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신념이 감옥에 갇혀서야…
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9월4일, 낯선 영문 이메일 한통이 날아들었다. 일본의 독립언론 <슈칸 긴요비>(주간 금요일) 기자
다케구치 가주하루(32)가 보낸 메일이었다. 그는 “한국의 징병제와 군대반대운동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양쪽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고, 가슴에는 카메라를 매단 젊은 기자가 <한겨레21>로 찾아왔다.
“이웃나라 젊은이들이 2년 넘게 군대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더구나 평화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 수 없다는 사람을 감옥에 보낸다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 이방인의 눈에는 아주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징병제가 없는 일본에 사는 다케구치의 눈에는 한국의 징병제가 그렇다. 그가 한국의 징병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을 만나면서부터. 도쿄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이 군대반대 사이트를 만들었다가, 사이버 수사대에 조사를 받은 사실을 전해들은 것이다. 그뒤 군 가산점 논쟁, 양심적 병역거부를 알게 됐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한국의 징병제에 대해 꼼꼼히 묻고, 기록했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한-일의) 역사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의 오늘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며 “징병제 취재를 통해 한국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의 인터뷰가 끝나자 또다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번엔 다케구치가 대답하는 차례. 그가 일하는 <슈칸 긴요비>에 대해 물었다. 다케구치는 “<슈칸 긴요비>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향하는 독립언론”이라고 소개했다. <슈칸 긴요비>는 책 광고를 제외하면 상업광고를 ‘전혀’ 싣지 않는다. 책 광고도 ‘아무 책’이나 싣지 않는다. 편집도 시류를 거스른다. 표지를 제외하고 컬러사진을 싣지 않는 것이다. 64페이지의 책은 빽빽한 검은 글씨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93년 창간한 <슈칸 긴요비>는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판매부수도 6만부로 만만치 않은 숫자다. 일본에서 ‘진보적 시민운동의 동반자’로 평가받는 이 잡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지 맙시다’ 시리즈였다. 기업의 과대광고를 분석, 비판한 ‘사지 맙시다’ 시리즈는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와 2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며 화제를 모았다.
다음 약속에 늦었다며 황급하게 한겨레신문사 건물을 나서던 다케구치는 “내가 전쟁연습을 하기 위해 총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며 “세계 어디서든 원하지 않는데도 총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