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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보법에 구겨진 ‘눈물의 면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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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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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9월9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수원시 경희대 교정 중앙도서관 앞에선 500여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야외 결혼식이 열렸다. 환한 초가을 햇살 아래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신부입장이 시작됐다.

일생 가장 큰 기쁨으로 떨려야 할 순간, 그러나 순백의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신부 홍은주(28·웨딩드레스 디자이너)씨의 두 눈에선 눈물이 펑펑 샘솟기 시작했다. 신부에 이어 신랑입장 순서.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덩그마니 홀로 식장에 선 신부가 울먹이며 마이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경황이 없어 미처 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홍씨의 목소리가 하객들의 웅성임을 가르며 번져나갔다.

신랑 김건수(29·경희대 졸업)씨는 결혼식 열흘 전인 지난 8월30일 갑작스레 경찰에 연행됐고, 9월2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1998∼99년 경인총련 의장을 지낸 전력과 지난해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철폐 집회에 참여한 일 등이 뒤늦게 문제가 된 탓이었다.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만들며 달콤한 신혼을 꿈꾸던 신부 홍씨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홍씨는 결혼식을 미루는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건수씨를 믿고 사랑합니다. 진작에 폐지됐어야 할 악법에 의해 건수씨가 갇히게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순 없었습니다.”

홍씨는 신랑 김씨의 선후배와 함께 옥중결혼식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검찰에 탄원도 냈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이날 학교에서 결혼식은 이뤄지지 못했다. 주례를 맡은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안고 두 사람의 결합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처럼, 홍씨는 이날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하객들과 함께 신랑 김씨가 갇혀 있는 수원 남부경찰서로 옮겨간 뒤,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김씨의 친구 10여명과 함께 밤샘농성을 벌였다. “사랑하는 이가 갇혀 있는 한 저도 눈물만 흘리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건수씨가 석방될 때까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청와대에서 1인시위라도 벌일 생각”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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