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풍운아의 오뚜기 인생
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한 손에는 시거를 들고 긴 코트를 즐겨 입는 턱수염의 신사이며, ‘세계 자동차업계의 풍운아’인
베른트 피셰츠리더(53·사진 오른쪽)가 폴크스바겐에 입성했다.
‘5∼6개 메이커만이 살아남는다’는 게 정설인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유럽 최대업체인 독일 폴크스바겐이 경쟁업체 베엠베(BMW)의 회장을 지낸 피셰츠리더를 과감하게 차기 회장으로 선임했다. 폴크스바겐은 9월7일 “피셰츠리더가 내년 4월17일 페르디난드 피히(64·사진 왼쪽) 현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할 것이며, 피히는 사임 뒤 경영감독위원회에서 새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셰츠리더는 1990년대 전세계 자동차시장을 한바탕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그는 베엠베 회장으로서 유망한 군소 자동차업체들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시장점유율 확대를 꾀했다. 그러나 그는 99년 2월 영국의 로버사 인수에 따른 경영손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텃세 센 영국 노동자들을 달래는 등 나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베엠베는 피셰츠리더를 경질하면서 로버를 버렸다.
1년 넘게 ‘야인생활’을 하던 그는 지난해 7월 폴크스바겐에 합류해 스페인 자회사인 세아트를 맡아왔다. “회장의 임무에는 주가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해 폴크스바겐 노조로부터도 지지를 받아왔다. 그가 로버를 인수하면서 써먹은 전술대로 먼저 노동자들의 마음을 장악하면서 폴크스바겐에 입성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벌인 셈이다.
폴크스바겐 지분 18%를 소유한 최대 주주인 독일 니더작센 주정부와 폴크스바겐 노동자평의회는 피셰츠리더의 일자리 공언에 감동한 듯 성명을 통해 “빨리 피셰츠리더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하라”고 경영진에게 촉구하기도 했다.
피셰츠리더가 고용안정을 보장하면서 수익성과 효율성 제고라는 퍼즐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남규 기자/ 한겨레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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