 빈집털이 중 상당수를 범행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증언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다보니 구속 기간 연장, 재연장에도 불구하고 그 만료시까지 1심을 마치지 못했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어 내심 무죄를 확신했으나, 결과는 공소사실 모두 유죄였다. 공판 절차 마지막에 이루어진 담당 형사의 증언이 큰 효과를 발휘했으리라. 보강증거라 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은 피고인의 허위 자백 뒤 경찰이 일러준 내용대로 작성됐으며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절도범의 가택 침입 방법과 피고인의 자백 내용이 상반되는 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아마 재판장은 최초 이 사건을 접했던 나와 똑같이 일반인의 법감정에 치우쳐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매우 상심했다. 이후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특별한 추가 입증이나 새로운 변론 없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아무런 변호 없이 대법원에서도 무죄 확정판결을 얻어냈다. 특별한 추가 입증 없이 항고심에서 무죄 그런데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고인이 다시 방문했다. 1심에서 이루어진 충실한 변론 덕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당시에는 사문화돼 있다시피 한 형사보상 청구 절차를 문의했다.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변호사로서 절차를 안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공판 때와는 사뭇 다른 피고인의 태도 때문이었다. 예상되는 보상금액은 십수 년 전 기준으로 1200만원을 웃돌았고,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 때문에 피고인이 고초를 겪은 건 사실이지만 그 위법 행위 때문에 다른 범법을 행한 자에게 보상까지 해야 하는지가 또다시 나의 평범한 법감정을 자극했던 것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고문 피해자들의 재범과 배상 판결 소식을 보면서 ‘적법절차의 준수’를 당연한 수사(修辭) 정도로 생각하는 공권력의 무감각이 오히려 범죄의 토양이 되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상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2010년 6월 고문수사 사건과 관련된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이때 고문받은 피해자 중 2명이 출소 뒤 또다시 절도 범죄를 저질러 구속됐다고 보도됐다. 이 사건의 경과를 보면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은 사건을 받아들고 법감정이 헤매던 초년병 시절이 떠오른다. 한겨레 자료
검찰 쪽은 공소사실의 피해자들과 피고인을 조사한 강력반 형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특히 강력반 형사는 피고인의 친구를 통한 첩보 입수와 피고인의 전력, 출소 뒤 단기간에 피고인이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승용차를 이용한 사실 등을 들어 공소사실은 물론 강남 지역에서 발생한 빈집털이 중 상당수를 범행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증언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다보니 구속 기간 연장, 재연장에도 불구하고 그 만료시까지 1심을 마치지 못했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어 내심 무죄를 확신했으나, 결과는 공소사실 모두 유죄였다. 공판 절차 마지막에 이루어진 담당 형사의 증언이 큰 효과를 발휘했으리라. 보강증거라 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은 피고인의 허위 자백 뒤 경찰이 일러준 내용대로 작성됐으며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절도범의 가택 침입 방법과 피고인의 자백 내용이 상반되는 등 믿을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아마 재판장은 최초 이 사건을 접했던 나와 똑같이 일반인의 법감정에 치우쳐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매우 상심했다. 이후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특별한 추가 입증이나 새로운 변론 없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아무런 변호 없이 대법원에서도 무죄 확정판결을 얻어냈다. 특별한 추가 입증 없이 항고심에서 무죄 그런데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고인이 다시 방문했다. 1심에서 이루어진 충실한 변론 덕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당시에는 사문화돼 있다시피 한 형사보상 청구 절차를 문의했다.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변호사로서 절차를 안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공판 때와는 사뭇 다른 피고인의 태도 때문이었다. 예상되는 보상금액은 십수 년 전 기준으로 1200만원을 웃돌았고,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 때문에 피고인이 고초를 겪은 건 사실이지만 그 위법 행위 때문에 다른 범법을 행한 자에게 보상까지 해야 하는지가 또다시 나의 평범한 법감정을 자극했던 것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고문 피해자들의 재범과 배상 판결 소식을 보면서 ‘적법절차의 준수’를 당연한 수사(修辭) 정도로 생각하는 공권력의 무감각이 오히려 범죄의 토양이 되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남상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